노인봉의 우리말 산책 (4) - 에스키모의 눈
지난번 ‘생눈’과 ‘확길’의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에스키모들 말에는 눈을 가리키는 말이 여럿 있다는 이야기를
마저 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었지요? 이왕 나온 이야기이니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요.
거의 모든 생활이 눈과 얽혀 있는 에스키모들의 말에 눈에 대한 어휘가 많으리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실제로 ‘눈’을 여러 개의 단어로 나누어 부른다는 얘기는 이제 누구나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눈과 땅에 쌓인 눈을 달리 부른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같으면 다 ‘눈’이라고 부를 것을 그들은 몇 가지로나 세분하여 부를까요? 어디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볼까요? 짐작컨대(그냥 짐작으로) ‘눈’에 대한 에스키모의 단어가 몇 개쯤이나 될까요?
(가) 10개 정도?
(나) 20개 정도?
(다) 40개 정도?
(라) 100개 정도?
(마) 200개 정도?
‘눈’을 가리키는 말이 에스키모어에서 여러 개로 갈려 있다는 게 최초로 보고된 건 1911년이라 합니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Boas에 의해선데 그때 보고된 건 4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1940년에 역시 미국의
인류학자였던 Whorf는 6개(책에 따라서는 7개)인데 좀더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게 사람들의 본성인지라, 거기에 미지의 세계를 신비롭게 꾸미려는 심리까지
작용하여 이게 9개로 늘어나다가 48개로 늘어나고, 나중에는 100개로, 다시 200개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400개로까지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아, 허풍의 위력이여! 소문의 마력이여!)
네 가지 에스키모 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눈 (gana)
(2) 땅에 내려앉은(쌓여 있는) 눈 (aput)
(3)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눈 (pigsirpog)
(4) 바람에 휘날려 무더기로 쌓여 있는 눈 (gimugsug)
앞의 두 가지를 구분해 부르는 것만도 신통하지요? 그걸 구분해 부를 생각을 했다니! 그런데 그 다음 것들이
더 재미있는 듯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대관령이 눈 때문에 열흘이나 교통두절이 돼
횡계 벌판을 걸어갔던 적이 있었는데 눈이 하나도 땅에 붙어 있지 못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세차게
날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전혀 없던 그 벌판!)
기온이 워낙 내려가면 눈에 습기가 없어 뭉치지 못하고 그렇게 휘몰려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에스키모들이 사는 지방이야 오죽하겠어요. 그러니 그걸 따로 구별해 부르는 이름도 자연히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휩쓸린 눈이 마치 사막의 모래더미처럼 어디에 가 언덕이나 산처럼 쌓이기도 할 떼니
그 이름도 필요했겠지요.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이 네 개만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눈에 대해
상당히 세분해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또 우리에게 흥미를 주기에 충분하지요.
그렇기는 한데 하나 생각할 것은 이 정도를 가지고 에스키모의 경우를 무슨 특별한 경우인 양, 마치 신화나 되는 것처럼
너무 야단을 떨 것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사실 어느 언어에나 있는 현상이니까요.
당장 우리말의 ‘모/벼/쌀/밥’을 보세요. 언어에 따라서는 한 가지로 부를 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옷을) 입다/(신을) 신다/(모자를) 쓰다/(장갑을) 끼다/(넥타이를, 허리띠를) 매다’는 또 어떻습니까?
영어로 번역하면 전부 wear라고 해야 할 것을 우리는 요란하게 나누어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여건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그게 자연히 말에도 반영되겠지요. 이것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죠.
상수리나무며 떡갈나무 등을 몽땅 ‘참나무’ 하나로 묶어 부르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그걸
대여섯 가지 다른 이름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지역이 있고, 또 어촌에 가면 내륙에서는 무시하는 것을
세분해 부르는 것들이 많지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우리 사고의 체계가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어휘 체계도 달라지는 것이긴 한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지요.
미국에서 살다 온 놈이 겨우겨우 한국말을 배워 쓰는데 그러더라지요? “아빠, 눈 열어! 눈 열어!”
눈을 뜨는 것도 open이라 하는 영어가 유죄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눈을 연다는 말도 맞는데
굳이 눈을 <열> 때는 <뜨라>고 하는 게 별나게 구는 것 같지 않나요? 정말 정말 <매운> 거 먹다가 야, 이건
진짜 맵기보다 <뜨겁네>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차이점을 찾아내는 재주도 놀랍고 공통점을 찾아내는 재주도 신통한 때가 많습니다. 세계는 그렇게 다양해서
살 만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친 김에 다음번에는 우리말의 ‘형/오빠/누나/언니’를 중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괜찮<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