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노인봉의 우리말 산책(24) - 북한 말
뜰에봄
2007. 9. 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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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아래님의 숙제를 받고 8월을 넘기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꾸려 보았는데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줄이려도 길어지고 또 좀 무거워진 것도 같으나 너그러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 (1) 모내기전투 계획에 따라서 로력을 집중하면서 모내기를 다그치고 있습니다. (2) 저는 평양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신미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앞의 두 문장을 읽으면 이게 남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듯합니다. 북한 쪽 방송에서 뽑은 예문인데 확실히 생소한 느낌을 주지요? ‘로력’이라는 맞춤법도 그렇고 ‘모내기 전투’나 ‘다그치다’라는 말도 낯설어서겠지요. 더욱이 ‘교양원’은 뭔가 싶고(‘유치원 교사’라는군요), ‘사업하다’도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 이렇듯 북한 말이 남한 말과 다르다는 것은 이제 알려질 만큼은 알려진 듯합니다. 사실 60년을 동떨어져 살았으면 이만한 차이는 당연한 것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같은 지붕 밑에 사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말도 얼마나 다른데요. 심한 경우 대학교 4학년들이 신입생들 말이 자기들 것과 다르다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거의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서 60년을 보내고 나면 어디서나 이만한 정도의 차이는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남북한 언어의 간극(間隙)은 단순히 떨어져 산 데서 온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떨어져 살았어도 같은 표준어를 지향하고, 같은 맞춤법을 쓰려고 하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이념은 물론 언어 전반에 걸쳐서도 각자의 길을 걸었고 그로 말미암아 가깝던 말도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2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 때만 하여도 우리는 서울말을 중심으로 표준어를 정하고 같은 표준어, 같은 맞춤법을 지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해방 후 1948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국가의 공인(公認)을 받으면서 대체로 이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같은 해인 1948년 <朝鮮語 新綴字法>을 제정하면서 다른 길을 추구하고 나섰습니다. 북한의 이 새 맞춤법은 나중 <조선어 철자법>(1954), <조선말 규범집>(1966)으로 이름을 바꾸며 수정 보완되어 갔는데 우리 맞춤법과 꽤 다른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이시옷 표기와 어두(語頭)의 ‘ㄴ’과 ‘ㄹ’ 표기지요. (3) ㄱ. 초’불, 이’몸, 기’발, 내’물, 해’살, 배’전, 바다’가 ㄴ. 초불, 이몸, 기발, 내물, 해살, 배전, 바다가 다 아시다시피 남한에서는 이 경우 ‘촛불/잇몸/깃발/냇물/햇살/뱃전/바닷가’처럼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에서는 1948년의 <朝鮮語 新綴字法>에서부터 사이시옷을 쓰는 대신 사이표라고 하여 (3ㄱ)에서처럼 (’)와 같은 기호를 쓰다가 1966년의 <조선말 규범집>부터는 그 기호조차 버리고 (3ㄴ)처럼 써 오고 있어 우리와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죠. 어두의 ‘ㄴ’과 ‘ㄹ’ 표기에서도 비슷한 경위로 차이를 보이게 되었지요. 우리는 두음법칙(頭音法則)이라 하여 어두에서 현실음으로 적는데 북한에서는 다음에서 보듯 ‘ㄴ’과 ‘ㄹ’을 살려 적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194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옵니다. (4) 녀자, 녕변(寧邊), 뇨도(尿道), 니토(泥土) (5) 로인(老人), 로동(勞動), 람색(藍色), 료리(料理), 력사(歷史), 령감(令監), 류학(留學), 리론(理論), 뢰성벽력(雷聲霹靂) 국어사전의 배열도 상당히 다르게 하여 가령 우리는 ‘개’가 ‘국’보다 앞에 있는데 그쪽에서는 뒤에 있고, 우리는 ‘아들’은 ‘하늘’보다 앞에 있는데 그쪽에서는 뒤에 배열되어 있지요. 3 이런 맞춤법의 차이보다 더 크게 남북한 말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은 표준어에서입니다. 소위 문화어라고 하여 남한의 표준어와 거리를 두는 독자적인 표준어를 세워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異質化)가 본격화된 것입니다. 그 출발의 신호가 된 것은 1966년 5월 14일자의 김일성의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 데 대하여>라는 교시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혁명의 참모부가 있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방면에 걸치는 우리 혁명의 전반적 전략과 전술이 세워지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가 혁명의 수도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발전시킨 우리말을 표준어라 하는 것보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쳐 쓰는 것이 낫습니다.” 이 교시에 따라 북한말 표준어는 이름부터 문화어로 바뀌고 그 내용도 서울말 중심의 말에서 평양말 중심의 말로 바뀌게 되었지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 몇 가지 대표적인 예만 볼까요? 괄호 속에 남한 말을 넣었습니다. (6) ㄱ. 로씨야(러시아), 뽈스카(폴란드), 메히꼬(멕시코), 쩨자르(시저) ㄴ. 딴스(댄스), 플루스(플러스), 미누스(마이너스), 시누스(사인 sign), 고시크(고딕), 뜨락또르(트랙터), 깜빠니야(캠페인), 그루빠(그룹) (7) ㄱ. 호상(상호, 相互), 식의주(의식주, 衣食住), 좌왕우왕(우왕좌왕, 右往左往) ㄴ. 증견자(증인), 실담(실화) 앞의 (6)의 예들은 외래어들이긴 하지만 평양말을 중심으로 할 때 북한 말이 남한 말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 할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주로 미국 쪽의 영어를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그쪽에서는 소련 쪽에서 외래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같은 나라 이름인데도, 또 같은 어원의 낱말인데도 이렇듯 다른 모습을 띠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7)의 한자어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어느쪽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는가에서 일어난 차이일 것입니다.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면서 새로 등장한 것들 중에는 그쪽 사투리가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투리 지위에 있던 것을 문화어로 격상시킨 것이지요. 다음 (8)은 우리 쪽 표준어를 아주 못 쓰도록 버린 경우이며, (9)는 이쪽 표준어도 살리면서 그쪽 사투리를 문화어로 삼은 예들입니다. 그리고 (9)는 말다듬기를 하면서 그쪽 사투리를 활용한 경우입니다. (8) 부루(*상추), 능쟁이(*명아주), 남새(*야채), 게사니(*거위), 꼬니(*고누) (9) 길짱구(/질경이), 고매끼(/대님), 올방자(/책상다리) (10) 가시아버지(장인), 가시어머니(장모), 가시집(처가) 이 외에 우리 표준어의 어떤 한 낱말로는 번역할 수 없는 사투리를 문화어로 삼은 것들도 꽤 있습니다. 다음 것들이 그러한 것들인데 가령 ‘그�하다’는 ‘빠진 것 없이 고루고루 충분하다’의 뜻인데 남한에는 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습니다. (11) ㄱ. 드베, 거두매, 아부재기 ㄴ. 그�하다, 아수하다, 애모쁘다, 죄롭다, 얼빤하다 4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해방 후 꾸준히 해 온 것이 국어 순화 운동, 다른 말로 말다듬기입니다. 일본어 잔재를 없애고 한자어나 외래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자는 것이 그 기본틀이었던 점에서 남북한은 같은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통하게도 ‘찾아보기(색인)/나누기(제법)/제곱(자승)/여러해살이(다년생)’처럼 그 결과까지 완전히 일치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것이 남북한의 언어를 다르게 한 결과도 낳았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쳤는데 한쪽에서는 그대로 둔 것이 있는가 하면 다같이 고치긴 하였는데 서로 달리 고친 경우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앞의 ‘장모/장인/처가’의 경우도 그 한 예인데 다른 예를 좀더 볼까요. (12) ㄱ. 밥곽(도시락←벤또) ㄴ. 무더기비(폭우), 부침땅(경작지), 기다림칸(대합실), 새끼자래우기(사육, 飼育) ㄷ. 기름사탕(캬라멜), 손기척(노크), 원주필(볼펜), 랭풍기(에어컨) ㄹ. 륜운동(링운동), 빙상호케이(아이스하키), 련락(패스) 5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얘기를 하자면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동무’는 “동무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와 같은 동요를 비롯해 우리가 어릴 때는 어디서나 아주 친근하게 자주 쓰던 말인데 6․25 이후에는 금기어(禁忌語)가 되다시피 하고 ‘친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속도전/밥공장/인민배우/천리마/점적대/망원초/가두여성’ 등 그들의 체제를 반영하는 어휘들이 남북한 언어의 거리를 멀게 하는 요소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6 이상으로 대충 간추려 보았는데 이것으로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잡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남북한 언어 문제를 두고는 이것 말고도 할 얘기가 많겠지요. 특히 저쪽 시각에서 남한 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통일을 대비하여 양쪽 말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하는 문제 등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얘기가 너무 길어지겠으므로 이런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여기서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