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노인봉의 우리말 산책(25) - 북한 말(2)

뜰에봄 2007. 9. 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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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북한 말에 대한 얘기를 조금만 덧붙였으면 합니다. 북한 말과 남한 말의 특징을 너무 단순하게,
너무 도식적(圖式的)으로 구분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아 그 점도 좀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또 몇 가지 보충적인 얘기도 마저 했으면 싶어서입니다.

먼저 북한에서 남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서울말’에 대한 그들의 정의일 것입니다.

(1) 서양말, 한자말, 일본말이 마구 들어와 섞인 잡탕말

이것이 북한의 국어사전인 <현대조선말사전>에서 ‘서울말’에 대해 내린 정의입니다. 좀 당혹스럽지
않나요? 객관적인 설명을 하여야 할 국어사전이 악의를 섞어 감정적으로 정의를 내린 것이 무엇보다
의아스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서울에 온 북한 국어학자들도 기회만 되면 남한 말에 대한 반감을 토로하곤 하였지요.
외래어에 오염되어 국어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점이 특히 강조되곤 하였습니다.

외래어의 범람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늘 걱정해 오는 문제여서 이런 지적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기는
합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까지 ‘잡탕말’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일은 공정한 태도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말을 외형적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단순 비교를 하여 한쪽을 질타하는 일도 공정치 못하겠지요.
더욱이 그러한 그들의 선전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 침투되어 그야말로 우리는 잡탕이고 저쪽은 무슨
‘순정 18세’나 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나아가 덩달아 저쪽 장단에 춤을 추는 인사들이 없지 않은 듯하여
딱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비교할 때 으레 우리는 북한보다 한자말과 외래어를 많이 쓰고 북한은 순수한 국어를 많이
쓴다고 말하는 것도 그 점에서 주의를 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류는 다분히 도식적이어서 북한은
한자말은 무척이나 많이 줄이고 외래어도 별로 안 쓰는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誤導)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북한도 한자어를 쓸 만큼 쓴다는 것을 다음 예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2) 북과 남에 조성된 언어적 차이가 더욱더 커지면 사람들 속에서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족 의식이
     점점 희박하게 되며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민족적 련대감과 뉴대도 약화되게 될 것이다. (최정후, 사회과학원 교수, 1989)

앞의 예문은 평양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일부인데 우리보다 한자어를 덜 쓴다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요.

사실 한자어는 우리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마치 부처님 안의 손오공 같다고나 할까 좀체 그 올가미를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북한에서 축구 용어 ‘패스’를 ‘련락’으로 다듬었는데 그 ‘련락’이
바로 한자어 ‘連絡’이지 않습니까. 이미 있는 한자어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 만드는 말도 ‘속도전’이니
‘가두여성’이니 ‘주체사상’  등 한자어로 지어 부르는 것이 더 많고, 우리는 ‘맞춤법’으로 고쳐 부른 것을
‘철자법’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남한이 유별나게 한자말을 많이 쓴다고 질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지요.

<문화어 학습>이라는 북한의 잡지에 1996년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우리 조선말은 표현이 풍부하여
어떤 복잡하고 다양한 사상 감정이든지 능히 섬세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김정일의 말을 앞세우고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례를 든다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동의적(同義的)인 한자(漢字)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세밀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인각색/각인각양’ ‘풍전등화/풍전등촉’ ‘죽마고우/죽마지우/죽마구우’
‘창해일속/대해일속’ 등.
그리고 역시 <문화어 학습>에서 학습시키는 단어에는 ‘문전옥답’ ‘사상루각’ ‘백전로장’ ‘적수공권’ ‘조반석죽’
‘천변만화’ ‘탁견(卓見)’ ‘천묘(遷墓)’ 등 한자어 중에서도 어려운 한자어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요.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고친다고 할 때 그 수는 우리가 쓰는 엄청난 수의 한자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일 것입니다. 몇 개 더 많다고 해야 거기에서 거기일 것입니다. 그게 우리말의 숙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인데 어느쪽이 한자어를 더 쓰고 어느쪽이 덜 쓴 쓴다고
말하는 것은 괜히 사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지 않나 합니다.

3
남한이 북한보다 외래어를 많이 쓴다는 건 엄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연변 쪽에서 오는 사람들도 남한에 오면
외래어 때문에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하지요. 한 통계에 의하면 남한 사람들이 모르는
북한 말은 2천여 개인데 북한 사람들이 모르는 남한 말은 8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대부분
외래어 때문이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도 너무 도식적으로 비교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먼저 다음 예문 하나를 볼까요.

(3) 이 프로그람은 윈도우즈와 마킨토시 콤퓨터들에서 다 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예문은 북한 방송에서 뽑은 예문인데 표기는 좀 달라도 외래어를 의외로 활발히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라고 해서, 북한이 아무리 문을 닫고 산다고 해서 외래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앞 예문은 보여 줍니다.

다만 남한이 외래어를 더 쓰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평양 공항에서 하루 뜨고 내리는 비행기의 수와 인천 공항에서 하루 뜨고 내리는 비행기 수는 몇 대 몇이나
될까요? 외국을 들락거리는 국민의 수나 수입되는 외래품의 수나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큰 차이를
보이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와 같을 것입니다.
망고며 키위며 피스타치오며 블루베리며 안 들어오는 과일이 없고, 스타벅스도 들어오는가 하면 커피도
라떼니 카푸치노니 에스프레소니 가려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서른한 가지 중에서 골라 먹고 하는 이 다양한 사회,
이 개방된 사회에 외래어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연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사회 구조는 제쳐 두고 외형으로 나타난 것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닐까 합니다. 북한이 앞으로 우리와 같은 사회 구조가 되면 외래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쓰게 되겠지요.

외래어 범람 문제는 우리가 계속 심혈을 기울여 풀어 가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북한과 비교하여
북한은 그러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느냐와 같은 식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외형만 보고
괜히 한쪽을 환상적으로 보는 일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 걱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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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남한 말과 북한 말은 같은 운명을 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자어도 쓸 만큼은 써야 하고
외래어도 점차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더욱이나 두 언어는 같은 배를 타야겠지요.
그때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상대방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 남한에서는 그 노력을 엄청나게 해 오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간행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리 사전에 없는 북한 말을 거의 다 수록하였을 정도이니까요.

두 언어의 이질화를 줄이고 나아가 하나로 통일하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이겠지요. 우리는 ‘한글’이라 하면 좋겠는데
저들은 자기들이 써 오는 ‘조선글’이라 해야 한다고 우기면 어느 세월에 결판이 날지 그런 건 미리 걱정해도 소용이
없겠지요. 우선 서로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도록 노력하여 서로 자기 쪽 말을 써도 알아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통일이 되어도 한참은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