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으로
친하게 지내는 도보여행꾼 아우들과 원래는 남도여행을 계획했으나 남도지방에 쏟아진다는 집중호우로 인하여 무산되고, 길 안 밀리고 경치도 좋다고 점찍은 국도를 타고 일단은 정선을 목적지로 삼으며 우리는 여행길에 올랐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날씨가 오히려 안 덥고 좋다고 그러면서 하나 같이 한껏 고조된 기분이었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 이르는 길이며 영월 동강을 옆에 끼고 뻗어난 길 하며 정선까지 가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ㅡ 걸어 봤으면 좋겠다,가을에 또 왔으면 좋겠다,봄에 새 잎 피어 날 때도 좋겠다.눈이 오면 또 얼마나 경치가 좋을까?...우리나라 사계를 나름대로 덧입혀 가며 수다를 떨었다.
느즈막한 오후에 정선 아우라지 강변에 도착,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소개 된 바 있는 옥산장 여관에 묵기로 하고 그리로 찾아 들었다.
사만원에 방 하나를 잡아 짐을 풀어 놓고 우리는 아우라지 강변으로 나갔다.
아우라지 강가에는 몇 년 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보다 물이 많이 불어 있고,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우라지 강에 서린 애환이 쬐끔은 묻어 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이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서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
~뜬금없이 떠 오르는 시 한자락.
집에서건 밖에서건 먹어야 사는 것이기에 미리 밥을 지어 먹기로 계획한 바, 기애가 집에서 반찬을 챙겨 오고 고기도 사 왔다.
우리는 강가에서 해 먹자,여관집에서 해 먹자.옥신 거리던 끝에 옥산장 마당에 자리한 원두막,아니 팔각정 수준인 정자를 차지하고 저녁을 해 먹기로 하였다.
아우라지 강변에서 숙소로 돌아 오는 거리엔 고추밭이며 들깨밭,옷수수밭이 있어 시골마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고 있었다.
잠깐!
아 ,~그런 시골 길을 걸으며 나의 뇌리를 스치던 생각에 이어 곧바로 실천에 들어 간 행동을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낱낱이 고해야 할 것이냐 말것이냐,고민에 휩싸이는 바이다.
에라,어차피 내 행동이 몇 몇에게 밝혀졌고,나의 전리품(?)으로 인하여 보다 감칠 맛나는 식욕을 조성하였던 공로도 인정받았던 고로 토설해 버리고 말까보다.
~나의 뇌리를 스치던 생각이란 다름이 아니라 기애가 상추를 미처 준비하지 안했다는 야그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여러분들도 아실 것이다. 상추나 깻잎이 없이 삼겹살을 먹는 맛은 비록 고무줄 없는 빤스에 비길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해도 그에 버금가리만치 김내지는 맥이 빠진 맛이라는 것을.............
오메 ,~ 비교적 먹는 것에 초연한 편인 나야 괜찮지만 (정말이지 나는 괜찮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바임) 나의 동행들께서 행여 야채없는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서 비탄에라도 젖게 될 걸 생각하니 길가 밭에 널널하게 심어진 깻잎이 자꾸만 클로즈엎되었다.
에라,모르겠다.내가 내 한몸 잘 먹고 살아보자고 발동한 도벽도 아닐진대 누가 단죄하리오...
더구나 나로 말 할 것 같으면 시골 출신인지라 그깟 푸성귀 따윈 없으면 얻어먹고 많으면 나눠먹는 농경사회 의식(생활 방식)을 일찌기 경험 한 바 촌 년이 아니던가.
'영애야,내 따라 온나....' 이 몸은 여유있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멈칫 발길을 고정, 생전 들깨나무 첨보는 도시여자처럼 관찰 내지는 만지고 스쳐가는 시늉.~*~
윤영애는 모자를 벌렸다가 오무리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
풋고추도 있으면 좋겠기에 여남은개 슬쩍.=,=
...고기를 구워서 깻잎에 아구 아구 쌈을 싸먹는 나의 여행 동지들을 보면서,깻잎이 있어 참으로 고기가 더 맛있노라는 소리를 수차례나 들으며,어언 가슴을 짓누르던 (엄청 눌렸음) 죄책감은 사라지고 으쓱,뿌듯한 기분에까지 젖었노라고 고백한다면 여러분들께선 행여 내가 스스로 저지른 도벽을 타당시하며 으시대기까지 한다고 나의 인간성을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건 깻잎으로 인해 한끼 식사가 그토록 풍미를 더해 주었던 사실을 다 파악하지 못해서일 것이다.(정상 참작을 요하는 바임)
아무튼 우리는 된장찌게며 고기를 주 메뉴로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은 저녁 식사를 즐겼다.
아,! 그 만복감이라니....
저녁을 먹고 기애가 준비해 온 갖가지 과일로 후식까지 즐기며 마당 정자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곱게 늙은 아주머니가 아랫채로 와서 정선 아리랑도 듣고 돌 이야기도 들어 보라고 권하신다.
( 연세로는 할머니라고 칭해야 겠으나 하도 고우셔서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적절 할 듯 싶다.)
아,저 분이 바로 유홍준씨가 입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옥산장 주인 아주머니시구나.
마음이 끌린 난 그 아주머니가 오라고 하는 방으로 갔다.
거의 모든 투숙객들이 장석자리를 깔고선 앞에 서 계신 옥산장 아주머니를 주시하며 앉아 있었다.
마치 옛날에 시골교회 바닥에 옹기 종기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까?
옥산장 아주머니는 고운 빛깔로 물먹인 모시로 만든 개량한복을 입고 시종 웃는 낯으로 술술 술술....(마치 실꾸리에서 실이 풀려나오듯) 이야기를 풀어 내신다.
조금도 어색하지않은 표정에 적당한 제스츄어를 가미해 가며 이어지는 말솜씨는 어느 유명 강사에 비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기도 하려니와 그 분의 진솔한 마음이 가식없이 내 비치는 듯하여 사뭇 감동스럽기 까지 했다.
'여행길에 오르시면 뭘 하나라고 알아 가려고 애쓰십시요.유래는 물론이거니와 그 지방의 특징이며,하다 못해 옥산장 여관 뜰에 심어진 야생화 이름 하나라도 알고 가시면 좋지 않겠냐고 당부하신다.
그 분께선 어느 여행에 임하던지 작은 사실 한가지도 놓치지 않으시며 그걸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노라고 하셨다.
그런 애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 ' 아, 나는 여태 너무나 무심하게 건성 건성 돌아 다녔구나'싶은 자책감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ㅡ'돌과 이야기'
옥산장 아주머니께서 마음에 울화가 쌓일 때거나 여가가 날 때마다 강가로 나가서 주워 모았다는 돌들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돌에 그려진 무늬를 나름대로 분석,뜻을 매기고,사연을 집어넣고,...절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를 엮어 내신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입을 반쯤 벌리고 있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정선 아리랑'
옥산장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가끔 옥산장으로 정선 아리랑 기능 보유자를 모셔오기도 했다고 한다
모셔 오는 절차가 번거로워 아주머니께서 직접 정선 아리랑을 배우기로 결심,지금 석 삼년에 이르도록 아리랑을 배우시는 중이란다.
정선 땅에 왔으니 정선 아리랑 한 가락 쯤은 듣고 가시는 게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하시며, 몇 가지 장단을 달리해서 불러 주셨다.
정선 아리랑는 무려 1500가지가 넘도록 각기 달리 해서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한다.
잦은 모리,중모리,휘모리....애환이 서리기도,해학이 담기기도.걸쭉한 외설이 내 비치기도 한 가사를 담아 잘도 부르신다.
정선 아리랑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이 짠해있다가, 어느사이 다른 장단 다른 가사로 넘어가선 절로 쿡쿡 터지는 웃음...
연세가 일흔도 넘었음직 하던데 어찌 그리 기억력도 입담도 좋으신지....표정 또한 어찌 예쁘시던지 어른께는 좀 외람된 표현이다 싶지만 그 ' 예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싶을 만큼이었다.
내가 걸핏하면 '누구한테 반하고....'그런 말을 잘 하는 지라 혹 여러분들께선 '저 인간은 오죽 자기가 꼴같잖아 그런가,반하기도 잘한다'라고 그러실랑가 모르겠다만 누구든지 정선 아우라지 강가에 있는 옥산장 여관에 하룻밤 유하면서 그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그에 귀기울여 보시라.
안 반하고 배기시는가 말이다.
옥산장 아주머니,
아!, 나는 또 사람한테 반하고 만다.
지난 이야기지만 나의 경우 전에 유홍준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옥산장 여관 주인아주머니를 추켜올린 감이 드는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ㅡ'아, 앞으로 이 여관 장사 잘 되겠구나.나의 별 신통찮은 통찰력이라고 하나 틀림없이 이 책(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이 잘 팔리지 싶은데 이글 읽고 정선에서 다른 여관 에 묵을 사람 어디 있을꼬,한번쯤 유명인사 잘 재워주면 장사운이 절로 트이는 거네..." 그런 심사를 지녔더랬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옥산장에 하룻밤 머물게 되면서 역시 이 집은 사람이 모이게 돼 있구나.나라도 이쯤되면 동네 방네 옥산장 여관을 추천해 주고픈 생각이 거의 용솟음 수준으로 치밀어 오른다.
옥산장 아주머니와 투숙객이 함께하는 시간은 아마 옥산장 여관의 이벤트로 자리매김한 듯 싶었다.
밤 새면 태백 정암사로,태백 부석사로 (영주가 아닌 태백부석사라고 해야 된다고 했음) 길 떠날 작정을 해 놓고설랑 여름인데도 강원도 기후라서 따뜻함이 좋은 온돌방에 잠자리를 펼쳤다.
창 밖엔 추적 추적 빗소리....
나그네 심사는 그 빗소리에도 요동치 않는 평화,ㅡ 하염없음.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스르르 단잠...
2 편 정암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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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7시쯤 눈이 떠졌다.
밖엔 여전히 추적 추적 비 내리는 소리 들린다.
모두들 일어 나서 어디로 갔남 ? 얼핏 그 생각이 들었는데 모두들 각자의 이불을 감아 덮고 곤한 잠에 빠져 있다.(방이 넓어 따로 띄엄 띄엄 이부자리를 깔고 자는 탓에 금방 눈 떠서는 보이지 않았음)
나도 집에서는 늦잠을 즐기는 편이지만 여행길에서 아침 늦도록 잠자고 있으면 손해를 많이 보는 느낌이 들고 그 시간이 몹씨 아깝다.
잠은 늘 자는 잠인데 그 시간에 어디 한 군데라도 더 둘러 보고픈 마음이 들어서 말이다.
나 혼자 살금 빠져나와 샤워까지 하고서는 모두들을 깨웠다.
모두들 씻고, 볼 일 보고 하는 사이 옥산장 마당에 나가보니 옥산장 아주머니가 손님들을 상대로 마당에 심어진 꽃들을 열심히 설명하고 계신다.
어젠 저녁답이라 그저 예사롭게 봤는데 마당 구석 구석 꽤 많은 종류의 나무며 야생화가 심어져 있고 헛간 한 켠에는 우리 옛 생활 도구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다시금 감탄.
꽃 종류로는 벌 개미취, 연꽃, 물싸리 ,동자꽃,제비 동자꽃,부처꽃,무릇,범의꼬리 ,풍접초,부처꽃,머슴아 꽃,쥐손이,부용....등등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물싸리 꽃을 두고 물살 꽃이라 하시기에 내 오랫동안 야생화 싸이트인 인디카에서 익힌 눈썰미로 '물싸리 꽃'이라고 정정 해 드렸다.
아마 '물살'물싸리'발음이 비슷해서 잘못 들으신 듯 했다.
'머슴아 꽃'또는 '남자 꽃'이라고 불린다는 꽃은 흰 빛깔로 마치 부용처럼 생겼던데 꽃 몽오리가 흡사 어린 머슴아가 쉬하기 직전의 부푼 고추처럼 생겼다.
아,~그래서 머슴아 꽃이라 불리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옥산장 아주머니는 한 술 더 뜬 설명을 곁들여 주신다.
머슴아 꽃은 밤에 빳 빳하게 피어나며 날 밝으면 이내 풀 죽은 모습이라나...(사실 아침인 그때 꽃송이는 푹 고꾸라진 모습이었다)
그런 비유가 어찌하야 사람하고도 연상이 지어지는지 함께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던 어떤 코 큰 아저씨 왈,~"요즘 남자들은 밤 낮없이 서는데요"..그런다. 사람들이 모두 킥킥대며 웃길래 나도 그저 따라 웃긴 햇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지 도통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아는 사람 좀 갈챠줘요)
...각설하고, 우리는 기애가 준비한 아침밥을 맛있게 해 치우고설랑 곧장 태백 정암사로 향했다.
정선 소금강이라 불리운다는 길은 실로 아름다워서,더구나 비오는 날 운무에 살짝 가린 산이며 철 철 흐르는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며 무언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취를 불러 일으키는지라 이게 과연 이승길인가,싶을 지경이었다.
소금강길을 지나 강원랜드 카지노마을이 된 고한읍도 지났다.
탄광촌의 척박하고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짐작되어지는 남루한 판자집이 군데 군데 눈에 띄고,새치기로 비집고 들어와 오히려 더 당당해 보이는 건물들과 어설픈 간판의 전당포는 어찌 그리 많던지....
마치 어설픈 영화 셋트장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었다.
.....고한을 지나 정암사가 가까워 옴에 따라 길은 다소곳히 나 있어 정겨웠다.
길가에 심어진 보랏빛 벌 개미취는 비에 젖어 더욱 함초롬해 보였으며 마치 후원을 거니는 종갓집 여인네의 정갈한 자태를 연상케 하였다.
꽃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날 영월로 오기 전 길가엔 루드베키아가 끝없이 피어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꽃이란 꽃은 다 이뻐서 껍벅하는 사람인데 '루드베키아'는 이쁘다기 보다는 어감에서부터 도발적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루드베키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이름만으로 언젠가 계모임에서 들린 바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본 러시아 미녀들의,건강하게 쭉 뻗은 다리가 떠 올랐던 바이다.
실제로도 루드베키아는 주황과 노랑이 섞인듯한 강열한 빛깔로 꽃 중앙에 검은 빛을 품고 있어 뭔가 당당하고 도발적인 자태이다.
내가 길가에 그 꽃을 보며 '저 꽃은 바람을 피우고도 당연하다는 듯 뻔뻔한 년'같다고 표현하자 특히 영애가 너무 적합,리얼한 표현이라며 동조해 주었다.
정암사는 다른 절에 비해 버젓한 대웅전도 없는 절로 한 켠으로 나 앉은 절 채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심정적으로 기독교인인지라 절이라고 하면 주변 경치에 더 역점을 두고 즐기는 편인데 내 친한 친구 해경이가 자주 온다는 절이라고 하던지라 구석 구석 눈여겨 살펴보았다.
어느 비오는 여름엔 해경이가 절 옆에 흐르는 냇물에다 (열목어 서식지라고 했음) 김치통을 담궈 두었는데 밤새 비가 내려 불어난 물살에 그만 떠내려 가 버렸다고 하였던가....얼마나 아까웠으랴...그런 시시 콜콜한 생각까지 떠 올리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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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 부석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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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를 둘러 보고 우리는 절 입구에서 곧바로 좌회전 ,부석사로 향하는 길로 접어 들었다.
태백산 줄기를 넘어 봉화쪽으로 간다.
제법 높은 재를 넘는데 길가에 숲을 이룬 나무들이 외국 사진에서 본 듯한 정취를 안겨 주었다.
재를 넘고 나니 청옥산 휴양림도 나오고,봉화라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강원도를 벗어나서 그런지 산세의 웅장함이 훨씬 잦아든 느낌이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그래서 경계가 지어진 건지 모르지만 어느 지점에서건 일단 '여기부터 강원도입니다'라고 하면 곧바로 눈앞에 펼쳐진 산 부터 틀리는 것 같으다.
어언 점심 때도 되었기에 산자락 한켠에 세워진 집앞에 차를 세웠다.
간단한 음식도 팔면서 옥수수며 복수박을 평상에 펼쳐 놓고 팔고 있는 집이다.
김기애가 감자전을 부쳐먹을 준비를 해 왔기에 우리는 그집 평상하나를 빌려 감자전 부쳐먹기에 돌입했다.
아,여기에서 잠깐 우리의 김기애를 언급하고 지나가야 겠다.
김기애와 나의 여행은 두번째,저번 화천 여행을 처음 다녀 오고도 밝혔지만 김기애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여행에서 갖출 것에 관한한 그 아무 것도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운전 잘 하지,길 잘 찾지,음식 잘하지....어느 것 하나 거칠 것이 없으며 또한 그녀의 준비성은 혀를 내 두를 수준이다.자기가 베고 잘 베개며 때론 밥상까지 싣고 다닌다 하며 ,밥 먹고 나면 이쑤시게통을 탁 내 미는 정도이다.
끼니를 해 먹고 다닌 이번 여행이지만 우리가 사실 사전에 뭘 준비하자고 아무하고도 입 맞춘 바 없는데도 아이스박스며 비닐 주머니에서 생각도 못한 먹을 것들이(댓병 포도주까지) 자꾸 자꾸 나와 우리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늘도 일용 할 양식을 주옵시는 하나님 다음으로 고마움을 느끼게 함)
그런고로 누구든 김기애와 한번 같이 여행을 떠나보면 다음 여행에도 고개를 쭈욱 빼고 '김기애는 안 가는강?....'두리번 거리게 될 것이다.
하여튼 기애는 강판을 내 놓고 제법 많은 감자며 양파를 싹싹 갈아 감자전 부치기 전의 과정을 잘도 진행시킨다.
사실 강판에 야채를 갈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게 어디 좀 힘든 일인가,혼자만 애쓰는 게 미안쓰러바서 내가 좀 하겠다고 나서서 받아하는데 기애는 이내 못 미더워서 자기가 도로 뺐어서 해 치운다.
감자전에도 풋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더 좋은데.....그러니 어쩌랴, 본인은 다시금 그런 방면의 해결사로 나서서 고추밭 가에 자리한 화장실을 두번이나 다녀왔다.
감자전은 부쳐 내기가 무섭게 없어진다.
노릇 노릇하게 부쳐진 게 맛있다고 하면서도 노릇 노릇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상황이 멎지도 않는다.
나는 그 조금전에 가게집 주인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다듬는 걸 도와 주면서,조근 조근 얘기를 나누고, 나혼자서 살째기 복수박도 얻어 먹은 바 있기에 자꾸만 주인 아주머니가 걸려 죽겠는데 먹는 기세를 보니 도무지 한 접시 담아주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을 상황이다.
접시가 몇 차례나 비워진 뒤에야 겨우 한 장을 얻어 내어 주인 아주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누가 해 주는 음식은 더 맛있고 감질나는 법, ~ 아줌마 아들도 있던데 하다못해 두장 정도는 갖다드려야 맛이라도 느끼지..싶더구만 차마 두장 말을 꺼내지 못할 처지여서 더 주자는 말이 입안에 뱅뱅 도는데도 끝내 실행시키지 못했다.
작은 것에 잘 매이는 나는 아직도 그때 내가 조금 덜 먹고 한 장 더 갖다 드릴 걸....짜안한 마음이다.
감자전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짐을 챙겨 부석사로 향해 떠나기ㅡ
. 부석사!!
나는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탓에 웬마큼 이름 난 곳은 다 가봤는데 어찌하여 부석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제 영애더러 '난 아직 부석사를 못 가봤다 '그랬더니 영애가 의아한 듯 그 좋은 절에 왜 못 가봤느냐고 그랬다.
당초에 정선 다음 행선지는 바다로 가리라 계획잡고 있었는데 부석사로 가게 된 건 정선에서 부석사로 가는 게 무리가 아니라면 그리로 갔으면 좋겠다는 내 바램을 모두가 조금쯤 배려해 준 듯도 싶다.
부석사가 가까워져 올 수록 길가에 사과밭이 널널하게 눈에 띄었다.
나야 고향이 경상도라 그런 풍경을 많이 봐 왔지만 기애는 신기했던가보다.
몇 번이나 사과나무 밑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서 입으로 아삭 아삭 베어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애의 그런 열망도 무시한 채 운전대를 바꿔잡은 영애는 부석사로 곧장 향한다
....그리운 부석사!!
정말이지 부석사는 언제부터 한번 와 봐야지,벼르던, 그리운 곳이다.
국민학교 6학년 사회과목을 공부 할 때인가~ '부석사 무량수전'하면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하며 달달 외기도 했는데....
그리고 신경숙이 쓴 '부석사'라는 단편도 있었지 아마.
또한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서정적인 제목 아래 우리나라 목조 건축 기법을 설명한 글을 읽은 바도 있으며, 무엇보다 어느 가을 여행기자 박종인씨가 신문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찬란한 풍경을 실어놓고 해질녘에 한번 가셔보라고,꼭 한번 가 보시기나 하라고 종용하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던 바이다.
그 모든 복합적인 요소가 내가 부석사를 그리워했던 요인이었지 싶다.
~ 아, 정말 가을에 은행잎이 물들면 정말 아름답겠구나,싶게 절로 향하는 길엔 은행나무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산 치락에 고즈녘히 자리한 부석사가 나타났다.
큼직 큼직한 돌로 가지런히 쌓은 축대부터 서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무량수전,조사당. 등의 절집 모습은 단청을 올리지 않아 더욱 더 단아하고 아름다워서 말을 잊게 하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 자신 절 건물에는 별 관심을 안 두는 편인데도 부석사 나무기둥은 그 색깔 부터가 깊은 멋을 풍겨 나도 모르게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기대어 냄새까지 맡아 보게 되더라.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심장을 두드리듯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지한 표정의 스님이 법고를 두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에는 목어, 다음에는 뭔지 모르겠지만 실로폰처럼 청량한 소리,
마지막으로 종.......
대부분 그 자리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음미했다. 텔레비전에서나 가끔 보던 예불 광경을
직접 보게되는 행운에 감동하면서...
그 종소리를 잊을 수 없다.
쿵 소리와 그에 이어지는 울림이 심장을 뚫고 들어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적신 후
내 피의 일부로 영원히 몸안에 머물러 있을 것같은 느낌.
지금도 떠올리노라면 그 울림이 느껴진다.
그래서 일손을 멈추고 가만히 있게 된다
부석사 뒷 편 암자로 이어지는 길도, 숲도 너무 아름다웠다.
......아무튼 나는 이제 우리 나라 어느 절 보다 아름다운 절로 부석사를 찍어 놓아 버린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여 우리는 부석사를 뒤로하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귀가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 뭔가로 가슴에 그득 채워진 느낌이 든다마는 원체 아는 것이 짧고 표현력이 부족하여 일일이 다 고해 드리지 못함이 참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2002, 여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