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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희열이

뜰에봄 2007. 10. 28. 01:21

 어제 토요일엔 교회 추수감사절 꽃꽂이며 과일 바구니 꾸미는 일,등등이 겹쳐 몹씨 바빴다.

친구가 단풍잎이 팔랑거리는 예쁜  가을빛 편지봉투에 편지를 담아 보내 왔는데 그것도 읽을 새 없어 리본 선반에 올려 놓았었는데 이제야  아차, 편지가 왔었지,생각이 나서 꺼내 본다.

 편지를 보내 온 내 친구 이름은 희열이,그러나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을 한글로 해석해서 '기쁨'이라고 일컫는 걸 더 좋아한다. 

봉투를 뜯으려다 말고 봉투 앞 뒷면을 살펴보는데 이번엔 왠일인지 '숲속마을 왕비'라는 발신인 표시가 없네.

 친구는  '숲속마을'이라 이름붙인 아파트에 사는데 ,자칭 '숲속마을 왕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난 친구보고 '야,자기는 암만 봐도 왕비라고 불린 체신은 갖추지 않았다'라고 반박해 준다.

그저께 내 꽃가게를 다녀가고 나서 곧장 써서 보낸 편지,ㅡ걸핏하면 이쁜 편지지에다 영심이 스티커를 붙여서 편지를 보내 오는 친구가 오늘은 유리볼에 국화꽃 을 동동 띄워 놓고 보니 예뻐서 좀전에 만나고 돌아 왔는데도   생각이나고 보고싶어져서 편지를 쓴다고 시작해놓고서는  ' .....'이제 부터는 좀 더 성숙해진 인격으로 연순의 친구이고 싶어.겸손하고,검소하고,우아하게...호호호.....' 라는 글이며 오뚜기 하이라이스가 �있으니 하루 전날 전화하면 준비해서 예쁘게 대접할테니 꼭 오라는 전갈이 있다.

~ 편지지 두장을 빼곡히 채운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잔잔한 웃음이 지어진다.

 말이 난 김에 내 친구 기쁨이 얘길 좀 풀어 놓을까보다.

ㅡ꽃가게를 하면서 손님으로 찾아온 희열이와 우정을 나눈지도 벌써 여러해가 흘렀네.

 유복한 가정의  8 남매중 막내 딸로 태어나  참으로  귀하게 자랐다는 그 친구는 자기와 결혼하려고, 결혼 허락이  내릴 때까지 그 집문앞을 떠나지 않겠다고 떼쓴 끝에 기어코 결혼 승락을 받아낸 서울 공대 출신의 유능한  남편을 만나 딸하나 달랑 낳고선 그 딸보다 더 어리광을 피우며 살고 있다.

 처녀적에 모 여성지 사진 콘테스트에 당첨된 적도 있었다는데 ,(그 사진을 보고 '꽃보다 귀한 여인'이란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 소문도 들리더라 함) 하여튼 지금 대학생 딸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으려 들지 않을 만큼 마알갛고 곱게 생겼으며 생긴 것에 걸맞게 옷도 언제나 공주같은 드레스 풍의 '오월의 신부' 브랜드 옷만 사 입고,모든 차림이며 행동거지 또한 공주풍이다.

가끔 친구는  '난 사람들 한테서 공주같다고 하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공주라는 소리가  지겨워'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가게에 왔을 때 내가 의자위에 올려 놓을 방석이라도 내어 주면 곧장 앉지 않고 빙석을 살피며 주저할 때도 많다.

'왜? 방석에 때가 묻은 거 같아 찜찜하냐?' 그러면 '으응'하고 애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포장지를 가위로 쓰윽 잘라 방석위에 얹어 주면 비로소 앉는데 나잇살이나 먹은 여자가 얼마나 꼴볼견인 행동일까마는 난 왠지 그 친구가 그러는 건 밉지 않고 귀엽다.

 내 측근의 사람들이 그 친구를 처음 볼 때엔 하나같이 입을 삐죽거리고,닭살이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째서 내가  저런 사람하고 절친한 친구인가 의아해 하면서 '내 체질은 아니다'라고 기어이 한 소리 하고 마는데 일단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다들  '아,그 공주 언니'  하며 호의적으로 돌아 서고  만다.                   

 아마 천성적으로 남 의심할 줄 모르고,싫은 건 싫다고 남의 눈치 안 보며 다 말해 버리고,약은 수를 쓸 줄도 모르고.솔직한 그 친구의 성격에 결코 가식이 아니라 실로 세상 풍파 모르고,곱게 자란 순수함이 묻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친구와 함께 있다 보면 사람이 맑고 솔직한 품성이 얼마나 큰 미덕인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외모를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은 편이나 그 사람이 자란 환경은 그 사람 성격 형성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식물도 좋은 토양에서 잘 자라듯이 사람도 반듯한 성품의 부모밑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구김없이 자란 사람이어야지 사랑을 나눌 줄도,남을 배려 할 줄도 알지 싶다.

그래서 난  사람에 대한 편견이라 할지는 모를 일이나 자수성가 했다느니 험난한 세파를 이겨 나왔다느니 하는 사람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바이다.

어쩐지 사람이 독하고 뭔가  꼬인 부분이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내 친구 얘기를 늘어 놓다말고 얘기가 엉뚱한 쪽으로 흘러 버렸남?

여그 자수성가 하신 분은 없으시져? ~찔끔.

 

 ㅡ 친구로부터 번번히 편지만 받고 답장을 못하게 되는 미안함에  '야,컴퓨터 타자치는 거 연습해서 편리한 이메일로 보내면 나도 금세 답장 중 낀데...'라고 말하면 기쁨이 내 친구는 '몰라 몰라 난 그런 거 안 할거야' 고개를 절레 절레 내 흔들며 편지지를 고르고 우표를 붙여서 편지통에 넣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손가락 몇번 자판을 두들김으로 상대방 에게 3초후 자동으로 전달되는 편지를 보내게 되는 요즘 세상에  가끔씩 이렇듯 우표가 붙여진 예쁜 편지를 받을 수 있음은 내 친구 '기쁨이'가 주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인, 공주 내 친구!

내 가까이 존재함이  얼마나 고마웁게 느껴지는지....

 

 

 

 

* 희열이가 겪은 황당한 일

 

얼마전엔 나도 바빴고,한 두어번은 친구가 전화도 안 받았고...

그랬는데 내 친구 기쁨이가 가게에 와서 늘어 놓은 사연인즉슨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기쁨이  어느 아침 자고 일어나니 허벅지께가 뻐근하고 아프길래  안산 고려대 병원으로 갔더란다.

( 친구는 원래 어디 조금만 불편해도 병원으로 가는 일은 득달같다.)

의사 선생님이 다리를 이리 저리 만져 보더니 '언제부터 그래요?' 하고 한번 묻더니 '거 아무래도 고관절이 썩어들어가는 병인 거 같은데 만약에 그러면 다리를 잘라야 돼요. 엠알에이를 한번 찍어 보도록 하세요'  그러고는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일어나서 휑하니 나가버리더란다.

 그 소리를 듣고 친구는 정신이 하나도 없이 남편한테 연락해서는  일금 55 만원을 들여 그 엠알에인가 하는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자기는 앞으로 다리를 자르게 되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신세가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고 기가 찼으랴.

 거기다 엠알에이 촬영 결과는 그걸 판독하는 의사가 세미나참석차 출장을 갔기 때문에 일주일 후에나 알 수 있다고 하더란다.

 

 집으로 돌아 와서 친구가 우선 한 일은 전화 코드를 빼놓고 걸려 오는 전화 안 받기.

 그리고 지금 대학 1학년인 딸내미 옷은 지금껏 엄마가 골라 주는 옷을 입었는데 멀지않아 다리가 잘려 걷지도 못하게 되면 누가  사주랴 싶어 딸 옷을 사러 마구 돌아 다녔다고 한다.

 겨울 코트를 4 벌이나 샀고,그 외 티셔츠며 갖가지 옷을 사는 비용으로 160만원이 들었다나.

그러면서 기도를 달달 외고 지냈다고 한다.

ㅡ'하나님,제가요 이때까지 너무 교만하고 건방지게 살았는데요.이번에 제발 절 좀 이쁘게 봐 주셔서 다리를 안 잘라도 되게 해 주시면 앞으로 교회 십일조도 꼬박 꼬박 낼 것이고,남 흉도 안 볼 것이고,여태 잘 못 살은 거 다 회개하고 착하게 살게요.'~쫑알 쫑알....

 

 그러 구러 일주일이 지나니 몸무게가 자그만치 4킬로가 빠졌더라나.

병원에 오라는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께서는 사진을 들고 이리 저리 살펴 보더니 글세

'거 별 이상이 없는데요.' 그러더란다.

ㅡ'아,근데요 선생님,자세히 잘 좀 살펴 보세요.선생님이 저보고 다리를 잘라야 하는 병인 거 같다고 했잖아요.그런데 정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에요?' 그랬더니 의사선생 말 좀 들어 보시게,'제가 그랬어요? 그랬단 말예요? 거,이젠 괜찮은 거요.'그러고는 역시 휑하니 일어서서 나가버리더라나.

 일단은 아무 이상없다니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안도감에 젖었지만 한편으로 환자 개인의 입장를 전혀 고려하지않고 너무나 쉽게 툭 던지는 의사선생의 말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조금이나마  사람 마음을 배려 할 줄 아는 의사라면 설령 다리를 잘라야 하는 무서운 병이라는 짐작이  들지라도 최소한 사진으로 확실히 규명지어질 때까지는 마음편하게 있도록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아도 될 것을...'아,내가 보기엔 별다른 이상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우선 사진이나 한번 찍어 보시죠'

그랬어도 될 것을...

 

 내가 다 분한 생각이 들어 '뭐 그런 의사가 다 있노.정말 의사 자질도 없는 의사네.' 하고 욕을 해 대자 그래도 내 친구는 별일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한다.

자기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축복을 새롭게 받은 셈이니 모든 것이 그저 감사 할 따름이란다.

 정말이지,이럴 경우에야말로 '할렐루야,아멘' 이다.

 

200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