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해에 사시는 큰오빠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할 형편이었기에 진해에서
고등학교 시절 3년을보내게 되었다. 대구 근교 팔공산 밑 산골동네가 고향인 산골뜨기 여자아이가 생전 처음 부모님 품안을 벗어나 겪게된
진해 생활의 시작은 혼란스럽고도 외로웠다.
마치 유배지에 나 혼자 버려져 있는 그런 기분이라니......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얼굴,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벌망아지처럼 쏘다니던 고향 산천,
너무나도 눈에 익어 그믐밤에도 돌부리에 채이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우리 마을의 골목길들,
함께 어울리며 놀던 친구들이며 고향에 서린 추억들만 눈에 아른거렸다.
더구나 시기적으로도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때였던지라 어디서 '고향'이란 말이
들어간 유행가 가락만 흘러 나와도 마냥 서러워져서 눈물이 나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의 향수병이 진해탓이기라도 한듯 나는 '진해'라는 도시에 정을 들이지 않으리라,
마음을 새침하게 도사려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진해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에 나의 마음도 차츰 풀려나갔다. 무엇보다 진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던 것이다. 한겨울에 꽃을 본다는 것은 삼월이 되어도 산등성이에 잔설이 남아 있을 정도로 추운 내 고향에선
상상도 못하는데 진해의 거리엔 가로수로 동백나무가 심겨져 새빨간 동백꽃이 노오란 꽃술을
감싸안은 채 피어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서 한참씩 들여다 보곤 하였다.
그 사이로 후조를 연상케 하는 세라복의 군인들이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모습이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적산가옥을 낀, 반듯 반듯한 골목길들은 너무나 비슷해서 한번 가본 집이라도 찾는데에
늘 혼돈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적적하리만큼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엔 시시때때로 해풍이
넘나들며 바다내음을 몰아다 주었고, 공설 운동장 주변의 비둘기떼는 한결 평화로운 도시의 정취를 자아내게 해 주었다.
그 무엇보다도 봄을 빼놓고서는 진해를 애기할 수가 없겠다. 조금씩 조금씩 꽃눈을 부풀리던 벚꽃나무가지에서 드디어 벚꽃망울이 터뜨려지는 봄날,
그 연분홍빛 벚꽃이 화사한 자태를 마음껏 펼칠 즈음의 진해는 온통 연분홍빛 꽃잎으로, 꽃잎으로
물결 되어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진해에 오시는 봄의 화신은 소리없이도 나팔을 불며 오시는가, 전국 곳곳에서 진해로 모여드는 상춘객들로 거리는 붐비기 시작하고,꿀벌들도 분주하게 잉잉거린다. 학교에서는 벚꽃축제인 군항제 행사준비로 수업시간을 할애당하기도 했다. 하기야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될 때도 그 술렁거리는 봄기운은 교실로까지 밀려들어 우리들은
도통 공부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잔치가 한껏 고조에 달했다가 수그러들 참에는 눈이 내렸다. 봄에, 진해엔 눈이 내렸다. 분홍빛 꽃눈이~~~~~ 며칠동안 뭉게 뭉게 피어오르던 벚꽃구름이 다 이상 피어 오르지 못하고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이다.
ㅡ뉘가 눈더러 소리없이 내린다더뇨 이렇게 쟁쟁쟁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여 내리는 낙화 이 길이었다. 손 하나 마주 잡지 못한 채 어쩌지 못한 젊음의 안타까운 입김같은, 퍼얼펄 내리는 낙화속을 오직 말없이 걷기만 하던 아~ 아~ 진홍빛 장미였던가, 그리고 너는 가고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는 육체 없는 낙화속을 나만 남아 가노니 뉘가 눈더러 소리없이 내린다더뇨.ㅡ
그때 나는 벚꽃 눈길을 걸으며,그 연분홍 꽃눈을 맞으면서 청마의 '낙화'를 읊조리기도 했었다. 그 당시의 나이로는 깊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쩌면 잡힐듯 말듯한 의미로 와닿는 그 시가 아무튼
지는 꽃잎이 흩날리는 분위기와 그 감상이 너무도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드벌룬처럼 봄 하늘로 붕붕 떠다니는 듯 하던 설레임과 , 한편으론 뭔가가 애닯고도 안타깝게 느껴지던 마음...
가느다란 한숨이 토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하다 어느덧 꿈결처럼 아름답던 벚꽃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이내 벚꽃가지에서 연초록 새잎이
뾰록 뾰록 움터 나오기 시작하면, 그 즈음에 이르러서야 그 한마당 꽃축제가 몰아다 주던 기분을
겨우 가라 앉힐 수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진해를 떠나 온지도 어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외로움에 젖어 들 때도 많았지만 진해에서 느꼈던 낭만과 정취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름의 고독과 방황,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뿍 쌓인 진해를 회상하는 일이 싫지않다.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나는 일년에 한차례는 진해에 가게 된다. 공설운동장 주변, 탱자나무 울타리가 정겹게 둘러쳐져 있던 일본식 목조건물의 군인 관사가 있던 자리엔
아느새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공연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의 정신적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절 치고는 그래도 진해는 옛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음에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진해가 알게 모르게 내 마음에 제 2의 고향처럼 자리한 탓으로 내게 낯설은 곳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때문이리라.
* 지금 진해엔 수많은 벚꽃나무들이 봄바람에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을 것이다.
며칠후면 벙긋 벙긋 꽃잎을 열 것이다.
꽃잎으로, 꽃잎으로 서걱이는 그리움에 젖어들어 머언 남녘땅 진해를 그려보는 바이다.
2003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