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그리운 이문구

뜰에봄 2007. 12. 2. 22:13

오늘 아침 야생화사이트에   올려진 이문구씨 詩 를 보고, '이문구'라는 이름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사무쳐서 나는 이내 '답변글' 을 딥따 길게 썼다.
 내가 이렇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끌려서 그 사람에 관한 건 뭐든 솔깃해지고, 그 사람에 관한 건 다 끌어 모으는 경향까지 있다.
이 문구씨도 그 중 한사람이다.
 내 친한 친구 구미 사는 내 친구 역시도 이 문구씨를 좋아해서 우리가 이문구씨의 ' 관촌수필' 한 권을  놓고  한 얘기만 해도 끝이 없는 지경이다.
' 아 거기 관촌수필에 나오는 대복이 그 사람, 그사람 보다 고기 잘 잡는 사람 못봤다고 책에 썼던데 맞어, 촌에 그런 사람 있다 왜, 다른사람하고 같이 하는데 곱절로 뭘 잘 해내는 사람. 글고 보면 우리 동네 수목이도 고기 하나는 잘 잡았재. 그리고 나만 하더라도  쑥 잘 뜯고 뭐 잘 다듬고, 고르는는 거, 손으로 하는거  나보다 빨리 하고 잘 하는 사람 없잖어....'  뭐 그런 저런 얘기~
그리고 또한 '우리동네' '유자소전' 등에 나오는, 이 문구씨가 그린 그 숱한 주인공들을 두고도 친구와 나는 마치 우리가 그 사람을 알기라도 한 듯 그 사람들 심리를 짚어가며 얼마나 많은 말을 울궈 먹었는지 모른다.
내 친구와 나는 니가 내다 싶을 만큼  책을 읽고 느끼는 공감대가 너무나 비슷하여 책을 읽고 난 얘기를 하면 죽이 척척 맞는데 특히 이문구씨 책을 읽고 같이 나누는 얘기는 이문구씨 특유의 질박한 정서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걸쭉한 재미와 활기가 실리게 된다.

지난해 내 친구는  남편이 간암 말기라는 청천 벽력같은 판정을 받고서 그 남편을 데리고 서울 아산병원에 올라와 있었다.
문병을 갔는데 친구는 평소 너무나 건강하던 남편이던지라 갑작스런 암판정만 해도 그런데  수술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는 사실이라는데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그렇고 말고이리라.
그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는 친구는 '우리 지원 아빠가 와 이렇겠노야.' 하는 말끝에 곧장 이문구씨 얘기를 끄집어 내었다.
'근데 참 이문구씨가 죽었을 적에 나는 그걸 몰랐데이.  와 그걸 한참 있다 알았겠노, 와 그걸 몰랐겠노. 나는 참말로 이 문구씨가 죽었는지 몰랐데이. 근데 니는 뭐하고 이문구가 죽었는데 내한테 전화도 안 했드노?  니도 참 희안하다, 이문구씨가 죽었는데도 우째 내한테 입다물고 있겠드노? ' 하는 말만 줄줄 내뱉고 있었다.
마치 남편이 아픈 사실보다 이문구씨 죽음이 더 큰일인양 말이다.
나는 안다.
'야, 니는 이 차판에 이 문구씨 말이 당하나?' 라고 대꾸를 했지만서도 내 친구가 그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이문구의 죽음을 두고 거론했던가를 나는 감지하고 있었다.
그 암담한 상황, 그 질식할 것 같은 병실 분위기를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방편으로, 문병간 나를 오히려 위로하는 방편으로서  자기는 아무렇지 않게 잘 견디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선  죽은 이문구씨라도 데려와  나랑 입맞춰가며 속없는 말이라도 싫컷 풀어내리고 싶었으리라.....

이 해들자 마자 구미 내 친구 남편은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내 구미가서 하룻밤 자고 올적에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새벽까지 안 넘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난 겨우 자정을 넘기고 잠에 빠졌다.
그때 그 많던 할 말을 잊은 채 왜 뜬금없이 ' 야, 이문구같은 사람도 죽었는데 뭐....' 소리가 나오던지....

그 사람이 죽은지도 1년이 가까워 온다.
며칠 전 신문에 이문구씨 생전에 투병중에 쓴 일기라던가?  
'그리운 이문구' 라는 책이 나왔더라.
그날로 서점에 가서 당장 사야지 해놓고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에 같으면 이렇게 잊어버리는 일 따윈 없었을 건데 내 정신도 이젠 깜박 깜박 잊는 나이에 이르러 버렸나보다.
오늘 아침 누가 올린 이문구씨 詩를 대하고서 비로소 떠올랐으니 말이다.
'오늘은 잊지 않고 책 꼭 살끼다.' 벼르고선 서점에 가서 ' 그리운 이문구' 책을 샀다.

아, 그리운 이문구!
퍼뜩 퍼뜩 몇장을 읽어 내린 후 구미 내 친구한테 전화해야지, 그리하면  남편을 보내고 난 이후로  계속 맥빠져 있는 내 친구 문디 가시나 목소리에 활기를 실어 줄 수 있으리라.

 

 하여 오늘 오후, 틈틈이 '그리운 이문구' 책을 읽었다.

별 유려한 문체도 아니고, 이문구씨 특유의 해학이 서린 바도 없다. 그저 이문구씨가 투병중에 간단 간단하게 적은 메모같은 글이다.

어쨌거나 친구에게 전화해서 '야야, 나 그 책 샀는데 내용이 어쩌고 저쩌고.... 그럴려고 했는데 아직도 전화를 안 받는다.

나는 시방 입이 근질거린다

 

200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