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나는 고삼엄마

뜰에봄 2007. 12. 2. 22:17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집에는 고삼이 있는데 그 중에 귀한 것이 고삼이라고 하더라,

나는 올해 그 귀하다는 고삼을 키우는 엄마이다.

즉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부모란 말씀이다.

우리 아들은 여태 학원이며 과외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는 통에 시키고 싶어도 못 시키고, 그렇다고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남들이 자율학습 하는 시간에 일찍 집에 와서는 환타지 소설이나 보고,

 컴퓨터만 해 대는 통에 말은 못하고(말하면 이내 오만상이 찌푸려짐) 저래서 어째 좀 괜찮다는 대학에 갈 수나 있을랑가 ?

은근히 부모속을 끓이던 터였다,

지난 겨울방학때도 집에서 하루 종일 어떻게 놀면 잘놀까? 고민을 하면서 보내던 넘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으로 성적은 썩 잘 나오는 편이라 '저놈은 공부말고 다른 걸 시켜야 해' 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리 아들내미 고삼이 다가왔고,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강남에서는 기백만원 과외는

예사이고, 심지어 줄넘기같은 체육과외도 한다는 보도를 아들과 같이 보게 되었다.

'과외'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입이 삐쭉거려지는 아들내미가 그 방송을 보고는 혀를 차며 엄마들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했다.

 말인즉슨 아이들이 그 과외비를 다 줄게 과외받는 만큼 공부해 보라고 하면 죽기 살기로 안 할 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너 같으면 그렇게 한단 말이지?' 라고 물었더니 그렇고 말고라고 했다.

요즘 부모들은 가랑이가 찢어져도 자식놈이 하겠다면 과외든 학원이든 시키는 세상에 나도 한 몫 거들어

 공부를 시키고 싶어도 제 놈이 하기 싫어 못 시키고 있는 입장, 녀석의 말을 듣고보니  갑자기 한가지 제안거리가 생각났다.

'야, 동후야 ! (울 아들 이름) 그럼 엄마가 고액 과외비쪼로 널 줄테니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봐라' 그래보았다.

녀석은 1학년 때 내가 원하던 모 대학을 정해 놓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다른 대학으로 바꾸놓은 터였다.

(요즘은 희망대학을 정해놓고 공부하드만)

말인즉슨 첨에 희망한 대학에 가려면 '언어'를 추가해서 공부해야 한다나 어떻다나.

그런 사실을 알고서 내가 아쉬워서 ' 하는김에 조금만 열심히해서 모 대학을 가도록 해 보라'는 이야기라도

 꺼내면 얼마나 역정을 내는지 자식새끼라도 겁이 다 날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내가 모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돈을 주겠다고 하자 녀석이 표정을 누그뜨리며 솔깃해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아들에게 걸은 돈은 자그만치 천만원이다.

 그러니 짜아식 물질에 욕심도 생겼을게다.

사실 난 여태 우리 아들에게 사교육비라고는 초등학교때 피아노1년 , 수영, 서예 조금 익히게 해 준 것 밖엔 없으니

강남 사는 사모님에 비하면 참으로 새 발에 피도 아닌 격이다.

내겐 엄청시리 거금이긴 하지만 천만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별 손해날 것도 없다 싶었다.

잔머리를 굴려보건데 그 천만원 또한 남도 아닌 아들 손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내 수중에 그냥 남아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우리 아들녀석이 평소 돈 만원짜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깨는 친구들 보면 참 간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고, 남들이 다 있는 핸드폰도 필요없다고 하는만큼 만약, 만약의 경우 돈 천만원이

주어지더라도 허투로 쓰지는 않을거라는 계산도 나왔다. (요건 울 아들한테 비밀이여)

 마침 5년전에 보험설계사의 권유에 못 이겨서 부운 보험 적금이 4월달에 만기가 되는고로 그걸 찾아서

 아예 선금조로 아들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건네주마고 했다.

그리고는 아들내미를 물질적으로 현혹되도록 얘기를 슬슬 유도해 보았다.

'야, 너 그 돈으로 뭐 할 거냐?  합격 발표가 날 무렵에 찾도록 해 놓을게....'하면서 말이다.

아들은 의외로 제 방에 컴퓨터 한 대 사고, 텔레비젼도 사들이고, 친구들한테 한 턱 쏘기도 하고 그런다나 어쩐다나...

싫지 않은 눈치이다.

 

약발을 받은 겐가?

아들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남들이 부러워 마지 않은 특별반에 뽑혀놓고도 특별반 수업도 , 자율학습도 않고

 학교 정규수업만 마치면 집으로 오기 바쁘던 넘이 이제는 학교에 남아 공부하다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온다.

일요일에도 8시 30분에 학교로 가서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돌아온다.

지금은 아침 6시 40분에 학교로 가는데 앞으로는 30분 더 일찍 가서 토론 수업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를 않던 놈이 고삼이 되어서 정신이 버쩍 드나 보다.

더구나 돈까지 걸린데야 제 놈 눈이 어찌 떠지지 않으랴.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렇게 하기싫은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걸 보니 한편으로 안스럽기도 하다.

한창 잠 잘 자고, 잘 먹고 해야 할 나이에 공부에 매달려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네 교육 현실이

꼭 이래야만 하는가? 싶기도 하고....

나도 이제 힘들게 생겼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금방 자고 나서 입맛도 없을 애에게 밥을 한 숟갈이라도 더 먹게 하려니

입에 맞는 반찬을 챙겨주는 일만로도 여간 고충이 아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간식이라도 챙겨주고, '아이구, 오늘도 애 썼다'  아들 등이라도 두드려 주려면

 될수있는대로 저녁모임같은 것도 삼가해야 할 것 같은 , 모처럼 맹모같은 생각도 든다.

에구....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아니지, 부디 좋은 결과가 지어지길 바라며,  어서 올 한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20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