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삼릉계곡 소나무 숲속의 빛내림
브람스를 듣는 오후
詩 : 김종제
이파리 몇 남은
느티나무의 어깨를
한 줄기 바람이 툭 치고 가자
비껴선 나뭇가지 몇 번 흔들리더니
잎 하나 뚝 떨어져
허공의 현들을 일제히 켠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
생의 그 먼 길
한 사람을 위해 이고왔던
짐이 무거웠을까
한 사람이 끌고온 짐을 받아주기가
그토록 힘겨웠을까
문 바깥 어두운 한 쪽 그늘에서
독獨으로 살아온 저 묵직한 선율
한 움큼 독毒을 삼키며 견뎌온
저 서늘한 곡조
한 철 무성하게 펄럭였던
은밀한 사랑이
어스름 달빛으로 펼쳐지고
짙은 호소의 눈발이 날린다
한 사람을 내 안에 존재하기 위해
죽음보다도 더 엄숙하게
부활보다 더 기쁘게 걸어가야 한다고
브람스가 들려오고
내게도 스산하게 바람 불어서
다하지 못한 사랑 같은 잎 떨어져
활처럼 내뼈를 켜고 있다
나무에 대하여
詩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빛의 소리
詩 : 우영규
빛이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창문을 드르륵 하고 여니 빛이 들어오고
방문을 스르르 하고 여니 빛이 들어오고
삐걱거리는 옷장을 여니
잠자던 옷가지에 빛이 들어온다
소리는 빛을 타고 와
빛이 비치는 곳마다 소리가 들린다
뒤뜰의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리고
들판의 땅 밑에 함성이 들리고
흙속의 벌레 알 발가락 펴는 소리가 들린다
빛은 소리를 데리고 봄으로도 와
빛이 머무는 곳마다 소리를 낸다
목련꽃에는 하얀 소리를 내고
개나리꽃에는 노란 소리를 내고
참꽃에서는 연분홍 소리가 난다
철길 두드리는 봄 소리가 난다
삼릉계곡은 골이 깊고 크다. 그래서 그런지 남산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불상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동서를 가로지른 골짜기의 북쪽, 즉 남향한 산능선 곳곳에 석불이 있다. 삼릉계곡에는 마애불, 선각불, 입체불이 다 있다. 경주 남산에서도 삼릉계곡에 불상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다. '부처님의 산' 남산에서도 삼릉계곡은 천불동(千佛洞)에 속한다. 지금은 그냥 편하게 삼릉계곡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원래 이름은 잣밭골(栢田谷)이었고 상류는 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깊은 계곡이라하여 냉골(冷谷)이라 불러온 것이라 한다.
삼릉계곡을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숲 한 가운데 커다란 무덤 3기가 있다. 그 무덤은 위에서 부터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덤 둘레에는 간혹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자연석 호석도 보이는데 이것은 원래 봉분 둘레에 호석(護石)을 쌓고 큰 자연암석을 둘러놓은 태종무열왕릉과 같은 양식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파괴되고 손실되어 원형토분처럼 보인다. 삼릉은 왕릉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소나무숲이 하도 좋아서 사람들이 모인다. 삼릉 숲의 소나무는 굵고 가늘고 똑바로 서있고 혹은 비스듬히 누워 제각기 모여드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지금 이곳 소나무숲의 멋진 분위기에 이끌려온 숱한 사람들에게는 삼릉에 묻힌 임금이 누군지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사진 : 2007년 11월 25일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소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