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대구가다
8월 28일 서병진 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8월 27일 낮에 길을 나섰다. 대구로 가서 다음날 가야겠기에 일단은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가는 중, 기차안에서 흰구름이 너무 예뻐서 찍은 사진이다.
대구역에서 해경이, 경조, 동후선배가 기다릴 것이다. 모처럼 반가운 얼굴을 대할 걸 생각하니
내 마음도 흰구름 마냥 부푸는 듯하다.
저 산은 왜관을 지나 대구 못 미처 차창밖으로 훤히 바라보이는 산이다.
끝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 산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 예전에 동생이 조치원 부근 군대에 있을 때
혜경이와 면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에서 기인처럼 생긴 영감님이 저 산을 가리키며 1300 년 지나면 저 산이
없어질 것이고, 대구가 수도가 된다고 했다. 그때 우리가 옆에서 "1300년도 잠깐이지요" 라고 했더니 그 영감님이
' 암, 1300년도 잠깐이고 말고..." 라고 했다, 우리는 그 이후로 한참 동안 세월 빠른 걸 두고 우리는 '1300년도 잠깐인데 뭘..'
라는 말을 써먹곤 했다, 그 말을 잊고 있었는데 저 산을 보니 생각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세월 참 빠르다. 저 산이 없어지려면 1300년 후라고 할 때가 어언 30 여년 전이다.
저 산이 없어진다는 날도 이제 1270 년만 있으면 된다. ㅎㅎ
오후 6시 내가 도착하는 시간. 대구역에서 해경이와 경조, 동후선배를 만나 일단 저녁 먹을 곳으로 찾아 가자고
동성로 거리를 걷는 중이다. 저 길 옆에는 <광학사> 라고 자그마한 카메라 수리점을 하는 재종오빠네가 살고 있었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해경이가 말하길 아란이, 혜경이 , 해경이, 나 이렇게 사진을 찍었던 사진관 자리도 바로 저 옆이라고 했다.
그때 무슨 마음으로 사진관에까지 가서 가족사진 같은 그런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대구역에서 동성로로 들어가는 초입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반가운 그대들 뒷모습 ^^
교동시장 모습이다. 예전에 저 길로 접어들면 사람들이 길 한복판에 쭈그리고 앉아 납짝만두, 순대같은 걸
사 먹기도 했는데...한번 시장안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해경이 어서 밥먹을 곳부터 찾자는 재촉에 그냥 지나쳤다.
저 안쪽에는 옷을 파는 곳이 있는데 사회초년병 시절 옷 사입으려고 옷집에 들렀다가 맘에 안 들어 안 사려고 하자 종업원이
길을 막고서 막무가내로 옷을 사라고 윽박질러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옷은 백화점에서 사는 버릇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때 옷장사들은 왜 그리 험악하고 무식했는지 원...
개정식당에 자리를 잡고서 8 천원짜리 전주특 비빔밥 한 그릇씩 먹고 나서 곱창찌개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자연스럽게 고향사람들 얘기가 흘러나오고 진태선배, 도자형님, 진종아재가 보고싶은 사람 순위에 올랐는데
나오시겠냐고 하니 하나같이 흔쾌히 나와주셨다. 나보다 4살이나 위이고 언니 동창이나 고향일가, 선배인 사이인지라
고향이야기며 지난 날들 얘기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저 편하고, 좋은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동후선배가 해경이 입에다 왜 손을 갖다 댔을꼬? 동후선배는 앞으로 암만 추워도 춥다소리 절대로 안 할거라고 해서
웃었다. 지난 여름 더위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절레 절레 흔들린다고 한다.
대구는 원래 덥다고 소문난 지방인데 올 여름은 특히 더위가 심해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해경이는 제법 취한 표정이다. 해경이 저때쯤엔 나도 좀 취했는데 어찌 카메라를 꺼낼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경조는 술을 반 잔도 안 마셨지 싶다. 경조는 술이 안 받는다고 한다. (그런 게 어딨어. 깨끌막진데 부으면 넘어가게
되어 있잖어. 사실 나도 처음에 소주 반 잔만 마셔도 어깨에 힘이 빠졌는데 술이란 것이 자꾸 마시니까 늘드만..
자꾸 거절하고, 술잔을 받아놓고 몰래 버리고 하는 일도 지겨워 어느날 부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시기 시작한
술인데 이젠 어느 정도 술을 마시면 기분도 좋아져 술 마시는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 되어버렸다구.
경조와 해경이는 중학교 동창생이고 나는 한 해 아래였는데도 해경이와 내가 너무 친하게 지내다보니까 해경이와 친했던
경조와도 친해져버렸다. 우리동네와 십리도 넘게 떨어진 경조네 집으로 가서 잔 적도 많다.
경조는 일찍 철이 들고, 매사 사려 깊은 친구이다.
해경이랑 경조, 우리 셋이 나란히 누워서 옛날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뻔 했는데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저렇게 되어 버렸다.
다들 술이 제법 취해있었던 것 같다,
동후선배는 여러 형제중 막내로 9살때 엄마를 잃고 자란 사람이라 내가 늘 짠하게 여기는데 내가 대놓고
너무 불쌍하다고 했더니 동후선배는 엄마 정을 미처 깨닫지 못 했던 철 없을 때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고 해서 내 마음을 더 짠하게 맹글었다.
철이 든 중학교때쯤만 돌아가셨어도 안 그랬을 터인데 어릴 때인지라 다 큰 형들이 가엽다고 뭘 사 줘가며 챙겨
주는 것이 너무 좋더라네.ㅠㅠ 엄마정을 알았다면 엄마없이 지내는 세월이 얼마나 힘든것을 느꼈을터인데..
듣고 보니 모르고 사는 것이 다행인것 같기도 하다.
술이 제법 센 편인 해경이도 술이 취했는지 씰데없는 말을 내 �고 있었다.
지 반생이라던가,한 생이라던가 , 통틀어 날 건진 것이 가장 큰 뭣이라고 하던 말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도 우리 아이가 돌을 넘겼을 무렵,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저 인간이 보고싶어 울었던 적이 있다.
* 10시 무렵 ,식당문을 닫아야 된다고 해서 저곳에서 2차로 최재선 선배가 운영하는 노래방으로자리를 옮겼다.
노래방에서 일어난 시간은 새벽 2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다들 기분좋게 취하고, 기분좋게 놀았던 기억뿐, 세세한 기억은 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