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남도 땅 밟고 오다.

뜰에봄 2009. 3. 29. 23:19

어제 토요일, 재우네집에서 하는 계모임 참석차 광주에 갔다.

남편 고향친구 다섯 집이 세 달에 한번씩 부부동반 모임을 갖는데 20 년을 넘게 유지해 온 모임이다.

그러니만큼 정도 들고, 스스럼이 없기도 하다.

 다들 고향 담양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권까지 와서 살게 된지라 향수도 달랠 겸 친목도 도모할 겸해서

모이기 시작한 건데  인천살던 재우네가 몇 년 전 광주로 내려가게 되어 한번씩 광주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태수엄마와 선영엄마가 못 갈 형편이라기에 미경엄마와 나도 가지말자 하고 다른계획까지 잡고 있었는데 떠나기 몇 시간 전에

미경이네서 전화가 와서 가자고 부추기길래 부랴 부랴 차표를 구하는 둥 법석을 떨며 떠난 것이다.

광주터미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도학한 미경이네와 만나 저녁 7시쯤 재우네가 살고 있는 광주 첨단이란 곳에 도착했다.

선영아빠, 태수아빠도 와서  재우네가 안내한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모처럼 고향친구를 만나 마음도 놓이고. 반가움에 기분이 고조되었는지 연거퍼 원샷으로 술잔을 비워댔다.

저 사람이 왜 저리도 바삐 과하게 마시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인사불성이 된 황당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정 넷이서 팔 다리 부분을 나눠잡고 재우네 거실까지 간신히 옮기는 사태 발발... (몇 년에 한 번씩 치루는 일이다)

그래서 2차 가려던 분위기도 싹 가셔지고 말았다.

예전에 그럴 땐 한심스럽기도 하고. 밉고, 마구 화가 치밀어 빗자루로 막 패주고 싶었는데 이젠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자빠져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그 나약함이 가엽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왝왝거리는 수발까지 들어야 했는데 그럴 땐 한 성질 하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한 마음으로

시종 차분하게 다독거렸더니만 미경아빠가 동후엄마 다시 봤단다. 히이..

하기사 마눌이 되어 당연히 할 일이재.

 

아침으로 해장국집에 가서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남도땅엔 벌써 목련이 지고, 벚꽃이 막 꽃망울을 터뜨릴 채비를 끝내고 ,

가로에 보이는 수양버들은 파릇 파릇 잎이 돋아 연두빛으로 일렁이며 봄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산수유마을로 가느니 운주사로 가느니 하다가 담양을 거쳐  병풍산을 넘어 백양사로 갔다.

백양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경내로 걸어들어가는데 입구부터 길가엔 개불알풀꽃들이 푸른보석을 쏟아부은듯이

피어있고.오른쪽 산치락엔 현호색이 좌악 깔려 있었다.

졸졸 흐르는 개울엔 기세좋게 피어나는 자주괴불도 있었다.

그 어여쁜 풀꽃들의 모습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경내까지 이르렀는데

 아~거기엔  만발해 있는 분홍빛 매화 나무가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

마치 꿈처럼 홀연히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라나 모르겠다.

그 매화는 수령이 350 년이나 되었다고 하며 '고불매' 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토록 오래된 매화나무 등걸에 어쩌면 그리도 탐스럽고 풍성한 꽃이 피었는지...

 수없이 많은 벌들이 갈팡질팡 어느 꽃에 앉아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윙윙거렸다.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이런 과분한 꽃축복을 받다니 정말이지 이건 완전히 횡재한 기분!

다른 사람들이 경내를 다 살피고 나가자고 독촉할 때까지 나는 그 매화나무 곁만 맴돌았다.

한 나절 그 꽃그늘에 드러누워 있어 봤으면...

 

그 매화를 뒤로하고 다시 병풍산 치락으로 가서 토끼탕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언젠가 누가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던 생각이 났다.

매화를 보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그 여운을 즐기면 좋으련만...(그건 어디까지나 뜰에봄 생각. ㅎㅎ)

 두 개의 들통에 담겨 나온 토끼탕을 다들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병풍산 언저리에서 쑥을 뜯었다.

칼이 없어 손으로 뜯으니 쑥냄새가 훅 더욱 진하게 끼쳐왔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오랫동안 평화롭고 따스하게 기억될 것 같아.

 

저녁에 올라오는 길은 도로가 제법 막혔다.

맨 앞자리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마침 버스에 설치된 텔레비젼에서 김연아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 출전 우승하는 모습이 계속 방영되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황홀하기까지 한 몸짓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런 동작이 가능한지...인간이 참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국민여동생 우리의 김연아가 세계피겨여왕’에 우뚝 선 모습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열시가 다 되어 도착, 롯데마트에서 시장을 봐서 귀가,

사실 광주 계모임보다도 어느 산골짝으로 가서 키작은 봄꽃이나 싫컷 보고 오는 게 더 좋겠구만 싶었는데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절정에 이른 백양사 고불매를 만나고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