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추도모임ㅡ2 (10월10일 )
향적봉으로 올라 가고 내려 가는 인파들이 길을 꽉 메우고 있다.
겨울엔 눈 칠갑이던 나무들이 고운 단풍옷을 입고 있었다.
아주 작은 돌산 무더기인데도 저 위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아래서 보는 것과 천지차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나보다. 돌팍위에 우뚝 선 남자가 낯이 익다.
생각같아서는 저 구비진 산길을 걸어 가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 먼 길을 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우리 차근이네 식구. 아들내미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하는 짓이 꼭 지 애비 어릴 때와 흡사해
우째 안 본 것도 우째 저래 닮노 싶다는...
장조카 장근이 아들 은우와 함께...은우엄마는 ' 말끝마다 홍은우 너무 잘 생겼지요? ' 하는데
그것도 내 핏줄이다 싶어서인지 듣기 싫지는 않다.
날이 맑게 개였는데도 구름인지 안개인지 오르락 내리락 산을 휘감는다.
먹고 남은 음식으로 양수 발전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 중.
며느리들 손에 물 안 묻히게 한다고 지난 해엔 세 끼를 다 사먹어 봤는데 워낙 많은 인원이다보니
손님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느긋하게 먹을 분위기도 안 되어 이번에는 해 먹기로 했던 것이다.
막내동생댁이 육계장을 끓이고, 고기를 재어오고, 야채며 밑반찬은 나눠서 한 가지씩 해 오니 먹을 것도 푸짐하고
맛있기도 해서 이게 식당에 7천원짜리 밥보다 훨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기에 적상산 안국사로 향했다.
아주 오래 전 늦가을에 내 친구 해경이와 지원이 아부지가 모는 차를 타고 왔던 기억이 난다.
몹시도 가파른 고갯길이 아슬아슬하면서도 경치가 좋아서 연신 탄성을 질렀었는데 그때보다 포장이 잘 된 길이라
아슬아슬한 감은 덜한 것 같다.
안국사를 오르는 내내 이제는 저 세상에 계신 지원이 아부지 현사성씨 생각...왜 그리 서둘려 가셨는지 야속하다.
해경이 사성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말 잘 하는 해경이와 말 없는 사성씨와는 답답해 못 살거라면서 내가
지원아부지를 우리집으로 오시게 해서 이웃 처자 선까지 보이며 말렸던 게 미안스럽고 후회된다.
해경이 결혼식장에서도 눈이 시빨개질 정도로 울었던지라 지원이 아부지는 그 결혼을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아셨을텐데도 나한테 참으로 잘 해주셨다. 한밤 친정에 갈 때마다 마눌하고 날 만나게 하려고 오밤중에라도 와 주었고.
내가 구미에 가도 기꺼이 반겨 주시며 안국사 같은데도 델고 가 주셨으니 말이다.
그넘의 코드가 뭐라꼬... 코드가 맞니 안 맞니 했는지 원...마누라,아이들 끔찍하게 위하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고,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면 잘 사는 거지...
안국사 해우소인데 나는 저런 오래된 나무 느낌이 단청을 곱게 올린 절 건물보다 훨씬 정이 간다.
이 산꼭대기에 어찌 이런 절을 지을 생각을 했으까?
안국사는 은희경의 단편소설 <그녀의 세 번째 남자>속에 <영추사>로 나오는 절이기도 하지 싶다.
언젠가 해겨이가 안국사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갑자기 절 이름이 생각 안 난다고 묻길래
<영국사>로 갈챠 줬다가 영국사 이정표 찾아 뺑뺑돌았다며 디지게 원망들었던 적이 있다.
아마도 영추사의 '영' 자가 뇌리에 깊이 박혔던가보다.
물이 철철 흐르는 샘
담쟁이 넝쿨이 고와서...
탑 둘레에 사람들은 전부 우리편이다.
양수발전소 전망대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