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연가(18)-허탄한 정신에 바르는 크림과 크랙커-
먼 것은 용서 못한다는 뮤트의 발언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그녀의 말에 의하면 뮤트가 술이 만취되어 새벽 두시쯤
사이버에 접속하는 것을 그녀가 타키로서 대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그 대화내용을
뮤트에게 이 메일로 부쳐왔다.
뮤트의 기억속에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그 대화내용은
놀랍게도 무려 11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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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전에 타키로 대화했던 것입니다..
혹시 놀라지 않으셨나요?
타키는 대화내용이 저장이 되질 않더군요..
그날 뮤트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에
잽싸게 복사해서 제 이메일에 넣어 두었답니다..
환타쥐: 새벽 두시에 접속하시네요.
뮤트 : 네..지금 좀 만취상태입니다.
환타쥐: 매일 술마셔요?
뮤트 : 요즘은 자꾸 그리 되네요. 안 마시려 애를 쓰는데..
환타쥐: 술자리..안가면 되잖아요..
뮤트 : 누가 여자 아니랄까바.. 여하튼 여자들은 사회성이 없으니..
환타쥐님도 저런 말씀하는 것 보니 참 평범한 여자..
환타쥐: M님이 그러던데..건강도 안 좋다면서요..
뮤트 : 남자들이란 군집해서 사는 동물이랍니다. 늑대들처럼..
밤낮으로 사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그 소리가 정체를 알 수 없고 승산도 없는 바람소리라도.
남자는 그 소리에 신들려..나가죠.
환타쥐: 술 취하셔도 말씀은 잘 하시네요.^^
뮤트 : 나가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엔.
집에서 편하게 잠들 수는 없는 것이 남자의 운명이랍니다.
환타쥐: 그래서..남자들이 여자보다 일찍 죽나보다..
그렇게 경쟁하는 사회의 긴장속에서 살아가니깐..
뮤트 : 그렇죠. 그런 면도 있어요.
환타쥐: 그래도 뮤트님 나이되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되는거 아닌가요? 자기의 존재..그런거 말이에요.
뮤트 : 내면이라구요? 남자에게 자기 존재라는 것은요..
사회에서의 자기의 위치가 자기 존재의 위상으로 대치되지요.
남자에겐 사회를 중심으로 두 가지의 자기 위치가 있어요.
원심력으로 존재하는 위치..그리고 구심력으로 존재하는 위치
뮤트 : 구심력은 아내와 자식들이 사는 가정..원심력은 남자가 돈 벌고
활동하는 사회라는 곳입니다.
저는 그 구심력의 소리에 한 번도 귀 기우린 적이 없지만.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멈추어야겠다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환타쥐: 그럼요..더 늦기전에요...돌아가세요.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혼자 지내면 왠지 청승이자나요...
남자란 동물은 혼자 잘 살지도 못하면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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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그 이 메일의 도입부분이다.
중간의 내용은 여기서 전체를 다 옮기는 것은 생략하겠다.
이 메일을 옮기는 것은 이 편지에 독자들에게 전할
특별한 메시지가 있거나 훌륭한 내용이 들어 있거나 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녀가 뮤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된 동기가 이 글로 말미암았다고
뻑뻑(?) 주장하므로 옮기는 것뿐이다.
도입 부분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로 이어져 있지만
이 편지의 중간부분은 그녀가 뮤트에게 행하는 몇 가지 심문조의
질문과 답변 등의 그저 그런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뮤트에게 바람피운 적이 있느냐, 여자가 섹스와 스킨십 외에는 뮤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냐. 그런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 등의 그녀의
일방적인 질문과 질문에 대한 뮤트의 답변이 중간 부분의 주 내용이다.
만취한 뮤트는 어리석게도 그녀의 질문에 매우 솔직하게 답하고 있었다.
다음 글은 그녀가 감동했다고 하는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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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 : 저 이제 그만 가서 자야겠습니다.
요즘..심신이 너무 다운되어서..
환타쥐: 업 될 수 있어요..뮤트님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서..
뮤트 : 업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이 되면...최소한 오늘과는 다른 세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뮤트 : 환타쥐님.
환타쥐: 넵!!
뮤트 : 환타쥐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므로 비록 제겐 섹스파트너도
스킨십도 할 수 없는 처지지만.. 업(up)하라고 격려해 주시니
감사..ㅎ..
제게 매일 같이 부쳐주는 그대의 편지글은..
참 아름답고 솔직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환타쥐: 하이공..취하긴 취하셨나보네요..
그래도 글 잘 쓰시는 뮤트님에게 칭찬받으니 기뻐요..ㅎㅎㅎ
뮤트 : 내 마음 속에서 환타쥐님의 글을 크림처럼 짜서 .
크랙커처럼 가루 내어서, 내 혼돈한 정신에 바르고.
그것으로 그대의 스킨십으로 삼도록 합니다.
그럼..잘자요.
환타쥐: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데요. 뮤트님은 평상시에 음악방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술 취한 사람 처럼 허탄하시더만...
오늘처럼 이렇게 진짜 술이 만취가 된 날의 글은 어떻게 그렇게
신사적이고 지성적인지 참 이해가 안 되는 분이세요.
낮에 대화방에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반듯하게 말씀하시면 더 훌륭하게
보일텐데요.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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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서 환타쥐님의 글을 크림처럼 짜서 크랙커처럼 가루 내어서,
내 혼돈한 정신에 바르고 그것으로 그대의 스킨십으로 삼도록 합니다.“
이 문장은 뒤에도 그녀의 편지속에 삽입되어 두고두고 회자된 내용이다.
그녀는 그 만취의 순간에, 몇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찰나적인 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빛나는 감수성의 글을 만들어 화면에 띄울 수가 있느냐고 침이 마르도록 경탄하였다.
지금 읽어도 도무지 이 문장이 그렇게 잘 된 것인지 그렇게 빛나는 문장인지
뮤트로서는 그저 벌쭘할 따름이다.
사람도 글도 제눈에 안경인 모양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 문장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편지의 톤을 크게 바꾸게 된다.
그냥 좋은 글, 좋은 시, 좋은 자료를 소개하고 부치는 수준에서 그녀의 편지는
사뭇 관능적인 색채를 띄우게 된다.
그녀는 그녀의 글을 뮤트에게 부치는 크랙커와 크림으로 비유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크랙커 몇 개 부치께요..맛있게 드세요.” 라든지
“이 크림..뮤트님 허탄한 정신에 발라 따뜻하게 되세요.”
"저 번의 그 크림 맛있었나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에 바르세요..
이상한 곳에 바르진 마시구요. 호호호.."하는 식으로
정신에 바르는 크림과 크랙커는 5년간의 긴 편지쓰기 속에서
빠지지 않는 그녀의 단골 메뉴가 된 것이다.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으로 인하여 그녀는 저 스스로 깊어가는 우물처럼
저 혼자 깊어 가는 강처럼 뮤트에게 감정 몰입되어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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