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봄 2012. 5. 2. 18:34

 

 고등학교 때 나와 가장 친했던 후배 선옥이 남편 유진 오빠야께선 4월6일 이세상 소풍을 끝내셨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행사꽃도 사 놓고, 주일 다음 날엔 친구들과 남쪽 지방으로 여행계획도 다 세워놓은 터에

부고를 받았는데 아무리 견주어봐도 갈 내가 빠져도 되는 처지가 아니었다.

 한편으로 분답은 장례식 때를 지나 조용히 한번 가서 선옥이를 위로하며 하룻밤 자고 오는 게 더 낫지 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켜 그 날을 잡은 것이 4월 28일이었다.

 

 

 

 6시 40 분, 수원에서 새마을 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니 11시였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래역에 다다라 선옥이와 선옥 아들 창우를 만나 택시를 타고서 당도한 곳이 실로암 공원묘역이었는데

연못 뒤에 보이는 건물이 유진이 오빠가 모셔진 소위 <납골당> 이란 곳이었다.

" 아이구,  우리 선배언니야가 여기까지 왠일이고?  어디 한번 안아보자 , 하고 두 팔을 벌리고 나왔어야 할 사람이

저 건물 안 조그마한 네모잽이 공간 하나를 차지하고 유리창 너머 액자에 끼워진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록도, 왕벚꽃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계절에 누가 또 이승을 등졌나보다.

장례를 끝낸 사람들은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하고.  꽃나무 그늘아래서 서성이기도 한다.

 

 

 

 

우리도 꽃그늘 아래로 찾아 들었는데 창우는 땅바닥이 편하다면 덥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곳에서 우리는 선옥이가 싸 가지고 온 물을 마시고, 요플레도 하나씩 먹었다.

 

 

 

     

 

 

 

 

납골당 위치가 좋다, 날씨도 좋다, 신록도 좋다, 꽃도 좋다....

좋다는 소리를 연발하자 선옥이가 "언니는 계속 '좋다' 소리만 하네 " 해서 속이 뜨끔했다.

 이렇듯 화창하고 좋은 날에 선옥이와 꽃구경을 목적으로 소풍을 나왔으면 얼마나 좋으랴...ㅠㅠ

좋다 좋다 하면서 눈물을 찍어 내지 않아도 될 것을..

 

 

 

      

 

 

꽃숭어리가 어쩌면 저다지도 탐스러울까? 

우리 고향동네 상매댁 석규집에도, 세월할배집에도 저런 왕벚꽃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예전에 고향동네 유치원 선생으로 와 있던 외순이에게 석규가 저 왕벚꽃을 꺾어서 갖다 주던 생각이 난다.

석규자슥. 꽃이라면 내가 어느 누구보다 껍뻑 넘어갈 정도로 좋아 하는줄 알면서 나한테는 안 갖다 주고

타성 처자인 외순이한테 꺾어다 바칠 생각은 우째 했으꼬? 싶었는데 그러던 중에 사랑이 싹 텄는지

나중에 둘은 결혼까지 했었다.

 

 

 

 

눈을 돌리니 한 켠에는 황매화가 자부룩히 피어있었다.

 

 

 

 

 

모자가 앞 서 가고, 나는 뒤 쳐져 사진을 찍었다.

마침 유진옵빠야 계신 골짜기 산 등성이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내 친구 태순이가 누워 있는 곳이라

태순이를 찾아 가 보기로 했다.

 

 

 

 

 오르는 길이 여간 가파르지 않았는데 신봉 8단지인가 하는 묘역을 찾느라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옳은 길로 접어 드는 등,  두어차례 착오를 겪은 후 드디어 태순이 묘앞에 다다랐다.

 

 

 

 

 태순이가 저 땅에 묻힐 때 나는 울면서 무덤 주위를 돌아다니며  풀꽃을 꺾어 던져 주었다.

태순이 아들 병수와 경인이가 사다 꽂은 조화인 듯, 여러 다발이 한테 엉겨 있길래 예쁘게 펴 주었다.

 태순이도 꽃 좋아 하는데 왜 꽃이라도 들고 올 생각을 못 했으까?

 

 

 

 

 양쪽 다 만져 주고 났더니 한결 훤하고 이쁘다.

샘 많은 우리 태순이,  꽃쟁이 친구 둔 탓에 이젠 어느 묘 앞의 꽃도 안 부럽다고 으쓱거려도 될만한 것 같다.

 여기까지 가파른 길로 올라 오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태순이 저 무덤에 묻혀 우리가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데

산소를 찾는 일이 뭔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 되내려 가자고도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진은 태순이 저 무덤에 묻히는 날 하염없이 눈물을 쏟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언제 또 저 얼굴을 보나 싶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인데 여태까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

 

 

 

 선옥이는 나의 고등학교 후배이고, 태순이는 선옥이와 애들 어릴 때 마주 보고 살면서 고만고만한 또래 애를 키우면서

 친해진 사이인데 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부산에 살 때 선옥이 때문에 알게된 친구이다.

 태순이는 성격이 화통하면서도  정스러워 뭐든 나누는 걸 좋아하고. 애살도 많고 매사 야무지기 짝이 없었다.

 목욕탕에 가면 저는 내 등을 밀어주면서 정작 지 등은 내가 미는 게 마뜩찮다는 핑계를 대고선 돈을 주고 밀었다.

그런데 그만 5년 전에 세상을 등져 버렸다.

 

 

 

 

태순이 묘앞에 가서도 나는 묘석이 좋으네. 전망이 좋으네...하는 말을 늘어 놓았다.

                                 

 

 

 

 

 길이 말 그대로 급경사였다. 창우는 뒷걸음이 편하다며 돌아서서 걸었다.

애통하기 그지 없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버거운 숙제 하나를 마친 듯한 심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