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행 (6월9일)
20 여년 만에 재우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막내 준욱이가 6월9일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과 함께...
재우 어머니는 내가 결혼전에 아저씨가 내 고향 팔공산 공군부대에 근무하셔서 군인 관사에 사셨는데
나하고 몹시 친하게 지냈다.
나를 자기집 식구로 만들겠다며 6촌 동생을 소개시켜 줄 정도였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저씨가 대구 동촌 비행장에 근무 하실 때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그때 한창 더운 여름 날에
날 부대 밖에까지 마중나와 주셨고, 내가 온다고 고향 관사에서 이웃하고 살던 아주머니들까지 다 불러놓고는
점심상을 어찌나 거하게 차려 놓았던지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일을 떠올리니 그간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싶기도 해서 결혼식에 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음 날은 동창인 형흠이 딸내미도 결혼식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잘 되었다 싶었다.
동대구 역 앞에는 꽃탑이 주욱 서 있었다.
꽃들이 잘 피고 있긴해도 어지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혼식에 생각도 못한 박서방 형님과 (왼쪽) 교감댁 형님이 와 계셨다.
재우 어머니가 군인가족으로 관사에 사시긴 했어도 워낙 사교성이 좋고, 넉넉하신 분이라 저 형님들하고도 친했는데
지금까지에 이르도록 돈독한 정을 유지해 온 모양이다.
박서방 형님은 너무 반가워서 눈시울까지 붉히셨다. 느그집하고 내가 우예 지냈는데...하시면서.
박서방 형님은 결혼해서 친정 곳에 산 관계로 다들 박서방 댁이라 불렀다. 조용하고 얌전한 선비타입의 박서방 아재는
술도가에 근무했는데 아재와는 달리 형님은 유머어가 풍부하고, 성격이 화통했다.
우리집하고는 이웃으로 살았는데 참말로 각별하게 지냈다.
우리 아버지가 형님을 특히 챙겼는데 집에서 하다못해 감자를 삶아도 박서방네 오라고 해라 소리를
가장 먼저 하실 정도였다.
형님도 그런 아버지를 못 잊는다고 하시며 형님네 둘째아들 도현이가 홍진을 할때에는 산토끼가 좋다며
어디서 산토끼 한 마리를 구해다 주셨던 얘기를 꺼내셨다. 홍진에 토끼를 고아먹이면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형님이 물을 다 끓여놓고 토끼를 잡으려고 토끼를 가둬 둔 장을 열었더니 토끼가 도망가고 없더란다.
하지만 아버지께는 차마 그 토끼가 도망가고 없더란 소리를 못해 애 잘 고아 먹였다고 거짓말을 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닭 한 마리도 못 붙잡으셨던 우리 아부지인데 우리 아버지가 어찌 산토끼를 잡으셨으까? 싶었다.
우리 둘째언니에게 얘기했더니 아부지가 어디서 구해다 주신거지 산토끼를 잡으셨을 리가 없다고 한 마디로 일축했다. ㅎ
교감댁 형님은 바깥어른이 고향 초등학교 교감을 지내시는 바람에 교감댁이라 불리웠다.
교감이신 분이 내게 항렬로 오라버니뻘이 되는지라 결혼 전부터 자연히 교감형님이라 불렀다.
점심시간에 그 형님 댁에 가서 점심도 여러번 얻어 먹고 했던지라 교감 형님하고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십 몇 년 만에 보니 그 곱던 모습은 어디가고 저렇듯 할매가 되어 있다.
언니, 나하고 열한 살이나 차이나는, 우리 큰 언니하고 동기인 경희언니다.
그런데 경희언니하고는 우리 언니보다 내가 더 친하다.
군인인 경희언니네 형부가 백령도에 근무하게 되어 언니가 친정 집에 살 때 언니 집은 우리 (동네에서 어울려 놀던 일당들 )의 본부였다.
물을 한 잔 줘도 크리스탈 컵에 주고, 날씨가 흐릴 때는 헤즐넛 커피를 갈아 내리며 집안에 커피향을 가득 채우고는
사실은 일회용 믹서 커피가 더 맛있다며 그걸 타 주던 언니다. 언니만큼 솜씨, 맵씨, 눈썰미를 갖춘 사람도 드물지싶다.
사람을 가려 사귀는 탓에 거만하다고 쑥덕거리는 사람도 제법 있었는데 나한테는 얼마나 잘 해 주었는지 모른다.
그 언니도 재우 아주머니와 같은 군인가족이었던 관계로 결혼식에 온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경희언니와 범어역 부근 커피숍에서 언니 딸내미인 지혜를 만났다.
보고 싶던 지혜, 정말 반갑다!
결혼 전 내가 언니와 친하게 지낼 무렵에 꼬마였던 지혜가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단다. 큰 애는 고등학생이라네.
지금도 여전히 야물딱진 모습이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어릴 때 지혜를 쪼쪼라고 불렀는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지혜와 헤어져서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야생화 동호회 인디카 영남 회원들이 동생 집하고 멀지 않은 곳으로 와 있다고 했다.
동생과 함께 회원들이 강가에서 물여뀌를 찍고 있는 강으로 갔다.
강 건너 편에서 푸른마음 님이 아는 척을 하며 카메라를 쏠 자세를 취한다.
푸른마음 님한테 걸린 ....
강에서 자리를 옮겨 철길로....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철로에도 볼만한 꽃이 있는 모양이다. (뭐라드라...이름을 까 먹었네)
습지에서도 작은 풀꽃을 발견한 듯...다들 정신없는 모습이다.
논에 물 보러 가는 폼 같지만 어떤 새로운 식물이 없을까, 하고 살피는 중이다.
몰입하는 모습이 이뻐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식당 입구에 톱풀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만약에 저 꽃이 야생으로 피었다면 다들 사진 찍으려 달려들었을 터인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만 봐 주니까 쟈들이 너무하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그날 먹은 옻닭
6월10일은 초딩 동창 형흠이 딸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형흠이 딸내미 이쁘네. 요즘 신부들은 결혼식 하는 게 그리 좋은지 대체로 다 웃는 것 같다.
결혼식장 식당에 안 가고 그 돈을 받아서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방에 다 못 앉아서 방을 두 개로 나누어 앉았다.
그냥 가자니까 기어이 노래방까지 가야한단다. 노래방은 횟집 2층에 있었다.
해도 안 빠졌는데 뭔 신명을 저리 내는지...
결혼식만 보고 간 친구도 있고, 노래방가자, 어쩌자 하며 분위기가 어수선한 몇 명이나 빠져나갔네
대구며 고향에 사는 동창생 애경사가 있으면 동창생들이 많을 때는 서른 명 가까이 모인다고 한다.
이번에도 스무 명은 온 것 같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우리 동창생이 전부 60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정말 많이 모이는 거다.
이 중에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가 세 명이다. 기상. 응선, 석규, 고맙데이.
내가 대구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부터 그 하루를 나를 위해 비워놓겠다고 하던 남이.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친구들과 혜어질 시간에 전화를 했더니 패나키 달려와 주었다.
어느 분위기 좋은 찻집으로 데려간다 하기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차향기, 그림향기>집으로 가자 하고 갔건만
문이 잠겨있어 밖에서다 들여다보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찻집대신 남이가 분양받아 가꾼다는 주말농장으로 갔다.
몇 평씩 분양받아 집집이 따로 가꾸는 농장이 볼만했다.
수확을 해서 먹는 재미도 있지만 매일 들여다 보는 재미가 더 클 것 같다.
예약된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남이는 집으로 데려가더니 기어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서
부부가 같이 부엌에 들어가 금세 뚝딱 상을 차렸다.
빨간 고추장 삼겹살은 젓가락을 쥔 손의 주인공, 다향님 솜씨.
삼겹살을 쪄서 기름기를 뺀 후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슬쩍 두루치기 했다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원래는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굽는다는데 다향님이 식당에서처럼 그리 할 수 없으니 응용한 거란다.
이틀 동안의 대구행. 여러 정다운 이들을 만나 가슴에 따신 물이 가득 차 오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