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대청 사진
야생화 동호회 <인디카> 회원이신 키큰나무님이 내 고향 한밤마을에 가셔서 찍어
카톡으로 보내 주신 사진이다
내가 고향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번쩍 차리는 줄 아시는 탓이리라
사진속의 건물은 고향마을 한복판에 있는 대청이다
한여름에도 이불 안 덮고는 추워서 못 잔다고했는데 올 여름같은 더위에도 그럴까?
어릴 때 고무줄놀이도 하고 땅 따먹기도 하던 대청마당엔 잔디가 깔리고 배롱나무도 심어져있다.
돌담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마을에 돈이 많이 나왔자고하더니 대청 마당의 변신도 가져 온 모양이다
잔디밭이 파랗게 손질도 잘 되어 있다만 왜 일키 생소한 느낌일까?
어릴 때 대청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대청을 돌며 내 빼면 잡기도 했고, 대청마루 아래로 기어 들어가기도 하고, 대청에 올라가 기둥을 잡고 뱅그르르 돌기도 했다.
대청과 정면 길 옆의 돌담은 아이들이 하도 기대어 돌이 반질반질 했지 싶다.
4H 클럽이 성행할 때는 청년들이 대청에 모여 태권도 비슷한 동작을 흉내 내면서 운동을 하던 생각이 난다. (그게 좀 웃겼다)
그리고 조기청소를 할 때에도 대청마당에 모였다.
설을 며칠 앞두고는 대청마당에 뻥튀기 장수가 진을 차렸다
어른들은 뻥 튀길 꺼리를 가져오는 차례대로 바닥에 줄지어 놓고 아이들 틈에 끼어 섰거나 멀찍이서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대청가까이 사는 이들은 아이에게 다 되어 갈 때쯤 연락하라고 부탁 해놓고 돌아가기도 했다.
대체로 옷소매에 코가 번들번들하게 묻은 동네 아이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대청마당으로 몰려들어
그 뻥튀기 장수와 같이 진을 치곤했다.
.곡식을 뻥튀기 기계에 넣고 깡통에 불을 피워 한참 달 군 뒤에 뻥을 튀기는데 그 과정을 줄곧 지켜보고 있다가
뻥튀기기 직전에 뻥 장수가 '뻥이요' 라는 말을 외칠 때면 모두들 귀를 틀어막고 선 자리에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드디어 알라딘 램프의 마법 같은 연기와 함께 뻥! 이 터지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땅을 살피기에 바빴다.
뻥튀기가 기계와 이어진 철망에 들어가다가 더러는 바깥으로 튀어 땅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 뻥튀기를 주워 먹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저런 잔디밭이었다면 뻥튀기 줍기는 훨씬 수월했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저 대청에 창문을 달아서 양재학원을 한 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문은 어떻게 해 달았을까?
어른들은 동네 처자들에게 양재기술이라도 배우게 하려고 대청을 이용하도록 허락했지 싶다.
양재선생은 키가 크고, 피부도 곱고, 그 당시 시골에선 보기 드문 멋쟁이 었는데
나중에 대청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상매댁 며느리가 되었다.
태순이 아우가 형흠이 집 돌담 위 왕과를 찍어 온 지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 피어있네
바로 저 왕과때문에 꽃쟁이들이 내 고향 한밤을 찾는다.
키큰 양반이 저 사진을 찍으신 날엔 부산에 계신 분도 동행했단다.
덕분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고향모습을 넘겨받는다
형흠이 할배, 세월할배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옛날 어른치고 키도 훤칠하시고, 잘 생기셨는데 늙으막에 노망이 드셔서
동네 여자아이들이 눈에 띄면 '조 년이 어디로 쫄랑쫄랑 나댕기노' 하시며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로
동네 치마를 들치시려고 하셨다.
아이들은 도망치면서도 어디 따라와 보시라는 듯이 용용 ...하면서 할배를 놀려 먹었다.
가버린 세월 저 만큼에서 한 자락 추억으로 떠 오르는 세월할배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