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꽃과 나

뜰에봄 2007. 8. 21. 17:24

'하늘에 별이 있고, 땅 위에 꽃이 있고, 우리들 가슴에 사랑이 있는 한 이 세상은 행복할 수 있다'는 괴테의 말씀도 있듯이

꽃은 정말이지 타고난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으로 우리에게 행복한 마음을 안겨 주지요.

저는 한 때 꽃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꽃에 미쳤던 때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미쳤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꽃에 정신을 뺏긴 적이 많았다고요.

봄이면 마당가 여기저기서 저절로 삐죽 삐죽 올라오는 당국화며 봉숭아, 금잔화 같은 흔한 꽃도 솎아버리지 못해

 골목이며

 뒤란 에 이르기 까지 옮겨 심곤 했지요.

아가씨 때 에도 어쩌다 꽃이 많이 심어진 집이 있으면 무작정 들어가 꽃모종을 얻어 오거나 꽃씨를 받아 오기도 했답니다.

비가 오면 꽃모종을 하기 위해 어떤 핑계를 되어 직장에 늦게 나간 적도 많고요.

국화를 삽목해서 대국으로 키운 적도 있는데, 신문에 보니 마산 꽃 단지에 국화 재배를 하는 분이 일본에서 귀한 품종을

 얻어 와서 재배한다기에 마산의 그 우산 꽃 단지라는 곳까지 찾아 가는 극성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70년도 말에 이르러선 우리 고향의 국민학교에 전근 오신 교감선생님을 통해 분재를 알게 되어 분재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분재는 달력 같은 데서나 볼 수 있었고,어쩜 저렇게 작은 분에 저토록 오래된 나무가 작은 모양으로 살 수 있을까?~

 기이하게만 여겨질 때였죠.

그런 분재를 산에서 직접 채취해서 분에 앉혀 살리는 걸 가까이서 보게 되니 너무 멋지고 희안 해서 정신이 팽 돌 지경이더군요.

하여 저도 톱이며 준비해서 직접 산으로 들로 다니며 분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네 청년들을 놉 해서 마사토도 한 경운기 실어놓고 이끼도 마대자루로 구해 놓고요.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체로 마사토를 일일이 쳐 내리기도 하며 분재를 한다며 쏟은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싶어집니다.

그렇게 한 분재분이 200 여개에 까지 이르렀지요.

역학 공부를 하는 내 친구는 저의 사주가 잔잔한 시냇가에 풀이 돋은 그런 형국이라서 '팔자'에 매였다고 하더군요.

결혼해서 올 때에도 신혼 짐으로 분재 분 50 여개와 국민 학교 4학년 무렵, 소 먹이러 다닐 때부터 주어 나른 돌멩이

같은 것들이 한 몫을 차지했죠.

집을 구할 때도 분재를 관리하기 좋은 주택을 택하느라 ,그 당시 주택 주인세대 전세금이면 작은 아파트 정도는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쪽으론 거들떠 볼 생각도 않았어요.

그런 분재며 화초들을 애지중지 끌안다시피 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더러 죽이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고

제 손에서 다 떠나고 말았답니다.

분재에 대해서는 어느 날 큰 회의에 젖어 들어 애착을 떨치게 되더군요.

언젠가 같은 날 똑같은 크기의 은행나무를 분재분에 담아 한 점을 큰언니에게 준 적이 있는데 글쎄

십 몇 년이 흘러 큰 언니네 집 뜰에 이층높이에 이르도록 자란 은행나무가 바로 제가 언니에게 준 그 은행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그루의 은행나무, 내게 남아 있는 건 그때껏 십 몇 년 전의키를 유지하며 늙은 티만 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순간 '내가 대체 뭐하는 짓이여' 싶은 자책감이 들더군요.

그 이후로 분재에 대한 집착은 옅어 지고, 내게 있던 분재들도 흐지부지 나눠지고 말았지요.ㅡ( 저와 분재와의 슬픈 결별입니다 )

예전 한 때는 집에 기르는 화초에서 꽃이 안 피어 있거나 , 혹은 사다 꽂은 꽃이라도 없을 때 손님이라도 오면

 전 뭔가 미흡하고 허전한 기분에 싸여 마치 정서불안증에 걸린 듯 집안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답니다.

가을이면 소국을 사들여 보통 일곱 여덟 군데 정도는 꽂아 두었지요.

소국 꽂기 좋을 법한 작은 옹기단지를 사 들인 게 스무 개도 넘는답니다.

예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자글자글 죄여 오는듯한 그 기쁨 ,그 떨림이라니....

10 년 전 전 제가 꽃집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니는 꽃 장사 못하지 싶다.

꽃 아까워 어찌 팔끼고....' 그런 반응들이었답니다.

그런데 전 지금까지 아까워서 꽃 못 판 경우는 한 번도 없이 꽃 장사 잘 해 오고 있습니다.

뜰에봄 꽃집에서, 가끔은 꽃에 대한 애정이 전 같지만은 않은 저 자신을 낯선 듯 스스로 돌아보기도 합니다.

변 할 수 있는 게 사람마음이라지만 전 솔직히 꽃 장사를 하면서 꽃에 대해 그 자지러지는 듯하던 감동을 많이

잃어버린 아쉬움이 있습니다.

언제 한번 어떤 손님이 와서 '꽃 장사는 저 꽃을 어떻게 팔까? 생각만 하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거만큼

꽃은 안 좋아 한다더군요?' 라고 말 했는데, 더러 그 말이 생각나기도 하답니다.

전 예전만큼 꽃에 기울이는 열정이 덜하다 뿐이지 여전히 꽃은 좋고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꽃을 매만지며 '아~참 예쁘다!' 제가 한마디씩 슬쩍 건네주기도 하는데 그 꽃들, 그래도 옛날의 제가 아니라고,

옛날 제가 지들을 쳐다보던 지극한 애정의 눈빛이 아니라고 지들끼리 속살거리는 거 같아요.

'그래, 나 좀 변했다 꽃들아, 그래도 니들 다른 사람들 손에 예쁘게 단장해서 들려주는 거,

그것도 꽤 할 만한 일이다. 아름다움을 나누는 일이란 말이야!...

이 아침, 봄의 뜰에 꽃씨를 뿌릴 랍니다.

어여쁜 꽃 피어날 제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자구요.

                                                                    2004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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