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봄꽃집에서

귀한 꽃손님

뜰에봄 2007. 9. 6. 20:32

 

어제 오전 우리 꽃집에 회갑은 족히 넘은 듯해 보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다.

머뭇머뭇 두리번거리시기에 '씨앗 사러 오셨어요?' 그러니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꽃집에선 채소 씨앗도 팜)

'아,꽃을 좀 사봤으면 좋겠는데 ~ 한 번도 안 사 봐가지고....' 말끝을 흐리신다.

 생화보다 조화를 많이 취급하는 꽃집이라서 가끔 나이 드신 어른들이 조화를 사러 오시기도 하기에

나는 얼른 그 중 밝고 환한 조화 쪽으로 가서 ' 이런 꽃 좀 보시겠어요?' 하니 아니라고 하시며

'거, 살아있는 꽃 샀으면 싶은데...'하셨다.

 꽃 냉장고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어떤 꽃을 드릴까요?' 그러니 '난 잘 몰라요' 하시며 안식구가 요즘

뭔 일인지 몹시 기분이 울적해 있는데 꽃이라도 사다 주면 어떨까 싶어서 그러는데 환갑도 넘은 이 늙은이가

꽃을 사 봤어야 알재요.그러신다.

그러시며 만원어치만 싸달라고 하셨다.

 장미와 안개를 빼내들다가 생각하니 그건 우선은 곱고 예쁘지만 빨리 시들기가 쉽기에 노인들이

금방 실망하실 것 같아 주황 노랑 자줏빛 소국을 섞어 다발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꽃을 사러 올 때는 늘 하는 일이니 손놀림도 신속하고 포장지 색깔도 척척 맞춰

 금방 해 주게 되는데 생전 처음 할아버지가 우울한 할머니를 위해 건네주는 꽃다발이라고 생각하니

 왜 그리 신경이 쓰이던지....

 할아버지께서 생전 처음 사 보는 꽃이라고 하셨듯이 나 또한 그렇듯 지긋하신 연세에 우울한 아내를

 위해 꽃을 사는 손님은 나로서도 처음이니  정말 귀한 꽃 손님이신 것이다.

 그러니만큼 내 명색이 꽃 포장이 포함된 플라워 디자인 강사이기도 하건만 몇 번이나 포장지며

리본을 뒤적거린 끝에야 꽃 포장을 마쳐서 건네 드렸다.

 할아버지의 잔잔한 사랑이 배인 그 꽃다발로 인해 할머니의 우울증이 확 가셔지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2002.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