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옴마 편지

뜰에봄 2007. 9. 12. 08:25

              

 

            

 


지난 해 가을, 엄마가 돌아 가시고나서 어렴풋이 엄마에게 받은 편지를 떠 올리고서 지난 편지들을 들추어 엄마 편지를 찾아 내었다.
고등학교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오빠집에서 다녔는데 난생 처음 엄마곁을 떠나 있는 내게
난생 처음 엄마가 내게 쓰신  편지이다.

엄마 편지를 보면 융남매를 길너서 동서남북으로 헌터놋코 언제나 길를때와 갓치 한 자리애 사라보기 얼어울듯 하여
먼일을 하여도 헙뿌고 가이업다 하셨다. 그리고  헙쁜마음 둘 곳 업서 이 조흔 세월도 지루하다 하시고는
자식들 소식 듯기만 , 기다리고 바래신다고 적혀있다.
엄마가 어리실 때 외할아버지께서 사랑에 동네 애들을 불러들여 글을 가르치셨는데
외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많이 받은 엄마께선 외할아버지가 애들 글을 가르치실 때에도
사랑채를 드나드시며 어깨넘어로 글을 깨치셨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깨치신 글로 성경이며 가사를 읽고, 더러 가사를 베끼거나 짓기도 하셨는데
철자법까지 다 익히시기엔 무리이셨던갑다.


헤아려보면 저 편지를 쓸 때 우리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내가 저 편지를 받을 당시의 우리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마음만은  늙지않고 , 오만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을 터인데 그런 줄 몰랐다.
글씨도 소리나는대로 쓸 줄 밖에 모르는 촌할마씨로 여기며, 자식을 생각하는 건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고,
엄마니까 저런 편지를 쓰는 것이리라. 엄마는 기실 세월이 헙뿌지도 외롭지도 않은 줄 알았다.
내가 지금 스물한 살 우리 아들을 군대 보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우리 엄마 역시 날 슬하에서 멀리 떼어 놓고
얼마나 안쓰러우셨으랴.
엄마편지를 보면서, 다시금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떠올라 목이 매인다.


솜씨가 좋으셨던 우리 엄마는 음식도 잘 하셨지만 특히 천으로 뭘 만들기를 좋아하셔서
예쁜 천조각으로 쪽보며, 베갯모같은 것을 곧잘 만드셨는데 때로 주머니도 만들어 주셨다.
빨갛고 파란 양단, 보라색 공단, 같은 걸로 만든 동그란 모양의 복주머니는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나는 지갑삼아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
  그 주머니 울엄마가 만들어 준 거라다며  자랑도 많이 하고, 애착을 가졌는데 그런 것들은 다 어쨌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편지 옆에 놓인 저 까만 주머니는 ' 귀주머니' 를 한번 만들어 보자 하시며 만드신 기억이 나는데
저건 까만색이고 고운 양단주머니와 달리
예쁘지도 않아 내가 애착을 갖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지금 저거라도 남아 있으니 소중하기 그지없다.

                                    2006 년 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