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사랑
詩 : 오 보 영
사슴아
넌 그저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어주기만 하면 된단다
네 환한 모습 그대로
네 맑은 마음 그대로
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너 주어진 있는대로
살아가면서
그런 널
난 그저
지켜만보고 싶단다
너 커나가는 모습 바라보면서
너 채워지는 가슴 여겨보면서
너 힘겨울 때 북돋아주고
너 아파할 때 다독여주고
너 시려할 때 보듬어주고
그렇게
난 그저
너 잘 됨 위해 기도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네 옆에
머물러있고 싶단다
사랑을 묻는 그대에게
詩 : 김춘경
사랑이 목마른 날,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에는
하늘에 편지를 씁니다
사랑이 무엇이더냐고
바보처럼 되묻는 물음 한 줄에,
저 강물 햇살이 비치면
강섶에 자라난 들풀의 키만큼
그리움이 그림자지는 것이라고
대답 두 줄을 씁니다
쓰다 만 편지지 여백에
오그라든 명치끝이 아려 오면
그댄, 소리 없이 다가와
저녁 강에 별빛으로 반짝이다
달빛으로 스러지고,
먹구름으로 떠돌다가
강물을 적시는 찬비로 내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을 덧댑니다
이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사랑을 묻는 그대
그리움으로 답하는 그대와
서로 하나일 수 밖에 없음은
우리가 함께 사랑한 까닭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저녁노을 같은 그대
내겐 언제나 아름다운 하늘이기에
그대가 보고픈 날,
그리움이 밀려오는 날에는
물빛 하늘에 편지를 띄웁니다
그대가 그리워지면
詩 : 오시영
그대가 그리워지면
두손을 깍지지어
가슴에 대어 봅니다
왼손을 위로 했다가
거꾸로도 해 봅니다
어느 쪽으로 하던
깍지낀 손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어느새
내 몸의 반쪽은
그대가 됩니다
그대가 그리워지면
물 한 모금을 마십니다
그대는 나의 갈증입니다
그대에게도
물 한 잔을 드리고 싶습니다
꽃멀미
詩 : 김충규
새가 숨어 우는 줄 알았는데
나무에 핀 꽃이 울고 있었다
화병에 꽂으려고 가지를 꺾으려다가
그 마음을 뚝 꺾어버렸다
피 흘리지 않는 마음, 버릴 데가 없다
나무의 그늘에 앉아 꽃 냄새를 맡았다
마음속엔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곳이 여럿 있었다
내 몸 속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파놓은 자리,
오랜 시간과 함께 응어리처럼 굳어버린 자국들
그 자국들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때
깊고 아린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꽃 냄새를 맡은 새의 울음에선 순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
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
빽빽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
왜 나는 꽃 냄새를 맡고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늘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물렀던 자리가 움푹 패여,
그 자리에 햇살들이 피라미처럼 와글와글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아니, 황금의 등을 가진 고래 한 마리가
물결 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마흔도 되기전에, 내 눈엔 벌써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사후(死後)의 어느 한적한 오후에,
이승으로 유배 와 꽃멀미를 하는 기분
저승의 가장 잔혹한 유배는
자신이 살았던 이승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보게 하는 것일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 꽃 냄새, 이 황홀한 꽃의 내장,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를 쳤다
봄 햇살 날개에 누워서
詩 : 김용관
봄 햇살은 아무데나 주저앉아
보이지 않는 현으로
천상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뾰쪽한 청 솔잎 위에서
외줄 타는 광대마냥 출렁거리기도 하고
활엽수 한 가운데 머물러
흔들어도 떨어질 줄 모르는 여린 몸짓
어디든 다가가면
가슴 활짝 펴고 맞이하는 사물들
임보다 더 좋은 것이 네 얼굴이니
마음대로 춤을 추어라
마음대로 노래를 불러라
바다 위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춤을 추고
바위 위에서는 부서진 시체로 떨어져
커다란 화판이듯 물감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
네가 음영(陰影)을 가리지 않고 내려오듯
나 아무데나 누워서 한 이불로 삼고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아
봄의 현에 춘면곡(春眠曲)을 녹여보리라
자운영 꽃밭을 지날 때
詩 : 이정자
꽃빛에 스민 마음 한 자락이 갑자기 환해진다
이 세상 소풍 나와 꽃 피울 일이 어찌 너뿐이겠냐고
꽃인 너나 나나, 저마다 꽃 같은 한 시절이 있노라고
자운영 꽃빛깔에 휘감긴 한 생애가 그 앞을 지나간다
순간, 등뼈 어딘가에는 빛나는 시간의
나이테가 황홀히 새겨졌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자운영 꽃밭을 지나듯 지나온 길을
아련히 되돌아보게 하는
영원하고 싶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사라지는 것들의 쓸쓸함 속에서도
자운영 꽃밭을 지나듯 지나온 한 시절이 있어
화인처럼 찍힌 아름다운 날들이 있어
쓸쓸한 한 생을 오늘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詩 : 서정윤
가끔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대 속에 빠져
그대를 잃어버렸을 때
나는 그대를 찾기에 지쳐 있다
하나는 이미 둘을 포함하고
둘이 되면 비로소
열림과 닫힘이 생긴다
내가 그대 속에서 움직이면
서로를 느낄 수는 있어도
그대가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해 허둥댄다
이제 나는 그대를 벗어나
저만큼 서서 보고 있다
가끔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다
자운영 꽃길같이
詩 : 박종영
꽃상여 메고 가는 길이 아니거든
쉬어가도 무방한 산천이다
겨우내 기다리던 들꽃 퍼다가
살짝이 안겨주면 해맑게 열리는 날이다
봄 기운얻어 논둑 채우는 강아지 풀이나
무논 풍덩대는 물총새 물장구가
한낮의 고요를 일깨워
쏠쏠한 향기 피어오르게 한다
낮게 나르는 오월의 푸른 제비,
배부르게 낚아채는 벌레사냥이 날렵하다
저렇듯 곡예를 닮아 허튼 세월에 뿌렸으면
한층 부유한 곳간을 채웠으리라
돌아오는 석양의 길목에
물결치며 가슴 여는 자운영 꽃무리,
은은하게 비쳐오는 색감으로
가슴은 쉽게 달구어 지고
나도 붉은 가슴 받쳐들고
봄 밤 고운 임 찾아보면
기쁨 일어설까
[사진 : 창녕 우포늪의 자운영 2007년 4월 22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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