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 말을 습득하는 일이 일생동안 이룩하는 일 중 가장 큰 위업(偉業)
이라지요? 아직 세 돌이 채 안 된 손녀가 요즘 말을 배우는 걸 보아도 경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하루는 현관에 들어서며 에미가 “할아버지 집은 더우니까 옷을
벗자” 그러면서 외투를 벗기니 이놈이 한다는 소리가 “다윤이 집은 추워”
그러더군요. 또 한번은 제 사촌 오빠보고 “빨리 와”라고 소리치는데 오빠가
미처 안 오니 “빨리 오라구!” 그러기도 하였습니다.
이게 뭐 그리 놀라우냐고요? 놀랍지요. ‘할아버지 집은 덥다’는 말에는 어디는 안
덥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 꼬맹이가 어떻게 그걸 이미 알고 자기 집은 춥
다고 하니 어찌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빨리 오라구”의 ‘-구’는 표준어로는
‘-고’인데 이놈이 어디서 이런 것까지 배워서 쓰고 있는지 저는 이 말을 들을 때
정망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는 “빨리 오라니까”의 ‘-니까’ 등과
함께 가령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경우라면 가장 마지막 단계에나
가르칠 아주 궁벽진 요소인데 그걸 세 살짜리가 이미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참으로 천재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문법책에서 그 용법을
설명하려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것들을 어찌 그리 쉽게들 척척 말하는지요?
“제주도에는 벌써 벚꽃이 피었더라”의 ‘-더’만 해도 가령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려
면 참 어려울 텐데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합니까? 천재가 아니고선 이런 말을
만들어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배워 하지도 못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것 중 ‘은/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앞에서 “할아버지
집은 더워”와 “다윤이 집은 추워”에서 이미 선을 보인 ‘은/는’에 대해서 말입니다.
먼저 다음 예문부터 보기로 하죠. ‘은/는’과 함께 ‘이/가’를 <> 안에 넣어 특별히
드러내 보았습니다.
(1) 어느 유명한 과학자<가> 천문학에 관한 공개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또 태양<은> 우리 은하라고 하는 광대한 별의
집단의 중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강연<이> 끝나자 한 자그마
한 노부인<이>뒷좌석에서 일어나서 하는 말<이> “당신<이> 한 이야기<는> 엉터
리예요. 우주<는> 큰 거북 등에 얹힌 납작한 널빤지라구요.” 그 과학자<는> 넌지
시 웃으면서 “그 거북이<가> 올라탄 것<은> 무엇이지요?” 하고 되물었다. 노부
인<은> 말했다. “젊은 양반, 참 똑똑도 하시군요. 그렇지만 이<건> 밑바닥까지
전부 거북이란 말씀이에요!” (<時間의 歷史>: 21)
이 예문은 호킹(Stephen W. Hawking)의 A Brief History of Time이라는 책을
현정준 박사가 <時間의 歷史>(三省이데아, 1988)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것에서
뽑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다같이 주어 자리에 쓰였는데 어떨 때는
‘이/가’를 쓰고 어떨 때는 ‘은/는’을 썼다는 점입니다. 영어 원문에서는 아무 차이
가 없는 것을 구별해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훌륭히 구별되고 있습니다. 예문 첫머리의 “어느 유명한 과학
자가”의 ‘가’를 ‘는’으로 바꾸어 “어느 유명한 과학자는”이라고 하면 부자연스러워
집니다. 그 뒤의 “당신이 한 이야기는 엉터리예요”의 ‘이’와 ‘는’을 뒤바꾸어 “당
신은 한 이야기가 엉터리예요”라고 해도 우스워지지요. 그런 것을 번역자는 아주
척척 제대로 ‘이/가’와 ‘은/는’을 구별해 놓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것도 아닌 것일 수 있겠지요. 그거야말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내 몸처럼 익숙해져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나 그게 어
떻게 척하면 척하고 빠져나오도록 몸에 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역시 신비하
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한국사람 빰 치게 잘하는 수준이 되어도 이 구별을 잘 하지
못합니다.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라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그
들에게 그 구별법을 설명해 주기 가장 어려운 부분도 이것이고요. 그것을 우리는
예문 (1)에서 보듯이 힘들이지 않고 척척 구별합니다. 이런 신통한 일이 어디 또
있겠어요?
다음 예문도 보실까요. 여러분들은 이들 예문에서 어떨 때 (ㄱ)쪽을 쓰는 게 낫고
어떨 때 (ㄴ)쪽을 쓰는 게 낫겠다는 걸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 ㄱ. 명호가 부반장입니다.
ㄴ. 명호는 부반장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음 예문 (4)에서 ‘총각이’를 ‘총각은’이라고 말하는 일은 절대
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문 (5)의 ‘제가’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
실 것입니다. 이 예문 (5)는 한국에 유학을 와 한국어를 전공하는 중국 학생이 제
게 보낸 메일의 앞부분인데 이들은 제게 전화를 할 때도 “제가 채리입니다”라고
합니다.
(4) 옛날 옛적에 깊고 깊은 산골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홀로 농사를 짓고 살았
답니다.
(5) 존경하는 이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생 채리(蔡莉)입니다.
예문 (4)의 ‘총각’처럼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에 ‘은/는’은 안 어울립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떤 이론을 배워서가 아니라 직관(直觀)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예문
(5)의 ‘제가’가 어색하다는 것도 다 직관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다 척척박사요 천재들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은/는’과 ‘이/가’의
구별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저 스스로 글을 쓰면서 ‘는’을 썼던 걸 ‘가’로 고
치고 그걸 다시 ‘는’으로 고치는 일이 없지 않으니까요. 정말 어떨 때는 어느쪽이
좋은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아고
우리는 거의가 ‘은/는’에 관한 한, 외국인들이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그 어려운
‘은/는’에 관한 한 척척박사들입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각자가
다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만날 야단맞는 기분이다가 오늘은 모처럼 어깨가 쭉 펴지는 기분이 아
닌지요? 오늘은 다함께 좀 우쭐거려도 좋을 듯합니다.
이라지요? 아직 세 돌이 채 안 된 손녀가 요즘 말을 배우는 걸 보아도 경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하루는 현관에 들어서며 에미가 “할아버지 집은 더우니까 옷을
벗자” 그러면서 외투를 벗기니 이놈이 한다는 소리가 “다윤이 집은 추워”
그러더군요. 또 한번은 제 사촌 오빠보고 “빨리 와”라고 소리치는데 오빠가
미처 안 오니 “빨리 오라구!” 그러기도 하였습니다.
이게 뭐 그리 놀라우냐고요? 놀랍지요. ‘할아버지 집은 덥다’는 말에는 어디는 안
덥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 꼬맹이가 어떻게 그걸 이미 알고 자기 집은 춥
다고 하니 어찌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빨리 오라구”의 ‘-구’는 표준어로는
‘-고’인데 이놈이 어디서 이런 것까지 배워서 쓰고 있는지 저는 이 말을 들을 때
정망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는 “빨리 오라니까”의 ‘-니까’ 등과
함께 가령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경우라면 가장 마지막 단계에나
가르칠 아주 궁벽진 요소인데 그걸 세 살짜리가 이미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참으로 천재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문법책에서 그 용법을
설명하려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것들을 어찌 그리 쉽게들 척척 말하는지요?
“제주도에는 벌써 벚꽃이 피었더라”의 ‘-더’만 해도 가령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려
면 참 어려울 텐데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합니까? 천재가 아니고선 이런 말을
만들어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배워 하지도 못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것 중 ‘은/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앞에서 “할아버지
집은 더워”와 “다윤이 집은 추워”에서 이미 선을 보인 ‘은/는’에 대해서 말입니다.
먼저 다음 예문부터 보기로 하죠. ‘은/는’과 함께 ‘이/가’를 <> 안에 넣어 특별히
드러내 보았습니다.
(1) 어느 유명한 과학자<가> 천문학에 관한 공개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또 태양<은> 우리 은하라고 하는 광대한 별의
집단의 중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강연<이> 끝나자 한 자그마
한 노부인<이>뒷좌석에서 일어나서 하는 말<이> “당신<이> 한 이야기<는> 엉터
리예요. 우주<는> 큰 거북 등에 얹힌 납작한 널빤지라구요.” 그 과학자<는> 넌지
시 웃으면서 “그 거북이<가> 올라탄 것<은> 무엇이지요?” 하고 되물었다. 노부
인<은> 말했다. “젊은 양반, 참 똑똑도 하시군요. 그렇지만 이<건> 밑바닥까지
전부 거북이란 말씀이에요!” (<時間의 歷史>: 21)
이 예문은 호킹(Stephen W. Hawking)의 A Brief History of Time이라는 책을
현정준 박사가 <時間의 歷史>(三省이데아, 1988)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것에서
뽑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다같이 주어 자리에 쓰였는데 어떨 때는
‘이/가’를 쓰고 어떨 때는 ‘은/는’을 썼다는 점입니다. 영어 원문에서는 아무 차이
가 없는 것을 구별해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훌륭히 구별되고 있습니다. 예문 첫머리의 “어느 유명한 과학
자가”의 ‘가’를 ‘는’으로 바꾸어 “어느 유명한 과학자는”이라고 하면 부자연스러워
집니다. 그 뒤의 “당신이 한 이야기는 엉터리예요”의 ‘이’와 ‘는’을 뒤바꾸어 “당
신은 한 이야기가 엉터리예요”라고 해도 우스워지지요. 그런 것을 번역자는 아주
척척 제대로 ‘이/가’와 ‘은/는’을 구별해 놓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것도 아닌 것일 수 있겠지요. 그거야말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내 몸처럼 익숙해져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나 그게 어
떻게 척하면 척하고 빠져나오도록 몸에 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역시 신비하
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한국사람 빰 치게 잘하는 수준이 되어도 이 구별을 잘 하지
못합니다.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라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그
들에게 그 구별법을 설명해 주기 가장 어려운 부분도 이것이고요. 그것을 우리는
예문 (1)에서 보듯이 힘들이지 않고 척척 구별합니다. 이런 신통한 일이 어디 또
있겠어요?
다음 예문도 보실까요. 여러분들은 이들 예문에서 어떨 때 (ㄱ)쪽을 쓰는 게 낫고
어떨 때 (ㄴ)쪽을 쓰는 게 낫겠다는 걸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 ㄱ. 명호가 부반장입니다.
ㄴ. 명호는 부반장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음 예문 (4)에서 ‘총각이’를 ‘총각은’이라고 말하는 일은 절대
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문 (5)의 ‘제가’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
실 것입니다. 이 예문 (5)는 한국에 유학을 와 한국어를 전공하는 중국 학생이 제
게 보낸 메일의 앞부분인데 이들은 제게 전화를 할 때도 “제가 채리입니다”라고
합니다.
(4) 옛날 옛적에 깊고 깊은 산골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홀로 농사를 짓고 살았
답니다.
(5) 존경하는 이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생 채리(蔡莉)입니다.
예문 (4)의 ‘총각’처럼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에 ‘은/는’은 안 어울립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떤 이론을 배워서가 아니라 직관(直觀)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예문
(5)의 ‘제가’가 어색하다는 것도 다 직관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다 척척박사요 천재들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은/는’과 ‘이/가’의
구별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저 스스로 글을 쓰면서 ‘는’을 썼던 걸 ‘가’로 고
치고 그걸 다시 ‘는’으로 고치는 일이 없지 않으니까요. 정말 어떨 때는 어느쪽이
좋은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아고
우리는 거의가 ‘은/는’에 관한 한, 외국인들이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그 어려운
‘은/는’에 관한 한 척척박사들입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각자가
다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만날 야단맞는 기분이다가 오늘은 모처럼 어깨가 쭉 펴지는 기분이 아
닌지요? 오늘은 다함께 좀 우쭐거려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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