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이 들어 꽃구경이나 가자 하고 청계 어디메 있다는 야생화 농원 이름만 듣고 찾아 갔다가 찾지도 못하고 백운 호숫가만 한바퀴 돌아서 내 꽃뜨락에 왔더니 아, 이 풀꽃 !! 탁자위에 개망초꽃이 한아름이나 되게 꽂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녹색연합 월간 책자까지 놓여 있었고요. 희옥이가 다녀갔구나! 아니나 다를까, 책 속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아우뻘인 희옥이 어디 가는 길에 들렀노라는 쪽지가 삐죽히 꽂혀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쁘기도 해라... 전엔 개망초가 어떤 향기를 지닌 줄도 몰랐는데, 꽃병에 가득 꽂힌 개망초는 알싸한 그리움같은 향기까지 소올솔 풍기네요.
'요즈음 철엔 길가에, 들판에, 작은 동산 언저리에, 어디서건 지천으로 피어난 개망초꽃, '개망초' 이름이 소박하거니와 자잘하니 귀여운 꽃, 우리 나라 어디서건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인지라 전 순수한 우리 풀꽃인 줄 알았는데 귀화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은근히 실망스럽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개망초꽃에 대한 옛 기억 한 자락.... 이십 수 년전 이맘때 쯤, 두명의 친구와 전북지방을 여행하면서 '위봉사' 라는 절을 찾아 보기로 하던 중에 한지를 만들던 작은 시골마을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겨우 20 여 가구도 안 되었지 싶은 그 시골마을까지 어떻게 찾아들게 되어 민박을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영 깜깜하네요. 한지를 아기 기저귀처럼 펄럭 펄럭 펼쳐 놓았던 모습이 인상깊던 그 촌동네에서 하룻밤을 자고 사람들이 일러준대로 위봉사를 찾아 가던 길은 '가도 가도 황톳길....'이라는 말처럼 길을 잘못 들었나싶게 가도 가도 황톳길이었고, 여름날 햇볕은 또한 얼마나 뜨겁게 내리쬐던지요. 날은 덥고, 인가조차 나오지 않은 길은 끝이 없고..... 아, 그런데 그 길 양 쪽에 개망초꽃 또한 주욱 늘어서서 길처럼 끝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가을철 길가에 심어놓은 코스모스처럼 일렬로 피어 이어지던 그 개망초꽃, 개망초꽃의 그 흰 꽃 빛이 왠지 슬픔처럼 다가들면서 마치 소복입은 여인의 지친 한숨처럼 여겨졌습니다. 아무튼 그땐 그랬습니다. 어쩌면...꽃이 슬플 수도 있구나, ~ 꽃을 보고 슬프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건 저로서는 생전 처음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꽃을 보아도 그때같은 감상에 젖어들지는 않던 걸 보면 아마도 스물 몇 살 그 당시 마치 감상주의같은 멋을 부린 감성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개망초꽃이 나를 울립니다. 이 며칠 째 전 길을 가다가 개망초꽃을 보면 이내 마음이 아려오고, 개망초꽃을 앞에 두고 개망초꽃 얘길 늘어놓는 지금도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양심에 거리낄 일도 아니어서 반성을 할 수도 없고, 꼭히 죄라고 할단정지을 수도 없는 죄를 쓰고 囚人이 된 한 사람 있는데, 제가 잘 아는 그가 그의 누나에게 보낸 편지가 내 눈시울을 젖게 합니다. 개망초꽃 이야기입니다.
새싹이 쏘옥 쏙 돋아 나던 새봄에 느닷없는 벽력처럼 囚人신세가 된 그에게 있어서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하는 숨통인 것은 하늘과 작은 동산을 바라 볼 수 있는 창이라고 했습니다. 구치소 건물 7층에 위치해 있는 그의 독방에서 그는 그 창을 통해 마른 가지에 잎이 나는 모습이라던가, 그 잎이 자라남에 따라 까치집이 덮히는 모습이라던가, 까치집이 있는 나무 아래 봄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이며 풀들이 자라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게 일과였고, 즐거움이라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번꼴로 그가 누나에게 보내오는 편지에만 해도 첫장 절반은 왼통 그 동산소식을 보고하는 것으로 메꾸었습니다. 그의 봄 편지엔 누나,저건 조밥꽃이고, 조밥꽃보다 멀리 산치락에 붉은 건 진달래이고 저 샛노란 꽃은 애기똥풀이고, 찔레꽃도 피었다느니 하는 소식이었고, 얼마전엔 하얀 꽃이 고물고물 피어나는 걸 보니 아마도 개망초꽃인 것 같다고, 지천으로 흔하게 보아오던 꽃이라 더욱 정겹고, 반갑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엔 참으로 낙심 천만인 일이 벌어져서 상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가 있는 건물 주변을 관리하는 이가 글쎄 예초기를 들이밀어 그의 동산에 있는 풀들이며 개망초꽃들을 다 밀어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봄부터 먼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음으로 가꾸었던 것들인데... 그에게는 그것들이 참으로 정다운 친구 이상으로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데....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길들여져서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이 수난을 당하는 건 뻔히 지켜보면서도 말릴 수도 어쩌지도 못함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 이루 말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 그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애착' 이라더니, 이 흔해빠진 풀꽃이 어떤 이에겐 그토록 큰 위안이 될 수가 있고, 바라볼 수 없음에는 그토록 크나큰 실망과 슬픔을 안겨줄 수도 있음이라니,,,
그 동산의 개망초 수난 소식을 듣고 난 이후로 전 개망초꽃을 바라보노라면 결코 무심해질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속이 상하고, 자꾸 자꾸 마음이 아려와서 개망초꽃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바람인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우리 풀꽃들을 만나러 온 천지사방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우린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우리 풀꽃 사랑이 지극하신 고운 님들, 아무쪼록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뜰에 여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2003, 7 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