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숨겨진 역사의 신비/양성원 ㅡ ( 노인봉님 옮기심 )

뜰에봄 2007. 12. 16. 11:27

                                   양성원 씨 CD 음반 표지 사진 ㅡ 경주 삼릉의 소나무 숲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유년기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탓일까, 한국적인 멋은 내게 늘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꼬레’라는 생소한 나라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서화를 꺼내 보여주셨고, 어머니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김치와 불고기는 물론, 신선로에 이르기까지 전통음식으로 그네들을 대접하셨다.
그럴 때마다 자부심 강한 프랑스인들임에도 깜짝 놀라며 깊은 인상을 받는 모습을 문 뒤에서
숨어보며 뿌듯해하던 기억이 참 새롭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번에는 내가 프랑스 친구들을 한국에서 맞이할 기회가 생겼다.
공연에 관계된 일로 잠깐 대도시만을 다녀가곤 했기에 그네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국의
모습은 복잡한 빌딩 숲과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인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만든
갖가지 김치를 맛보고 나서 그들은 우리의 깊은 맛에 반했다며 비로소 우리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오기 시작했는데, ‘아, 이젠 우리 문화재를 눈으로 직접 보여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어 경주 답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여러 왕릉을 둘러보면서 그들은 이국적인 문화에 깊이 감동하며
그 오랜 역사와 미적인 우월성에 존경을 표하였다. 그와 더불어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였는데 이는 왕릉 근교의 어느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서였다. 한적하고
외지기까지 한 곳에 마치 승천하는 용과 같은 형상으로 휘어진 적송들이 군무를 추듯
무리지어 들어선 모습에 그 자리에서 압도되고 말았다. 신라시대에는 소나무가 외부로부터
왕릉을 보호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고 여겨 그 주위에 빽빽하게 숲을 이루도록 심었다고 한다.

또한, 벌목을 예방하는 취지로 곧은 나무보단 휘어진 형태를 선호하였다니 기지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숲 가운데 서니 바람의 흐름이 커다란 곡선으로 바뀌어 물 흐르듯 나의 몸을
휘감고, 수천 년 전부터 이 지역을 보살펴 오던 영험한 기운이 체내에 흘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영상은 지워지지 않는 영감이 되어 내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동안
강물처럼 스며들었다. 음반 사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 내 얼굴 모습보다는 나의 내면을 감동시킨
나무 숲이 내 음악 세계를 더 잘 표현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배병우 님의
경주 소나무 숲 사진 작품이 나의 바흐 음반 표지와 속지에서 그 가치를 더하게 된 것이다. 그때
경주를 함께 방문했던 프랑스인들은 그때를 계기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지식을 쌓아가고 있다.
비록 많은 전쟁을 겪느라 우리나라의 수많은 건축물이 손실된 것은 큰 아픔이 아닐 수 없으나,
경주의 소나무 숲과 같은 수세기를 뛰어넘는 숨겨진 역사의 신비를 언젠가 꼭 대면하리라는
기대를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지게 된다.  

***
필자 첼리스트 양성원
세계 굴지의 유명 연주장에서 청중들로부터 아낌없는 갈채를 받고 있는 양성원님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고, 세계적인 음반사 EMI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며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녹음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분의 글을 그전에도 신문 칼럼에서 저장해 둔 것이 있는데, 저로서는 두번째 대하는 글인데,
글솜씨가 대단히 뛰어나신 분 같습니다. 이 글은 문화부에서 공급하는 것에서 옮겨왔습니다.

***



흐르는 음악은 Cello Suite No.1 in G Major BWV 1007- 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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