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나의 살던 고향집 마당은...

뜰에봄 2008. 5. 22. 00:32

 

동생이 고향집을 다녀 왔다고 하길래 '사진 찍어 온 거 있으면 보내봐라' 했더니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돌단풍 꽃도 흐드러졌고, 연산홍 붉은 꽃도 살짝 보이네.
돌단풍은 내가 결혼 전에 갯골가서 용사샘 옆 바위에 붙은 것을 뜯어와 심은 것인데 저 한 자리에 참 오래도록 건강하게 있어줘서
반갑고 고맙다.  연산홍은 십 수 전 고향집을 찾았을 때 마당에 심어져 있길래 엄마더러 사다 심으셨냐고 여쭸더니
대구에서 이사온 이웃집에 있는 영산홍이 하도 예뻐서 내가 결혼전에 해 놓았던 단풍나무 분재와 바꾸었다고 하셨다.
연산홍꽃이 너무 곱고 예쁘다며 잘 했지 않냐는 듯 자랑스럽고도 행복하신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대뜸
'사려고 들면 단풍나무 분재가 얼마나 더 비싸고 가치있는 건데  꼴랑 연산홍과 바꾸셨어요?" 하며
타박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그렇게나 좋아하시면 됐지. 그까짓 단풍나무가 뭐 그리 대수라고....쩌업.
올해도 저 꽃이 곱게 피었었구나, 아직도 몇 송이 남아 있구나.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남아 있는 꽃 몇 송이가 기특하다시며 틀림없이 몇 번은 어루만져주셨을거다
비자나무는 가지가 저렇게 널부러져 있네. 마른나무 가지도 눈에 거슬린다. 좀 정리해 주면 좋을 걸...

 

 

 

붓꽃도  피어 있구나. 초록속의 보랏빛 꽃이 새뜻하게 예쁘기도 하다.

구석에 황매화도 아직 몇 송이 남아 있는듯 하네.

 황매화도 마치 수없이 많은 등불을  켠듯이 환하게 피어 날 때면  참 볼만했지.

 

 

 

.집 뒤안 텃밭가에도 단풍나무를 심고, 붓꽃을 심으실 정도로 꽃 좋아하시던 우리 엄마.
잡초속에서 붓꽃이 우뚝하니 곱게 솟아 올랐네.
우리 작은 오빠께서 " 어무이 계셨으면 마당을 그렇게 놔 두지를 않으실텐데....고향집 마당 구석 구석
무성한 잡초를 뽑아 주고 싶어도 세 든 사람이 살고 있는지라 그러지도 못하겠고... "  그저 안타깝다, 안타깝다 하시던
연유를 알만하다.

 

저 창문으로 엄마가 금방이라도 얼굴을 내미실 것만 같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 사진보다 먼저 노란꽃창포가 핀 줄을 알았을거다.

전화를 하면 제일 먼저 마당에 핀 꽃소식을 알려 주시던 엄마였으니...

한번 다녀 가시라고 하면 '야야, ** 꽃이 피어 있는데 저거 놔 두고 우예 가노. ' 하시며

때때마다 꽃 핑계를 대시며 고향집을 못 떠나 오시던 우리엄마. 저 꽃 못 잊어 어찌 가셨으꼬?...

 

 

 

 

 

파란 문이 있는 건물(건물이라고 하니 디게 웃긴다만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네) 은

바깥화장실이다. 집 뒤안 돌담 밖 작은 채전옆에 위치해 있는 탓에 결혼 전 우리집을 자주

들락거리던 도시친구들은  시외변소라고 말했다.

40년도 더 묵은 담쟁이로 둘러싸여 그게 볼만했는데 그 담쟁이도 너무 늙어 죽어가는지

전에같이 무성하지 않네.

 

 

 

 이 사진은 지난 여름 역시나 동생이 고향집을 찾았다가 찍어 온 사진이다.
고향집을 홀로 지키시던 엄마가 2005년 10월에 소천하시고 나서 누가 세를 달라고 했지만
육 남매나 되는 우리 형제들이 어쩌다 한번 고향을 찾더라도 들어 앉을 집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냥 비워 놓았었다.그랬는데 엄마가 안 계시니 고향에 갈 일도 없을뿐더러 어쩌다가 갈 일이 있다고 해도
교통이 이렇게 좋은 세상에 엄마도 없는집에  자고 올 이유가 없었다.
일년도 넘게 비워 놓았다가 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비워놓으면 못 쓴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세를 놓기에 이르렀다.
오빠와 동생식구들이 세를 주느라  엄마의 물품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올케언니가 이웃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서슴없이
나눠 주었는데 일을 다 마무리 지어 놓고 난 뒤 우리 작은 오빠께선 집으로 돌아 가서는 어무이 짐을 그렇게 없애버리니 섭섭해
못 살겠다시며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올케가 그 다음날로 이웃들에게 준 것을 도로 받아 왔다고 했다.
그 엄마 짐들은 고향집 작은 방에다 보관해 놓았단다.
언니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들으면서 언니와 같이 웃다가 울다가 했는데  그 일화를 떠 올리기만 하면
울컥 목이 메이면서 눈물이 솟는다.
우리 작은 오빠는 잔정도 많고 효심도 깊으셔서 엄마 살아계실 때도 제일 자주 고향집을 찾으신 편이었는데
요즘도 그 고향집에 있는 호두며, 감, 대추같은 건 세 든 사람이 손을 못대게 하고 직접 관리하고 계신다.
가을이 끝나면 호두와 그 감으로 만든 곶감을 형제들에게 낱 개에 이르기까지 꼭 같은 갯수로 나눠 주신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리 욕심을 낼까? 싶겠지만 그것이 우리 오빠에게 있어선 물질적인 가치로는 도저히
따질 수가 없는, 오빠의 그 어떤 감성을 충족시키는 문제일 것이다.

오빠께선 지금  세 든 여자가  집안에 잡초가 무성하도록 내버려둔 채  허구한 날  마당에 있는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화투나 치는 것 같더라며 어무이가 꽃을 가꾸시고 , 성경을 읽으시며 지내시던 집이 그리 잡스럽게
변하도록 놔둬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곧잘 푸념을 늘어 놓으신다.
그러나 어쩌랴, 집이건, 물건이건, 사람이건 등등...그 가치를 제대로 빛내 줄 임자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고향집에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저 사진 하나 하나가  한없이 유정하고 따사롭게 다가오련마는 나는 시방
그저 쓸쓸하고 가슴이 아려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가꾸시던  마당의 모습이다. 그때가 시월달이라 끈질기게 오래 피는 몇 가지 꽃만 보인다.

사실 그해는 내내 편찮으셔서 꽃밭도 예전같이 예쁘게 가꾸지 못하셨지만 저 노란 다알리아를 특히 자랑스러워 하셨다.

 

 

 

꽃을 너무도 좋아하신 우리 엄마는 마당에 갖가지 꽃을 심어 놓으신걸로도  모자라 방안에도 항상 꽃을 꽂아 두고 사셨다.
누가 우리 집에  와서 꽃이 참 예쁘다거나 어찌 가꾸셨냐는 등의 관심을 보일 때면 이내 희색만면하시고선  더 잘 해주고 싶어 하셨다.
엄마가 계신 하늘나라엔 지금 어떤 꽃이 피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엔간히도 고운 꽃들이 피었지 싶다.
아마도 그 꽃 못 잊어 이 딸년 꿈에조차도 안 나타나시지 싶다.  못 말리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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