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이화님과 함께한 시간

뜰에봄 2008. 8. 30. 10:46

 

 

선생님 퇴임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서 해경이와 우리를 실어 준 도자형님을 보내고 이화님과 최씨고택을 찾았다.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이화님은 내가 경주에 온다니까 울산에서 기꺼이 날 보러 경주로 와 주셨다.

요석공주가 살던 터에 있는 요석궁 식당 정원이 참 예뻐서 볼만하더라며 내게 보여주고 싶어하셨는데 '요석궁' 식당을 찾아갔더니

식사손님 외에는 출입금지라고 해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점심도 먹고 난 후라 다시 식사를 할 수도 엄꼬....정원만 잠깐 구경하겠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물리치는 인심이 참 야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곧장 그 옆에 있는 최씨고택으로 향했다.

 

 

 

                         최씨 고택 입구

 

경주 교동에 위치한최부자집은 특권층의 의무를 넘어, 사회 선을 실현했던 경주 최부자. 최부잣집은 한국 역사상

 유례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자그마치 12대 4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다는데 그 비결은

아래와 같은 가훈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당쟁에 얽히지 말라는 뜻)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라는 뜻)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인정을 베풀어 적을 만들지 말라는 뜻)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가진자로서 없는자를 착취하지 말라는 뜻)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검소, 절약하라는 뜻)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상부상조하라는 뜻 )

 

 

 

 

생각했던 것보다 만석군 부잣집이었다는 집의 규모가 조촐하고 단정한 느낌이다.

 

 

 

뒷 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이화님도 ' 나도 저런 풍경에 끌린다' 고 하셨다.

정서적으로 서로 일치하는 점을 발견 할 때는 더할 수 없이  반갑다,  한 발 더 가까워지는 느낌 ^^

 

 

 

                 이런 정경에 끌리는 것도 일치!

 

 

 

사랑채에는 덩치가 자그마하신 할무이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일본에서 온 수학여행단도 있었는데 방문객이 있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도 없으신 듯 하다.

 

 

 

이화님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을 찍으니 멋지더라고 하셔서 그냥 한번 찍어 보았다.  똑딱이 카메라로 작품성을 기대할 처지도 아니긴

하지만 ㅎㅎ...사진이 참 아니올시다.

 

 

 

 

최부잣집 바로 곁에 붙은 집인데 이렇듯 마당에 꽃이 예쁘게 가꿔져 있길래 서슴치 않고 들어가 보았다. 프록스, 기주,족도리꽃,

맥문동이 기세좋게 자라고 있었고, 모과나무와 석류나무도 탐스럽게 열매를 달고 있었다.

 

 

 

 최부자 작은집이라는데 저 집에도 할무이 한 분만 뜰을 서성이고 계셨다.

 

 

 

 이화님이 할머니 보고 마루에 앉아 보시라 했더니 대뜸 ' 나보고 모델 하라고?" 하시면 앉아 주셨다.

'모델' 이라는 신식말을 하도 자연스럽게 하셔서 놀랐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난다는 말이 있더니 저 앉아 계시는 모습이 꼭 그런 느낌이다.^^

 

 

 

허리도 꼿꼿하시고 저렇듯 고우신데 연세가 92세라고 하신다, 아직 귀도 밝으셔서 우리가 하는 얘길 다 알아 들으셨다.

옛날 노인치고 말씀도 너무 잘하시고, 세상 이치에도 밝으신 듯 하다 했더니 경북여고 6회 졸업생이라고 하셨다.

경북여고라면 경북에서 제일로 뽑히는 , 그 프라이드가 남다른 학교인데 그 시절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으셨으니

참 대단하기도 하다. 경북여고 특징인 교복치마에 흰 띠를 달고 다니며 날렸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도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셨다.

 

 

 

 마치 다정한 모녀같다. 두 분의 표정이 참 예쁘다.

 

 

 

이런 연세 많으신 안 어른들을 뵈올 때면 마치 엄마같은 생각이 들어 덥썩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뭐 먹을 거라도 좀 전해 드리고 싶어진다. 다음에 오게 되면 사탕이라도 한 봉지  사 가지고 오리라, 작정.

 

  

 

 

 사진을 크게 찍어 놓으니까 전날 과음(?)으로 하여 찐빵처럼 부풀어 있는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느만 옛날 우리 엄마가

입으셨던 것과 같은  할매브라우스라던지 할매 얼굴 주름까지 상세하게 보여서 좋다, 잘 늙은 노인들의 주름은 정말 아름답다.

 

 

 

아직도 능소화가 저렇듯 곱게 피어있고, 마당에 기자, 맥문동, 족도리풀 같은 화초가 고택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을이면 모과가 노랗게 익은 모습도 볼만하단다

할머니는 몇 차례나 꽃 곱지 않냐고 자랑을 하시는데 정말 곱다고 맞장구를 쳐 드렸다.

.꽃사랑이 유별나셨던 우리엄마도 누가 우리집에 와서 꽃이 예쁘다고 하면 그렇게도 흐뭇해 하시던 생각이 났다,

이화님이 사진을 찍으시길래  나도 맞장샷.

 

 

 석류가 어느새 빨갛게 익어있다, 내 고향집 마당의 석류도 저렇게 익어갈까?

석류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나팔꽃을 뽑지 않고 그대로 놔 둔 것을 보니 꽃 한 포기도 소중히 여기는 그댁 사람들의

고운 정서가 짐작되어진다.

 

 

 

최부자집을 나와서 곧장 동리, 목월문학관에 다다랐다. 이화님은 석굴암으로 가자고 하시는 걸 목월, 동리문학관을 가 보자고 했다.

 언제 부터 한번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화님덕분에 원을 풀게 되네.

그 예전, 그 어른들이 쓰신 소설을, 시를 읽으며  한껏 감성을 부풀리곤 했는데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건물이 번듯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목월시인상 앞에 서신 이화님, 또 하나의 징한 인연으로 엮여 버린것 같은 느낌이 그저 뿌듯하다.

 

 

 

 

 

박목월 시인께서 지내시던 생전의 서재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검소한 분위기가 참 좋다.

 

 

 

          김동리선생님의 방안 풍경이란다.

 

 

 

한국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의 모습.

 

 

                     문학관 실내 모습

 

 

 

이화님과는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래된 지기 같은 느낌이다. 아화님은 내가 촌사람이라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래, 맞어 우리를 댓바람에 이어 준 건 그 촌 것, 촌스러움이 아닌가 한다. 이화님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맑은 느낌^^*

 

 

 

목월, 동리문학관 분위기와는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나는 아사달 碑 앞이다. 

 사진을 찍어 주는 이에게 '억수로 친해 보이그로 찍어 주이소' 라고 하던 이화님의 주문이 있었음인가.

내가 봐도 참 친해 보인다. 이미 친해져 버렸으니 당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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