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이 펼쳐졌습니다.
오래 전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종시동생의 안내로 소쇄원을 찾은 적이 있는데 대나무 줄기가 엄청시리 굵은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그때 그 대나무를 베어내고 새로 심은 건지, 제 눈에 달라 보이는지, 아무튼 그때만큼 굵어 보이지가 않더군요.
소쇄원 입구, 관리인 집인 듯한 마루 밑에 있는 강쥐가 너무 귀여웠어요.
겨울 나무 숲 사이로 소쇄원이 보입니다.
광풍각:비가온뒤 해가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
옆에서 본 광풍각
돌다리 위에 담이 쌓은 게 특이하다. 어찌 저런 담을 쌓을 생각을 했으까?
넘어질까 좀 위태로운 생각도 들었어요.
오랫만에 보는 우물이 정겹습니다. 제가 어릴 땐 저런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었지요.
우물안에 초록색 풀(봉의꼬리)이 있으니 다들 반가와서 환호했습니다.
겨우내 초록에 굶주렸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저 우물은 하늘도, 나무도, 사람도 다 품는데 별로 깊지는 않았어요.
식혜 빈 깡통이 떠 있는 걸 내가 팔을 뻗어 건져 낼 정도였으니요.
두 분은 뭘 겨냥하고 계실까?
작은 계곡인데 빙폭을 이룬 곳도 있었어요.
아궁이를 보니 불을 때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어요.
저런 집은 고래도 잘 놓여져서 불길이 잘 빨려 들어 갈 것 같아요.
제월당 : 정자라기 보다는 정사精舍의 성격을 띄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불태산 님께선 정자마다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어요.
모임에는 저런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명색이 정자 탐방인데 이 남자는 어디 고사리가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기 일쑤더니 드디어 한 껀 잡으신 모양입니다
키큰나무 님이라면 모를까? 나같은 사람에겐 해당없는 <머리 조심>
어? 오른쪽 아래 모자 쓴 여인 출몰! ㅡ 깜짝이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저씨넹.
배롱나무가 너무 멋져요!. 배롱나무 꽃 필 때 와도 좋겠어요.
우리 편들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어요.
대나무가 흔한 고장이라 오리집도 대나무로 만들었네요.
소쇄원에서 나와 식영정에 다다랐습니다다.
어느 해 가을, 남편 친구 모임에서 어딜 가다가 저 앞을 지날 때 '식영정' 팻말을 보고 잠시 차를 세워 들렀던 적이 있어요.
저는 이 초입만 봐도 단풍이 너무 예뻐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우리 남편을 비롯한 일행들은 차에서 내리지고 않고
나 혼자 얼른 구경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뭐라고 했게요?)
식영정의 부속 건물인 부용정과 서하당
내가 전에 왔을 때 은행잎이 떨어지며 바람에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텅 빈 채로 고즈녁한 분위기도 좋으네요.
그러니까 여행지는 철마다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얕은 언덕배기 위에 있는 식영정입니다.
식영정(息影亭)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라는데 그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정자이름을 그렇게 지은 옛 어른들의 풍류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는 천정의 굽은 서까래에 더 정이 갑니다.
송강 정철선생께서 성산 일대의 수려한 경치를 읊으신 성산별곡 시비 랍니다.
식영정에서 내려다 본 부용당과 서하당 입니다.
아름드리 적송이 참으로 기품있고, 멋져 보였습니다.
식영정에서 바라 본 광주호엔 청둥오리들이 놀고 있었어요.
부용정
다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식영정에서 나왔는데 두 사람은 따라 올 줄 모르고 저러고 있습니다.
채안골 님은 얼핏 보면 쉬하러 가는 폼인데 사실은 어떤 풀이 돋아 나 있지 않을까, 살피러 가는 중입디다.
식영정에서 나와 송강정을 찾아 올라가는 길입니다.
얕으막한 산인데도 오래된 송림이 멋집니다.
죽록정과 송강정 두 개의 현판이 보입니다.
한쪽에 대나무가 심어져 있던데 대나무가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보나 했더니 죽록천도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부르고 싶어 고심하셨을 어른들이 생각나서 웃음지어집니다.
정면엔 송강정(松江亭) 측면엔 '죽록정(竹綠亭)'이란 현판을 가지고 있다.
죽록천 옆의 뜰이 죽록이었기 때문에 죽록정으로 불렀을 것이다.
당시에는 비단길 강물이 흐르고 노젓는 뱃사공과 능수버들 하늘하늘 바람 타고 춤추었으며 나룻배 연결되는
절벽에 선 정자의 풍광은 동양화 그림 그 자체였다고 전해진다.
송강정 앞에는 송강 정철 선생 시비가 있네요.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은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는 면앙정 입니다.
면앙정 송순(宋純)(1493-1583)은 시가와 학문의 대가입니다.
성종 24년(1493)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여 이조판서, 대사헌(大司憲),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의
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使)를 지냈습니다.
군자다운 인품과 고매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정계 생활을 하였습니다. 특히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일컬어집니다.
면앙정은 그가 41세 되던 해인 중종 28년(1533)에 송순선생이 관직을 떠나 선비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기위해 담양의 제월봉 아래에 세운 정자입니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면앙정은 풍월산천속에서
한 백년 살고자한다는 원대한곳입니다.
정자주변엔 참나무가 많았는데 나뭇가지들이 하나같이 예술이에요.
수령이 200년이 넘는다는 참나무 입니다.
나무 사이로 너른 들이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그날의 모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