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노인봉의 우리말 산책(14) - '진교'를 찾아서

뜰에봄 2007. 9. 12. 15:22

(요즘 이것저것 일에 몰려, 지난 여름에 '진교/진범'이 한 차례 논란이 된 후
몇 달 걸려  써 놓은 것 하나를 숙제 대용으로 제출합니다.
너무 긴 글이어서 그 전반부만 올리고 후반부는 언제 기회가 되면 마저 싣겠습니다.
외부용으로 준비한 것이어서 경어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1
평소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식물도감을 꽤 많이 모으는 편이었지만 들꽃을 찍으러 다니면서
식물도감이야말로 늘 곁에 있는, 그야말로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두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식물도감에서도 풀리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진교’와 ‘진범’이라는 이름.
‘진범’이라고만 나와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진교’라고만 나와 있는 책이 있고, ‘진범/진교’라고 두 이름을
병기(倂記)한 책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영노 선생의 ꡔ韓國植物圖鑑ꡕ(교학사, 1998)에서는
“진범은 잘못된 명칭이고 진교가 참된 명칭임”이라는 부기(附記)까지 있어 궁금증의 폭은 더욱 커졌다.

그러다 어느 기회에 현진오 박사로부터 ‘진범’은 ‘진교’의 ‘교’를, 그 한자(漢字)를 잘못 옮겨 적은 데서
비롯된, 말하자면 엉터리 명칭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ꡔ아름다운 우리꽃 150 가을ꡕ(교학사, 1999)에서
개략적이지만 이 이야기를 썼다고도 하였다. 슬그머니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야말로 진범(眞犯)을 찾는 추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연 ‘진교’의 한자가 ‘진범’으로 잘못 필사(筆寫)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먼저 이들의 한자부터 보자.
‘진교의 한자는 ‘秦艽’로 되어 있고, 진범의 한자는 ‘秦芃’으로 되어 있다. 결국 ‘艽’자를 ‘芃’자로 잘못 옮겨
적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특히 필사본(筆寫本)의 글씨는 약간만 흘려 써도
혼동을 일으키기 쉽고, 비록 또박또박 해서(楷書)로 인쇄된 것이라 할지라도 종이가 마모되었다든가
더럽혀지기라도 하였으면 이만한 실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편을 뒤지다 보니 놀랍게도 이 가능성을 좀더 확실하게 입증해 줄 이야기가 있었다. 옥편의
최고 권위서라 할 만한 일본의 ꡔ大漢和辭典ꡕ(수정판, 1984)의 ‘艽’자항에 보면 「參考」항을 따로 마련하여
‘艽’자가 ‘芃’자(및 ‘芄」자)와 별개의 글자(別字)라는 주의사항이 있다. 어떻게 보면 꽤 괴이쩍은 주의사항이다.
멀쩡히 다른 글자를 놓고 각각 다른 글자라고 하다니! 그런데 여기에 묘미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두 글자(내지 세 글자)를 혼동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參考」항은 사실은
ꡔ康熙字典ꡕ에서 세 글자가 비슷하나 음(音)과 뜻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풀이해 놓은 내용을 옮겨 놓은
것인데 두 글자의 혼동 사태는 일찍이 중국에서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秦艽’를 ‘秦芃’으로 오기(誤記)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국의
어떤 책에서 이미 그렇게 잘못된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설사
그 오기의 실수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특별한 실수가 아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느쪽으로 보아도 ‘芃’자가, 다시 말하면 ‘秦芃’이 잘못 태어날 만한
조건은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랄까 ‘秦芃’은 어처구니없는 오류(誤謬)를 하나 더 짊어지게 된다. 엉뚱한
글자를 잘못 가져다 쓴 그 일 자체로도 이미 크나큰 잘못을 안고 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하여
‘秦芃’을 ‘진범’으로 읽어 버린 것이 그것이다. 옥편에 가서 ‘범’으로 읽히는 글자를 다 뒤져도 ‘芃’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芃’자를 찾아가 보면 그 발음이 ‘봉’으로 나와 있다(앞의 ꡔ康熙字典ꡕ의
주의 사항에서도 이 글자의 발음을 ‘蓬’으로 보이고 있다). 누군가 ‘芃’자를 그 아래쪽의 ‘凡’자에 이끌려
어림짐작으로 ‘범’으로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생각도 비슷하여 ‘秦芃’은 어느새 ‘진봉’이 아닌
‘진범’으로 굳어져 갔던 것 같다. ‘진교’에서 ‘진봉’으로 헛디딘 발이 다시 ‘진범’으로 한걸음 더 큰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굳이 비유를 하자면, king을 옮겨 적으면서 k자를 h자로 잘못 보고 hing으로 적어 놓고는, 이번에는
h자의 발음을 ‘ㄴ’음으로 잘못 알고 hing을 ‘닝’으로 읽은 것과 같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킹’이라 해야 할 것을
‘닝’이라고 하면서 국어사전 등에 버젓이 '닝(king)'과 같은 괴이한 단어를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흥미진진하다고 해야 할지 허탈하다고 해야 할지 이것은 분명
한 사건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참으로 기묘한 사건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그런데 이 사건이 언제쯤 발생하였을까? 1824년에 간행된 유희(柳僖)의 ꡔ物名考ꡕ에는 ‘秦艽’만 나온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秦艽’가 분란을 겪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 1920년에 간행한 ꡔ朝鮮語辭典ꡕ에도 ‘蓁艽(진규)’가 ‘蓁瓜(진과)’ 및 ‘蓁糺(진규)’와 함께
올라 있다. ‘秦’자 대신 ‘蓁’자가 쓰이긴 하였으나 옥편에 보면 이 두 한자는 어느쪽으로도 쓸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艽’의 발음이 ‘교’가 아니라 ‘규’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艽’자의 발음이 ‘교’ 외에
‘구’와 ‘규’로도 읽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蓁瓜’ 및 ‘蓁糺’는
옥편에도 ‘蓁艽’의 이명(異名)으로 올라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1920년까지도 ‘秦艽’는 제 모습으로 살아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37년에 간행된 鄭台鉉(외 3인)의 ꡔ朝鮮植物鄕名集ꡕ에 오면 ‘진범/秦芃’으로 둔갑한다.
그런데 그 후 1950년에 간행된 文世榮의 ꡔ國語大辭典ꡕ에는 다시 ‘진규/秦艽’가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ꡔ큰사전ꡕ(1929-1957)에서는 표제어로는 ‘진범/秦芃’을 올려놓았는데 그 원말은 ‘진규/秦艽/‘秦糺’라고
밝혀 놓았다. 이렇게 보면 1930년대가 ‘秦艽’에서 ‘秦芃’의 세상으로 바뀌는 과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그 후 최근까지 각종 국어사전에 으레
‘진범’이 오르게 되었다. 또 이 방면의 최고 권위서라 할 만한 李昌福 박사의 ꡔ大韓植物圖鑑ꡕ(1993)에도
‘진범’만 올랐다. 어느새 ‘진범’이 세상을 평정하는 듯한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 특기(特記)해 두고 싶은 것은 최근에 간행된 이우철 박사의 ꡔ한국 식물명의 유래ꡕ(일조각, 2005)에서조차
사태를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 식물 이름들이 어디에 근거하여 오늘날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가를 종합적으로 추적한 말하자면 이 방면의 대표적 지침서라 할 만한 역저(力著)인데
‘진교’에서는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한자 이름에서 유래한 것은 그 한자를
밝혀 주는 형식을 취한 이 책에서 ‘진범’의 유래는 ‘진범(秦芃)’이라고 밝혀 주면서 ‘진교’의 유래는 미상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일부에서 ‘진교’라고도 하는데 무엇에 근거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굳이 다시 비유하자면 ‘닝’의 유래는 hing이라고 밝히면서 ‘킹’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어리석어지려면 이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도 있구나 싶다.


3  
결과적으로 우리는 꽤 오랫동안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해매고 있었던 셈이다. 반복하지만, ‘진범’은
어떤 명분으로도 그 존재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이 이 땅에 오래 활개를 치면 칠수록 그만큼 우리의
치부(恥部)가 커질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꽤나 오래, 꽤나 부끄러운 세상을 살아 온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끝내는 진리가 이긴다는 것일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계가 어떤 경위로인지
정신을 차리고 광명을 찾게 되었다. 국가가 낸 최초의 국어사전인 국립국어연구원의 ꡔ표준국어대사전ꡕ(1999)에서
‘진교’로 바로잡힌 것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앞의 이영노 박사의 도감과 현진오 박사의
일련의 저서 등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이 방면의 도록에서 ‘진교’로 바로잡아 준 것은 ‘진교’의 밝은 앞날에
더없이 든든한 초석이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 국어사전에서도 ‘진교’로 바로잡혀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 북한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분란을 겪었는지 1962년에 과학원출판사에서 간행한 ꡔ조선말사전ꡕ에는 ‘진범/秦芃’이 올라 있다.
그러다가 1981년에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에서 편찬한 ꡔ현대조선말사전ꡕ부터는 ‘진교’로 바로잡아 놓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그 풀이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한 가지. 깊은산
나무 그늘 밑에서 사는데 키는 60센치메터 안팎이고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5-7개 갈라졌다. 7-8월에
연보라비의 투구모양꽃이 핀다. 뿌리는 오래 되면 섬유소만 남아 서로 엉킨다. 마른 뿌리를 륵막염,
류마치스, 폐결핵 등 치료에 쓴다.” 그리고 (같은말)로 ‘망사초’, ‘망초’도 올려놓고 있다.

1992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간행한 ꡔ조선말대사전ꡕ과 2004년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간행한
ꡔ조선말사전ꡕ에서도 ‘진교’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다만 그 설명은 좀 바뀌는데 특히 진교가 바지구과에
속하는 것으로 풀이해 놓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동의어로 ‘진규/秦艽’를 올려놓은 것도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다.
남한과 북한에서 다같이 ‘진교’로 이 식물의 이름이 바로잡힌 것은 우연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행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