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노인봉의 우리말 산책(27) - '뒤안길'

뜰에봄 2007. 9. 17. 19:01

‘뒤안길’이라는 말 낯설지 않으시죠? ‘인생의 뒤안길’이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이니 하는 표현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작고하신 제 은사님의 산문집
<고전 탐구의 뒤안길에서>(신구문화사, 1982)에도 ‘뒤안길’이 쓰였을 뿐 아니라 지금은 국어사전에까지
올라 있는 걸 보면 이 단어는 이제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단어를 두고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뒤안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뒤안’과 ‘길’이 모여 이루어진 단어이겠지요.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뒤안’을 찾으면
‘뒤곁’의 사투리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뒤안길’도 자연히 사투리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이것을 표준어로 고치면 ‘뒤곁길’쯤이 되어야 할 터인데 ‘뒤곁길’이라는 표준어는 없거든요.
뭔가 좀 개운치 않은 데가 있지요?

사실은 사투리로도 ‘뒤안길’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일은 없는 듯합니다. ‘뒤안’은 고장에 따라
‘뒤란’이라고도 하고 우리 고향 같은 곳에서는 ‘�’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길’이나 ‘질’을 붙여
‘뒤안길/뒤안질’이나 ‘뒤란길/뒤란질’, 또는 ‘�길/�질’ 따위의 단어를 쓰는 지방은,
꽤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없는 듯합니다.

‘뒤안길’은 얼마 전까지도 국어사전들에 올라 있지 않았습니다. 한글학회의 <큰사전>에도 없었고,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의 초판이나 신기철 ․ 신영철의 <표준국어사전>에서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뒤안길이나 헤매던 이름 없는 존재였던 셈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 말이 오늘날과 같이 여러 사람에게 친숙한 단어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국어사전에도 오르면서 당당한 표준어의 일원이 되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 이 단어의 그러한
출세(?)의 과정을 늘 궁금히 생각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뒤안길! 그러면 뭐가 먼저 떠오릅니까? 혹시 미당(未堂)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아닌가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저는 이 시의 ‘뒤안길’이 바로 오늘날 국어사전에까지 오른 ‘뒤안길’의 원조(元祖)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오고 있습니다. <국화 옆에서>는 워낙 여러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시여서 ‘뒤안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잡아 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미당은 이 시 말고도 <화사(花蛇)>라는 시에서도 ‘뒤안길’이라는 단어를 쓰긴 하였지요. 그러나
그 시는 일반에게 널리 읽힌 시가 아니어서 ‘뒤안길’의 보급에는 별로 이바지한 것이 없을 듯합니다.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뒤안길’,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넓게 쓰는
‘뒤안길’의 발원지(發源地)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뒤안길’이라는 말을 <국화 옆에서>에서 처음 대했다면 생전 처음 보는
그 단어의 뜻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고 그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뒤안길’을 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의미의 말로 받아들였을지는 자못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처음 대하는 것이어도 마음에 잡히는 것은 있지 않았겠어요? ‘뒤안’이라는 말이야
사투리라 해도 아는 말이니 ‘뒤안길’이라면 ‘뒤안 언저리의 길’,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전면에 드러나 있기보다는 뒤쪽으로 쳐져 있는 외진 길 정도로 윤곽을 잡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이 비슷해서 다들 쉽게 이 말에 친숙해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런 의미의 단어가 하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없어서 아쉽던 참에 이 단어를 발견하고 반가웠을 수도
있었을 법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오르기도 전에 ‘인생의 뒤안길’이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니
또는 ‘고전 탐구의 뒤안길에서’와 같이 ‘뒤안길’을 쓰기 시작하였고 또 그것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숙제는 남습니다. 우리 머리 속에 있는 ‘뒤안길’은 ‘인생의 뒤안길’이나 ‘역사의 뒤안길’에서
보듯이 어떤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어느 마을에 갔더니 뒤안길도 잘 정돈되어 있더라든가, 어릴 때
뒤안길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놀았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뒤안길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궁금하여 미당에게 전화로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뒤안길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을  가리키냐고. 그
분의 대답은 그랬습니다. 뒤안에는 으레 장독대가 있는데 거기로 장이랑 푸러 다니다 보면 희미하게
길이 나는데 그게 뒤안길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제가 평소 머리에 그리던 뒤안길을 말해 보았습니다. 우리 고향에 이에 해당하는 이름은 없지만
평소 이런 곳이 뒤안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향은 집 뒤가 대개 산이어서
집 뒤쪽으로는 보통은 길이 없는데 이웃 친구네는 뒤안(�) 뒤로 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뒤로 희미한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간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지만 그 뒤쪽 밭과 울타리 사이에 나 있는 이 길로
다니며 우리 남매는 그 집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주어 오곤 하였지요. 이런 길이 혹시 뒤안길이 될 수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아, 그거도 뒤안길이겠네요 하더군요.

그러나 실제로 ‘뒤안길’이 이처럼 구체적인 의미로, 구체적으로 한 가옥의 어디 또는 한 마을의 어디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늘어선 집들의 뒤곁 쪽으로 나 있는 길”과 같이 구체적인
의미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더 조사를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박경리의 <토지>에는
“별채로 돌아가는 뒤안길”에와 같은 용례가 보이기도 하지만 저에게 이것은 아직 숙제입니다.

제 생각에는 ‘뒤안길’은 현재로서는 국어사전의 다른 풀이인 “다른 것에 가려서 관심을 끌지 못하는 쓸쓸한
생활이나 처지” 정도의 추상적인 의미로만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점에서 ‘뒤안길’은
꽤나 특수한 단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단어든 ‘손과 발’의 ‘손’이 ‘손이 모자란다’의 ‘손’으로 발전하듯이,
또는 ‘우리 집 앞과 뒤’라고 할 때의 ‘뒤’가 ‘뒤를 돌보아 준다’나 ‘뒤가 꿀리다’로 발전하듯이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다가 의미가 확대되어 추상적인 의미를 얻게 되는데 ‘뒤안길’은 그 점에서 예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뒤안길’은 문제아라면 문제아라 할 수 있습니다. ‘뒤안’은 사투리로 놓아둔 채 ‘뒤안길’만
표준어가 된 점에서도 그렇고, 구체적인 의미로는 안 쓰이면서 고상하게 폼 잡고 추상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이런 것은 어째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뒤안길’이 우리 모국어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워낙 대견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정겨운 단어 하나가 우리말에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이지요.

그 점에서 ‘뒤안길’을 낳아 준 작가에게 큰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한 마디가 없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은 그런 아름다운 모국어가 있지 않습니까?  ‘뒤안길’도 바로
그런 보배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