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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나이 먹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한 살 더 먹기를 손곱아 기다리지요. 그래서 “엄마, 나 언제 여섯 살 돼?” 그런 소리를 잘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설을 쇄야 여섯 살이 되지.” 그러지요. 요즘은 만으로 따지는 일도 많지만 우리는 대개 설을 쇠는 것으로 한 살 더 먹는다고 계산을 해 왔지요. “설을 쇠면 한 살 더 먹는다.” 이 말에서 혹시 ‘설’과 ‘살’이 무슨 관계가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없으신지요? 그 참 비슷하게도 생겼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인가 뭐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재미있는 짝들이 꽤 있습니다. 가령 ‘낡다/늙다’를 보세요. 뜻이 꽤 비슷하지요. 그러면서 말도 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겨우 ‘ㅏ’를 ‘ㅡ’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낡다’의 ‘ㅏ’가 ‘아래 ㅏ’이니 그 ‘아래 ㅏ’를 ‘ㅡ’로 바꾼 것인데 이렇게 모음 하나만 살짝 바꾸어 서로 연관이 있는 새 단어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말하자면 짝궁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가죽/거죽’도 그렇지요. ‘가죽’이 있는 곳이 ‘거죽’이니 서로 짝이 되는 말이 분명한데 겨우 ‘ㅏ’를 살짝 ‘ㅓ’로 바꾸어 새 단어를 만든 걸 볼 수 있습니다. ‘남다/넘다’도 그런 관계일 것입니다. 남으면 넘을 테니 서로 동떨어진 말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작다/적다’는 특히 대표적인 짝궁이지요. 이들을 서로 혼동해 잘못 쓰는 일이 많을 정도로 둘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면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맛/멋’이야말로 정말 ‘맛’나게 그리고 ‘멋’지게 만들어진 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할다/헐다’라는 짝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헐뜯는 것은 ‘할다’라 하고 집 같은 것을 허무는 것은 ‘헐다’라고 하여 구별해 썼지요. ‘삭다/썩다’도 고어에서는 ‘썩다’가 ‘석다’였으므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짝이었지요. 현재 의미로 보아도 삭는 것은 일종의 부식일 것이므로 ‘삭다’와 ‘썩다’가 한 통속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짝은 색깔을 나타내는 말에는 풍부하게 많지요. ‘빨갛다/뻘겋다’ ‘파랗다/퍼렇다’ ‘노랗다/누렇다’ ‘하얗다/허옇다’ ‘까맣다/꺼멓다’ 등. 그리고 ‘밝다/붉다’ ‘맑다/묽다’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짝일 것입니다. 특히 의성어(擬聲語)나 의태어(擬態語)에 가 보면 이런 종류의 짝이 얼마나 많은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지요. 반짝반짝/번쩍번쩍, 아장아장/어정어정, 방글방글/벙글벙글, 한들한들/흔들흔들, 퐁당퐁당/풍덩풍덩, 종알종알/중얼중얼, 소곤소곤/수군수군, 콜록콜록/쿨룩쿨룩, 폭신폭신/푹신푹신, 쪼글쪼글/쭈글쭈글, 살래살래/설레설레, 대굴대굴/데굴데굴, 바스락바스락/버스럭버스럭, 꼼지락꼼지락/꿈지럭꿈지럭 이렇게 보면 ‘설을 쇤다’의 ‘설’과 ‘한 살 더 먹는다’의 ‘살’도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짝이 분명해 보입니다. 한 ‘살’ 더 먹으려면 ‘설’을 쇠야 하고, ‘설’을 쇠면 어쩔 수 없이 한 ‘살’ 더 먹게 되고 그렇게 ‘살’과 ‘설’은 맞물려 돌아가는 짝궁인 것입니다. 저는 양력설을 쇠었으니 분명히 한 살을 더 먹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여러분도 한 살 더 먹어 저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꽃과 함께 나누는 기쁨이 더욱 크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나/너’도 짝꿍으로 만들어 놓은 정신을 살려 ‘나’와 ‘너’가 다들 사이좋게 지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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