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 선생을 뵙는 자리에서 당신의 수필집 <초대>(샘터사, 2000)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신
여러 권의 수필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가려뽑은 말하자면 수필 선집이었습니다.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그때 선생은 당신 수필의 문체에 대한 어느 인사의 지적을 말씀하시며 이 새 수필집의 글에는 개고(改稿)를
한 것도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선생의 옛 수필집을 대부분 가지고 있던 터라 집에 돌아와 제목이 같은 것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것 중의 하나가 다음에 소개하는 <고목>입니다. (가)가 1882년에 발표하였던 원본이고, (나)가
2000년에 새 수필집을 내면서 고쳐 쓴 글입니다.
같은 번호, 또는 같은 기호를 따라가며 비교해 보면 무엇을 무엇으로 고쳤는지를 쉽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네모 상자를 친 부분은 아예 자리를 옮긴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는 네모 상자가 안 뜨네요. 1,2 대신 ㄱ, ㄴ으로 기호를 부친 부분이 그곳입니다.)
이 글을 발견하고 제게 떠오른 구절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였습니다. 그만큼 경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에 대해 좀 엄격한 편이어서 대가들의 글에 대한 비판도 꽤 하곤 합니다만 원본인 (가)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나)에서 고쳐진 부분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더 좋아지는구나라고
얼마나 감격스럽던지요? 글이란 이렇게 끝도 없이 다듬어야 할 대상이라는 걸 이 작업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같은 걸 들먹이면 싫어합니다. 가자는 교회는 안 가면서, 그리고
뭐 아는 것도 없으면서 냄새만 피운다고 못마땅해 하는 거지요.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읽고 저도 모르게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떠올린 것을 스스로 아주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정말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번의 이 조그만 글은 문득님에게 바칩니다.
(가) 옛날에는 거목과 같이 큰 인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어서 이미 위대함을 보여준 ①사람도 있었고
늙어서 연륜이 더욱 빛난 ②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30년 전만 해도 크고 고매한 ③인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더러 살고 있었다.
그러나 ④요즈음은 고목에 비유할 만한 ⑤멋있는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⑥왜소하게
된 것인지 또는 사람을 평가하는 ⑦안목이 박절해진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42년 만에 고향 마을 파소를 다시 찾았다. ㉠특별한 볼 일은 없었다. 그저 옛 산천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하여
삼복 ㉢폭양에 20리 길을 걸었다. ∨
마을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살던 집도
옛 모습이 아니었고 아주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구 밖의 느티나무는 옛날 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 두터운 그늘을 ㉦지우고 말 없이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농부 한 사람이 꼴 짐을 받쳐 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가운데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독하다는 뜻일 것이며 겸하여 인간의 고독도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일 것이다.
나무들 가운데도 큰 고목이 겪는 고독은 더욱 심각할 ⑧것으로 짐작된다. 고목은 ⑨너무나 크고 높으며
아는 것이 많다. 옛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 남아서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지난날을 ⑩기억해야
한다. 고목에게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⑪친구도 없고 기쁨과 슬픔을 ⑫나눌 상대도 없다. 고목은 혼자 거기
서 있다.
자질구레한 나무들에게도 고독은 있다. ⑬그들의 고독은 ⑭헤르만 헷세가 노래한 ⑮‘안개’ 속의 고독이다.
안개에 묻힌 숲속의 나무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고독이다. 그러나 안개는 걷힐 수
있는 것이며 안개만 걷히면 작은 나무들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⑯있을 것이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다. 고목은 작은 나무들의 세계를 ⑰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들은 고목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없어도 고목을 ⑱보지 못한다. 고목의 고독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⑲관계에서 오는 고독이다. ⑳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날이 없다. ∨그러나 고목은 그의 고독을 참고 견딘다.
웃음으로 참고 견딘다.
― 김태길, 고목(1982)
(나) 옛날에는 거목과 같은 큰 인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어서 이미 위대함을 보여 준 ①인물도 있었고,
늙어서 연륜이 더욱 빛난 ②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 30년 전만 해도 크고 고매한 ③인물로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더러 살고 있었다.
그러나 ④근래는 고목에 비유할 만한 ⑤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⑥왜소해진 것인지
또는 사람을 평가하는 ⑦인심이 박절해진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가운데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독하다는 뜻일 것이며, 겸하여 인간의 고독도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일 것이다.
나무들 가운데도 큰 고목이 겪는 고독은 더욱 심각할 ⑧것이다. 고목은 ⑨너무 크고 높아서 아는 것도 많다. 옛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 남아서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지난날을 ⑩기억한다. 고목에게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⑪옛 친구도 없고 기쁨과 슬픔을 ⑫나눌 만한 지기도 없다. 고목은 혼자 거기에 서 있다.
자질구레한 나무들에게도 고독은 있다. ⑬그 고독은 ⑭이양하가 말한 ‘나무’의 고독이요, 헤르만 헤세가 노래한
⑮‘안개 속의’ 고독이다. 안개에 묻힌 숲속의 나무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고독이다. 그러나
안개는 걷힐 수 있는 것이며, 안개만 걷히면 작은 나무들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⑯있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다. 고목은 작은 나무들의 세계를 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들은
고목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없어도 고목을 ⑱모른다. 고목의 고독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⑲차이에서 오는
고독이다. ⑳ ∨ 그러나 고목은 그의 고독을 참고 견딘다. 웃음으로 참고 견딘다.
42년 만에 고향 마을 파소를 다시 찾았다. ㉠이렇다 할 볼일은 없었다. 그저 옛 산천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해서
삼복 ㉢폭염에 20리 길을 걸었다. ∨ 마을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살던 집도 옛 모습이 아니었고 아주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동구 밖의 느티나무만이 옛날 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느티나무는 두터운 그늘을 ㉦드리우고 말없이
나그네를 ㉧내려다보았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농부 한 사람이 꼴짐을 받쳐 놓고 ㉨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 김태길, 고목(2000)
여러 권의 수필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가려뽑은 말하자면 수필 선집이었습니다.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그때 선생은 당신 수필의 문체에 대한 어느 인사의 지적을 말씀하시며 이 새 수필집의 글에는 개고(改稿)를
한 것도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선생의 옛 수필집을 대부분 가지고 있던 터라 집에 돌아와 제목이 같은 것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것 중의 하나가 다음에 소개하는 <고목>입니다. (가)가 1882년에 발표하였던 원본이고, (나)가
2000년에 새 수필집을 내면서 고쳐 쓴 글입니다.
같은 번호, 또는 같은 기호를 따라가며 비교해 보면 무엇을 무엇으로 고쳤는지를 쉽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네모 상자를 친 부분은 아예 자리를 옮긴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는 네모 상자가 안 뜨네요. 1,2 대신 ㄱ, ㄴ으로 기호를 부친 부분이 그곳입니다.)
이 글을 발견하고 제게 떠오른 구절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였습니다. 그만큼 경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에 대해 좀 엄격한 편이어서 대가들의 글에 대한 비판도 꽤 하곤 합니다만 원본인 (가)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나)에서 고쳐진 부분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더 좋아지는구나라고
얼마나 감격스럽던지요? 글이란 이렇게 끝도 없이 다듬어야 할 대상이라는 걸 이 작업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같은 걸 들먹이면 싫어합니다. 가자는 교회는 안 가면서, 그리고
뭐 아는 것도 없으면서 냄새만 피운다고 못마땅해 하는 거지요.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읽고 저도 모르게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떠올린 것을 스스로 아주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정말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번의 이 조그만 글은 문득님에게 바칩니다.
(가) 옛날에는 거목과 같이 큰 인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어서 이미 위대함을 보여준 ①사람도 있었고
늙어서 연륜이 더욱 빛난 ②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30년 전만 해도 크고 고매한 ③인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더러 살고 있었다.
그러나 ④요즈음은 고목에 비유할 만한 ⑤멋있는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⑥왜소하게
된 것인지 또는 사람을 평가하는 ⑦안목이 박절해진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42년 만에 고향 마을 파소를 다시 찾았다. ㉠특별한 볼 일은 없었다. 그저 옛 산천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하여
삼복 ㉢폭양에 20리 길을 걸었다. ∨
마을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살던 집도
옛 모습이 아니었고 아주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구 밖의 느티나무는 옛날 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 두터운 그늘을 ㉦지우고 말 없이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농부 한 사람이 꼴 짐을 받쳐 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가운데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독하다는 뜻일 것이며 겸하여 인간의 고독도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일 것이다.
나무들 가운데도 큰 고목이 겪는 고독은 더욱 심각할 ⑧것으로 짐작된다. 고목은 ⑨너무나 크고 높으며
아는 것이 많다. 옛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 남아서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지난날을 ⑩기억해야
한다. 고목에게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⑪친구도 없고 기쁨과 슬픔을 ⑫나눌 상대도 없다. 고목은 혼자 거기
서 있다.
자질구레한 나무들에게도 고독은 있다. ⑬그들의 고독은 ⑭헤르만 헷세가 노래한 ⑮‘안개’ 속의 고독이다.
안개에 묻힌 숲속의 나무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고독이다. 그러나 안개는 걷힐 수
있는 것이며 안개만 걷히면 작은 나무들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⑯있을 것이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다. 고목은 작은 나무들의 세계를 ⑰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들은 고목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없어도 고목을 ⑱보지 못한다. 고목의 고독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⑲관계에서 오는 고독이다. ⑳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날이 없다. ∨그러나 고목은 그의 고독을 참고 견딘다.
웃음으로 참고 견딘다.
― 김태길, 고목(1982)
(나) 옛날에는 거목과 같은 큰 인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어서 이미 위대함을 보여 준 ①인물도 있었고,
늙어서 연륜이 더욱 빛난 ②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 30년 전만 해도 크고 고매한 ③인물로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더러 살고 있었다.
그러나 ④근래는 고목에 비유할 만한 ⑤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⑥왜소해진 것인지
또는 사람을 평가하는 ⑦인심이 박절해진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가운데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독하다는 뜻일 것이며, 겸하여 인간의 고독도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일 것이다.
나무들 가운데도 큰 고목이 겪는 고독은 더욱 심각할 ⑧것이다. 고목은 ⑨너무 크고 높아서 아는 것도 많다. 옛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 남아서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지난날을 ⑩기억한다. 고목에게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⑪옛 친구도 없고 기쁨과 슬픔을 ⑫나눌 만한 지기도 없다. 고목은 혼자 거기에 서 있다.
자질구레한 나무들에게도 고독은 있다. ⑬그 고독은 ⑭이양하가 말한 ‘나무’의 고독이요, 헤르만 헤세가 노래한
⑮‘안개 속의’ 고독이다. 안개에 묻힌 숲속의 나무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고독이다. 그러나
안개는 걷힐 수 있는 것이며, 안개만 걷히면 작은 나무들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⑯있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다. 고목은 작은 나무들의 세계를 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들은
고목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없어도 고목을 ⑱모른다. 고목의 고독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⑲차이에서 오는
고독이다. ⑳ ∨ 그러나 고목은 그의 고독을 참고 견딘다. 웃음으로 참고 견딘다.
42년 만에 고향 마을 파소를 다시 찾았다. ㉠이렇다 할 볼일은 없었다. 그저 옛 산천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해서
삼복 ㉢폭염에 20리 길을 걸었다. ∨ 마을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살던 집도 옛 모습이 아니었고 아주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동구 밖의 느티나무만이 옛날 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느티나무는 두터운 그늘을 ㉦드리우고 말없이
나그네를 ㉧내려다보았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농부 한 사람이 꼴짐을 받쳐 놓고 ㉨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 김태길, 고목(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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