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우리말 산책 (51) -- '먹거리'와 '찍거리'

뜰에봄 2007. 9. 17. 19:33
먹거리’라는 말 그리 낯설지 않으시죠? 직접 쓰시기도 하는지요? 며칠 전 꼬꼬마님이
“맛있는 먹거리가 있어서”라고 하신 걸 보면 꽤 익숙하게들 쓰는 것도 같네요. 저도 가령
어떤 골목이 음식점으로 꽉 차 있으면 먹거리 골목이네 그런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는 아직 이 단어는 어딘가 좀 낯설고 편안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단어는 그 탄생 과정을 잘 모르지요. 옛날부터 써 오던 ‘땅’이나 ‘맨드라미’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에 유행하기 시작한 ‘왕따’나 ‘치맛바람’ 같은 것도 누가 쓰기 시작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먹거리’는 다릅니다. ‘먹거리’는 그 탄생 과정이 좀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역사는 1957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사무국장이던
김민환(1910년생) 씨가 영어 ‘food’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마땅한 것이 없다고 해서 새로 만들어 쓰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먹거리’입니다. 이분은 27년간이나 이 일에 온 열정을 받쳐 정부, 학계에 끈질기게
진정서를 내는가 하면 ‘먹거리 연구회’까지 만들어 끝내는 1984년 국어사전에 이 단어를 올리는 데까지
성공을 합니다. (1986년에는 <먹거리>라는 저술도 냈는데 여기에 그 상세한 경위가 있습니다.)

이분이 ‘먹거리’라는 신조어(新造語)를 제안한 정신은 이렇습니다. ‘식량’이라고 하면 양곡만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면이 있어 우리나라 식량 정책이 쌀 위주의 정책으로 흐르는 폐단이 있다, 이 폐단을 없애려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식량’이라는 단어로는 포괄되지 않는, 우유나
육류, 과일 등 사람이 먹는 것 전반을 가리키는 새말이 필요하다. ‘먹거리’로써 우리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자!

여기까지 읽고 나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뭐, ‘먹거리’가 그런 어마어마한 말이라고? 그런데
내 머릿속에 있는 ‘먹거리’는 그게 아니잖아.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요?

오늘날 쓰이고 있는 ‘먹거리’는 분명히 애초 제안자가 꿈꾸었던 ‘먹거리’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당장 저 앞의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food)’ 자리에 ‘먹거리’를 넣어 ‘세계먹거리농업기구’라고 고쳐
부르기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1년 먹거리 생산량은 20년 전에 비해 얼마나 늘었을까?”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의 내년도 먹거리 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나 “이번에 북한에 먹거리 20만톤을
보낸답니다”와 같은 말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저는 ‘먹거리’라고 하면 좀 왁자지껄한, 좀 들뜬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앞에서 먹거리 골목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런 곳의 음식이거나 아니면 지방 축제 같은 데서 벌려 놓은 음식 같은 데 가장 어울리는 게 바로 먹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애초 의도했던 것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식량’에 대체되어,
그 식량보다도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는 데는 근접도 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유흥적이라고나 할까
점잖지 못한 쪽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먹거리’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왜 이런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는지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겠지요. 말이란
한 개인이 어쩌자고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그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왜 이쪽으로 흘러왔는지 그 누구도 풀기 어려울 테니까요. 알 수 없는 것은 사람 팔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먹거리' 제안자가 오늘날의 현실을 보고 그래도 반타작은 되었다고 자위할지 아니면 너무도 냉혹한 세상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먹거리’는 사실 그 출발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제안자는 앞에서 밝혔듯이 쌀 위주의 정책으로 흐르는
폐단 고치려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먹거리’라는 새말을 제안하였습니다. 또 <먹거리>라는
저서에서 ‘식량’이란 말 대신 ‘먹거리’를 쓰게 되면 의식개혁이 일어나 “곡물을 비싸게 사들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나는
먹을거리만으로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므로 나라 살림이 넉넉해질 뿐더러 영양을 고루 취할 수 있어서”(p.188)라고도
했습니다. ‘허황하다’고 하면 결례가 되겠지만 그래도  ‘허황한 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먹거리’는 또 우리말 조어법(造語法)에도 어긋납니다.. ‘읽을거리’나 ‘볼거리’에서 보듯이 이왕 이런 말을 만들겠으면
‘먹을거리’라고 해야 옳았겠지요. 제안자는 “‘먹을거리’의 준말인 ‘먹거리’란 말은 조어법상 모순이 없으므로 이 말이
표준말로 쓰일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격려에 큰 힘을 얻어”(앞책 p.286)라고 하였습니다. 한글학회로부터 받은 편지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글학회측이 보낸 답변은 “‘먹+거리’를 ‘먹을+거리’의 준말로 다룰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앞책 p.285). ‘읽을거리’나 ‘볼거리’가 ‘읽거리’, ‘보거리’로 될 수 없듯이 ‘먹거리’가
우리말 조어법에 어긋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역사란 늘 이상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지 ‘먹거리’는 끝내 몇몇 국어사전에 올랐습니다. 한 예로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에 보면 “먹거리=먹을거리(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온갖 것)”이라고 하여 제안자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이 전혀 그런 뜻으로 쓰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국어사전이 앞질러 이런 풀이를 할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 다행이라면 지금 아래 아 한글로 자판을 두드리는데 ‘먹거리’는 계속 빨간 줄이 쳐지네요. 그래서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먹거리’를 찾으니 “먹을거리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군요.

글쎄 ‘잘못’이라고까지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먹거리’는 아직 국어사전에 올릴 말은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국어사전에 올리려면 뜻풀이를 해야 하는데 ‘먹거리’는 아직 정확히 어떤 의미의 단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유동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먹거리’는 어떻든 생명력은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실험관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생명력을 유지하는지, 그러면서 어떤 의미를 얻어 가지게 되는지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못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목의 ‘찍거리’는 뭘까요? <무엇일까요>에 한 번 물어 볼까요? 제가 장난기가 동해서 한 번 만들어 본 겁니다.
“요즈음은 찍거리가 별로 없지요?” “왜요? 높은 산에 가면 요즈음이 오히려 좋은 찍거리가 많지요.
” 좋은 찍거리 보시거든 저에게도 좀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