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고향

뜰에봄 2007. 12. 2. 22:23



대구 근교에 자리한 산골마을 내 고향, 한 때는 우리 고향만큼 아름다운 동네가 또 있을까? 하는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더랬지요.
  문디 가시나, 머시마들 끼리 모여서 서리도 해가며 놀던 추억이 잔뜩 서린 곳,
제 고향은 홍가들이 문중을 이루고 사는 집성촌인지라 전부 일가들이니 처녀 총각이 암만 어울려도 허물이 없었지요.
더구나 전 결혼전에 직장생활도 시골에서 하였기에 남들보다 고향에서 지낸 세월이 많아 더욱 눈에 밟히는 곳이어요.

고향의 우리집 뒤엔 동네 끝에 이르도록 돌로 된 기인 방천둑이 있었고 그 둑에서 백여미터 떨어져선 팔공산에서

 흐르는 맑은 내가 있지요.
 그 옛날 여름이면 그 냇물은 그야말로 노천탕이 되었답니다.
암암리에 남자들이 목욕하러 잘 가는 장소,여자들이 잘가는 장소가 정해져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게

꼭 일정치만은 않아서 물 첨벙이는 소리가 나면 냇가 멀찍이서 '남잔교? 여잔기요?'묻노라치면 만약 남자일 경우엔

 '어흠'기침소리가 남자임을 일러주고 여자들이면 까르르 웃음소리로 답을 던져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그 긴 냇가 어디든 성별로 찾아들어 목욕을 하면 되었구요.
다 벗은 상태였지만 꿈에도 남자들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던, 참으로 순정한 시절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타락한 시대엔 감히 꿈도 못 꿀 얘기지요.
목욕을 하고 나서 방천둑 아래 큼직큼직한 바윗돌 무더기를 찾아 아무바위나 등붙이기 좋은 곳에 누우면

낮동안 달아 올랐던 돌이 적당히 식어 따스무리하여서 찬물에 목욕하고 서늘해진 몸을 딱 기분좋게 해 주었답니다.
하나 둘 동네 머슴아 가시나들이 다 모여들고... 바위마다 또래들끼리 차지하고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곧 쏟아질 듯 흐르는 은하수며 초롱 초롱한 별, 별들.... 온갖 얘기꽃을 피우다가 밤깊어 입이라도 궁금해지면

 서리 작전에 들어가기도 했더랬습니다.
들로 나가 남의 밭둑에 옥수수를 꺾어다가 삶아먹기도 했고 심지어는 호박을 따서 부침개를 구워 먹기도 했어요.
물론 들판에 솥을 걸고는 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료는 훔치는 게 기본이었죠.
남녀가 유별하다고 해도 처녀 총각들이 밤새도록 어울려 놀아도 일가끼리라는 사실로 하여 어른들이 탓하지 않았고

 서리같은 걸 하다가 들켜도 거의 일가들 것이니 묵인이 되었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시절이 마치 꿈이었던 듯 여겨집니다.
제 성격이 별로 모난 편이 아니고, 인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순전히 내 고향 한밤에서 자란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반동네로도 알려졌고, 참으로 고즈녁하고 아름다왔던 제 고향이 노태우 대통령시절, 노대통령의 고향인

 파계사쪽에서 부터 산을 헐고 포장도로가 나는 바람에 이젠 희안하게 변해져 버렸더군요.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산위에는  지금 비행기, 기차, 배모양의 카페까지 생겨나 있고, 온갖 

음식점들, 모텔까지 들어선 걸 보니 현깃증이 다 날 정도였답니다.
그러니 전 고향에 갈 때마다 마치 고향을 누구에게 도둑맞은 기분까지 들어요
고향은 이제 마음속의 고향이지 이 나이에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를 바란다는 건
어찌 생각하면 제 나름으로  정신적 사치를 누리고 싶은 욕심이겠지요.
그래도 너무 변해진 고향을 보면 자꾸 속상해지더라구요.
어쨌거나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고, 생각만으로도 한없는  편안함에 젖어 들 수 있는 곳,
아직은 우리 엄마가  사시는 곳, 언제라도 가서 머무를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 전에도 한번 주절거렸던 고향이야기 다시 풀어 놓아 봅니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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