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어머니의 마당/ 김미옥

뜰에봄 2007. 12. 2. 22:25

 

 

어머니의 마당/ 김미옥



"꽃 좋아하면 눈물이 많다더라"
그러면서도
봉숭아 함박꽃 난초 접시꽃
흐드러지게 심으셨던
어머니

볕 좋은 날이면
콩대 꺾어 말리시고
붉은 고추 따다 널어두고
풀기 빳빳한 햇살 아래
가을 대추도 가득 널어 말리시며
잡풀 하나 없이 다듬느라
저문 날을 보내시던
고향집 마당

이제는 와스락 와스락
마른 대잎만 몰려다니며
잊혀진 발자국 더듬어가고
"내 죽으면 이 지섬 다 어쩔꼬"
어머니의 근심이
마당 곳곳에서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김미옥 詩 '어머니의 마당'은 울엄마 마당과 너무나 흡사해서 평소에도 내 수첩에 적어 놓고

 '어머니의 마당' 이 그리울 적 마다 읽게 되는 詩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마당'으로 인하여  머얼리 내 고향집 '어머니의 마당' 에 머물러 본다.

우리 어머니 올해 여든 넷, 혼자서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다.
육남매나 되는 자식들이 모두 (나 빼놓고) 동네에서 '화계댁 자녀들은 ...' 하고 입에 오르내릴만큼  

효성스러워서 다들 어머니를 모시기를 원하는데도 어머니는 고향집을 떠나려들지 않으신다.
  꽃사랑이 유별나신 우리 어머니 탓에 우리집 마당엔 온갖 꽃들이 있다.
아무리 흔하게 돋아나는 꽃모종이라도 뽑아 내버리지 못해 여기 저기 구석 구석 심으시고, 서리가 올제면

국화꽃에 비닐을 쳐 주시기도 한다.
이십수년 전  내가 결혼전에 분재에 미쳐서 분재를  200개 분으로 늘려놓고 마당에 벌여 놓은 적이 있을 때

멀리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우리집을 두고  '이동네 꽃많은 집' 하고 찾으면 되었다.
고향집이 지금은 서향집을 남향집으로 다시 짓는다고 마당 한켠의 살구나무, 자두나무는 베여져 버렸지만

 유실수만 해도 감나무, 호두나무 , 밤나무,  앵두나무, 산수유, 보리수 나무까지 있다.
울안엔 텃밭도 있어 상추, 쑥갓, 고추 등 갖은 채소를 심기도 한다.도회지 자식들 집에 좀 기거하라고

 말씀드리면 도회지 공기가 몸에 맞지않아 기침도 나오고 속이 답답하다는 핑계를 대시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마당때문에 고향집을 못 떠나시는 것 같다.
겨울 철을 제외하고는 어머니와 전화를 하면 온통 마당에 있는 식구들 이야기이다.
'야야. 지금은 무슨 꽃이 피었다, 라일락 나무 가지는 쳐 내야 겠다. 앵두가 바알갛게 익었는데

 아까워서 못 딸 지경이다.  고추에는 물을 하루만 안 줘도 다 시들라칸다.....' 등등으로 읊으신 연후에는

 언제나 저것들 놔두고는 아무데도 못 가겠다는 결론을 지으신다.
우리 어머니께서 마당 이야기를 하실때면 얼마나 좋으신지, 목소리마저 들떠 계신다.

돌이켜보면 어릴적에 우리집은 참 가난하게 살았는데도 궁색했던 기억은 없고 너무나도 따스하고

행복한 기억 뿐이다.
그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인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음식솜씨,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시고 정말 지혜로운 분이시다.
없는 가운데서도 시골에서 나는 걸로 깻잎 ,콩잎, 고들빼기는 물론 더덕, 가지, 등 산초잎에

이르기까지  갖은 장아찌를 담그셨으며 그 옛날에도 산에서 취나물 씨를 받아서 텃밭에 뿌려서 키우실 줄도 아셨다.

양장점 하는 고모집에서 가져온 천으로 신식옷도 만들어 주시고, 겨울에는 고운 양단 한복천으로

 주머니며 골무, 베갯모, 조각보같은 걸  만드시길 즐겼다.
교장딸이 입은 세라복을 빌려와서 그와 같은 천을 구해서 내가 입을 세라복을 만들어 주셨는데

 세라복 흰 줄은 옥양목으로 접어 박음질 한 것이 어찌나 새뜻하고 똑 발랐는지 참으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인정도 많으셔서 좁은 집이었지만 동네에 들어 온 방물장수며 명주장수, 소쿠리장수를 다 불러들여

 재워주고 먹여 주셨다.
소쿠리 장수가 와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소쿠리를 팔러 나가야 된다며 아침을 안 먹고 가겠다고

 했을 적엔 내가 소쿠리 팔아주면 될게 아니냐고 하시며 붙잡아 앉히기도 하셨다.
우리 어머니 지론은 사람이 먹는 것을 두고 인색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무슨 별식을 하더라도

 우리집엔 두번 다시 먹을 게 남아 나는 법이  없었다.
어릴적에 우리가 살던 집은 기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였는데 오가는 사람들은

 으례히  우리집을 반드시 거치고야 지나갔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입을 거들었던지라 감자를 삶아도 한 바케스를 삶았고, 국수같은 것도

우리 식구가 먹을 양보다 항상 배는 밀었다.
제사를 지냈어도 학교에 갔다 오면 전 쪼가리하나도 남아 있지않아 몹씨 야속하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이 엄마드시라고 반찬거리들을 해 보내도 이웃에 갈라주시기 바쁜 것 같다,
우리 언니는 우리가 더 잘 살지 못했던 건 순전히 엄마가 헤프신 탓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하신 내 어머니가 키워주셧으니  어찌 찌들고 궁핍한 기억 있으리..
내 성격이 비교적 밝고 구김이 없는편인 건 순전히 내 어머니 영향일게다.

엄마, 우리 엄마, 엄마는 평생 엄마인채로 안 늙으실 줄 알았건만 우리 엄마 연세 어느덧 여든 넷,  

허리까지 굽으신  할머니가 되어 계신다, 쩌업~
이젠 귀도 좀 어두우시고 그 초롱초롱 밝으시던 정신도 없어지시는 것 같다.

지난해 우리 어머니 교회 명예 권사 직분 받으신다고 우리가 가서 뵐 적만 해도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50년이나 되게 고향 교회에 다니시는데 교회에서 명예 권사 직분을 받게 됐다고  하길래

우리 육남매가 축하해드리러 다같이 고향에  갔을 때다.
엄마께선 앞집 할매까지 불러서 오전서부터 준비하셨다며 산나물도 삶아 무쳐놓고, 떡과 감주도 해 놓고, 

 국도 한 들통 끓여 놓으셨다.
연로하신 엄마가 들기도 벅찰 만큼 들통 그득히 끓인 국은 육개장으로 보기에 꽤나 먹음직 스러웠다.
그런데 그릇에 푼 국을 보니 돼지고기 비곗살이 눈에 띄였다.
오는 길에 전화드렸을 땐 분명히 소고기 국 한 들통 끓여놨다고 하셨는데...
엥 ? ~ 무신 돼지고기 국이래?  ...은연중에 모두들 한마디씩 내뱉았다.
엄마께선 '그렇재?  돼지고기 맞쟤?  안그래도 덖을 때 색깔이 안 발갛다 싶더라.

연출이(우리동네 정유점 주인) 고놈이 날 속인기라, 내 분명히 쇠고기 2만원어치 달라고 했는데...맛있는 목살을 달라고 했다니깐 ~ 어째 많이 준다 싶긴 하드만....' 그러신다.
그러면서 연출이놈 한테 속았다고 분함까지 내비치시는 거였다.
~'  아, 첨엔 엄마가 소고기 달라고 하셨어도 맛있는 목살을 달라고 했으니 돼지고기로 알아 먹고

 돼지고기를 준 거지요?  쇠고기에 무신 목살 달라는 말이 당하나요? '....설명을 드렸어도 '그래도

지가 소고기를  달라고 했으면 소고기를 줘야 할거 아녀' ~ 우기신다.
~ '근데 돼지고기로 국을  끓였는데도 소고기 못잖게 맛있네요 뭐' 우리 형제들은 서로 찡긋거리는

눈짓을 주고 받으며 국 한 그릇씩을 다 비웠다.

우리 엄마가 왜 저리 되셨누?
시골에 살아도 음식장만엔 일가견이 있으시고, 쇠고기도 육개장엔 사태살, 미역국엔 양지,

나이 든 사람 먹을 연한 고긴 안심살...그 정도는 예전에 꽤고 계셨건마는...내 결혼 할 때도 소고기는

그렇게 사야 한다 일러 주셨건마는...
벌써 저렇게 정신이 없어지셨나?

나보고 걸핏하면 '느그들은 동창회하러 안 오냐' 고 하신다.
동창회만 하면 고향에 갈 줄 알고, 행여 이 딸내미가 내려오기라도 할 줄 알고 그러시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 뭔 동창회를 시도 때도 없이 한데요?'  불쑥 대꾸하노라면 ' 아, 그러냐....난 또...'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우리 엄마 너무 많이 늙으셧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메인다.
고향이라고 해도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은 뭐가 고향 다우리.

아, 고향집 어머니의 마당.
'잡풀 하나 없이 다듬느라
저문 날을 보내시던
고향집 마당 '

이제 곧 봄이 되고 풀들이 총총 돋아날 제면 우리 엄니, 마당에 엎드려 풀을 뽑아 내시며

 '내 죽으면 이 지섬 다 어쩔꼬'  혼잣말을  읊조리실 것이다.
갖가지 이쁜 꽃들이 피어나는 고향집 내 어머니의  마당은 언제까지 있어 줄런지?....

20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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