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스크랩] 외딴섬 거닐기

뜰에봄 2008. 3. 24. 10:02
 





외딴섬 거닐기   /글과사진: 김필연




참 예쁜 섬마을입니다
색이 살아 있는...,
색은 곧 그들의 마음이고 삶이라
여겨집니다




한가롭고 근심 없는 오후
경운기 한 대가 그늘에 졸고 있습니다
달콤한 오수를 방해할까
갈매기들도 조용조용 날고




불과 몇 걸음이면 오를
뒷산에는 들꽃이 지천에 피어
온몸으로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었지요




약간은 빛바랜 등대 앞에
갈매기 날갯짓이 마치
대지의 기운처럼 하늘로 차오르고




종탑에 매달린 종도
봄 햇살에 꼬박꼬박 졸고 있습니다
생물과 무생물이
휴식으로 교감하는 시간




오후의 정적을 놓칠세라
야산 둔턱에서
들꽃 둘이서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해... 사랑해...




자연이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섬을 떠나야 할
일도 생기지요




우체통의 기다림은
기약도 없습니다
왜 매달려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를 때도 있지요




그래도 을수네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증조할머니께서 쓰시던 저 커다란
독에 담가놓은 장이 익으면
다가올 스승의 날에 을수네 담임 선생님께
한 항아리 퍼다 드리려 합니다
그 뿌듯함에 오늘 오후의 한 줌 햇살도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뒷산에 핀 복수초들도 한마디씩 거듭니다
을수네 담임 선생님의 각시는
도시에서 고명딸로 자랐대
장도 담글 줄 모르고
김치마저도 잘 담그지 못한대




바로 옆 담장 너머엔 혜미네 집입니다
혜미오빠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어귀를 곧잘 씩씩하게 달렸지만
지난해 군대에 간 뒤론
덩그마니 자전거만 담벼락에 매여 있습니다




호야네 집은 아직도 아궁이에
장작이나 나무 잔가지로 불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따금 저 작은 구멍들 사이로
연기가 솔솔 새어 나오곤 하지요




방과 후 뒷산으로 달음박질해 올라가면
여자아이들은 이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았습니다
그중에 진이가 제일 예뻤습니다
내 동무 진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진이 할머니는 혼자 사십니다
진이가 5학년 되던 해
진이네 아빠랑 엄마랑 육지로 떠나서
여태껏 소식이 없지만 진이 할머니께서는
올봄엔 온대..., 올가을엔 꼭 온대...,
하시면서 기다리시기를
벌써 몇 년째인지 모릅니다




꽃들의 속마음도
우리네 속마음과 닮았습니다
당글당글 알알이 맺혀있는
기다림처럼




오늘도 땡땡 땡땡!
청아한 종소리가 새벽을 열었습니다




날이 새면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됩니다
혜미네 부모님은 군대 간 혜미오빠를
진이네 할머니는
육지로 간 진이네를 기다립니다




대문마다 창마다
담벼락마다에 스민 기다림은
간절한 기도가 되어
늘 그렇게
종탑 높이 걸려 있습니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른 일곱이여... 늙은이를 뭣 하러 찍어..."
"참, 고우세요..."
"나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혀... "

어느 누가 있어
맘 놓고 어리광이라도 피셨으랴
잠시 스치는 나그네에게도
마음을 내리시는 어머니
우리네 어머니

저 나이 되시면
내 자식 네 자식이 따로 없습니다
나그네든 이방인이든
눈 맞추는 그 얼굴이 다 당신 자식입니다
다 주고 또 주어도
그래도 부족해서 지레 속이 타는
내 어머니십니다.





출처 : 김필연의 글과 사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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