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노인봉님의 우리말 산책 (62) - 오얏 / 사진 그렇지 님

뜰에봄 2008. 7. 15. 07:47

 

 


‘오얏’이란 말 들어 보셨나요? 적어도 성이 李씨인 분들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 같습니다. 李자를 ‘오얏 이(리)’
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참외밭에 가서는 신발을 바꿔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는
경구(警句)에서도 ‘오얏’을 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얏’은 꽤나 낯선 단어임이 분명합니다. 여간해서는 들어 보기 어렵습니다. “그전에는 여기가
오얏 과수원이었어요”라든가 “너 오얏 좋아하지?”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가령 ‘오얏의 효용’과 말을 쓰는 경우가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오얏’은 이제 이 땅에서 더 이상 생명력을 지탱하지 못하게 된 사어(死語)라 해야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어(古語) 또는 옛말이 된 것이지요. ‘오얏 이(李)’의 ‘오얏’은 일종의 화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地를 ‘따 지’라 읽고 山을 ‘뫼 산’이라고 읽듯이 한자의 훈(訓)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경우가
많은데 그 ‘오얏 이’로 ‘오얏’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李를 ‘오얏 이’라고 할 때의 그 ‘오얏’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모르시겠다고요요?  ‘자두’이지요.
그러니까 ‘뫼’라는 말이 사라지고 ‘산’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듯이 ‘오얏’이 쓰이던 자리에 ‘자두’가 들어앉은
것이지요. “그전에는 여기가 자두 과수원이었어요.” “너 자두 좋아하지?” ‘자두의 효용’ 오늘날 누구나 이렇게
쓰게 된 것이지요.

이 땅에서 언제부터 ‘오얏’이 세력을 잃고 ‘자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먼 옛날의 일은 아닌 듯합니다. 1824년에 간행된 <物名考>에도 <杏 살고> <梨  배> 등과 함께
<李 외앗>이라고 나오니까요. 물론 ‘외앗’은 바로 ‘오얏’은 아니지만 옛 문헌들을 보면 ‘오�/외�/외엿’ 등
비슷비슷한 발음의 표기가 몇 가지 있는데 다 같은 말인 만큼 결국 19세기 중엽까지도 ‘오얏’이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언제부터인가 차츰 ‘자두’에 자리를 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자두’에 밀려난 ‘오얏’이 방언에서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그렇지 님이 ‘고야’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올리신 것이 있는데 그 ‘고야’가 바로 ‘오얏’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이지요. 그 ‘고야’를 ‘꼬야’라 하는 지방도 있는데 우리 고향에서는 한걸음 더 변해 ‘꽤’라 하였습니다.

그 ‘꽤’는 토종 자두라 할까 알이 동글동글 작고 색깔도 붉다 못해 검기까지 한데 맛이 여간 시지 않아 먹을 때는
몸을 흔들게 되지요. 지금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하나 가득 고이면서 정말 머리가 저절로 흔들리네요. 이 종류로
익어도 노르스름하면서 맛이 좋은 게 있었는데 그건 ‘밀괘’라고 하였고, 또 알이 굵고 색깔도 연하고 맛이 좋은
종류로 ‘농유’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얏’이나 ‘외앗/외�’은 토종 자두를 가리킨 이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物名考>에 보면
일찍 익는 품종으로 ‘올외앗’도 올라 있고 또 ‘굴탈이’라고 크기가 큰 별개의 품종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紫桃’도 올라 있는데 그 풀이에 보면 “크고 색깔이 紫色”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자두’는 마치
‘살고’가 ‘살구’가 되고 ‘나모’가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은 변화를 입은 것으로 의미에서도 변화를 일으켜 품종에
관계없이 이 종류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얏’을 단순히 ‘자두’의 옛말이나 사투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딱하게도 국어사전들에서도 이 점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국어사전에는 ‘오얏’을 “자두의 잘못”
이라고 풀이해 놓았는데 “자두의 옛말”이라면 모를까, 1576년에 간행된 <新增類合>에도 ‘李 오얏 니’로 나와 있는
‘오얏’을 ‘잘못’이라 한 것은 정말 잘못한 풀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두의 예스러운 이름”으로 풀이한
다른 국어사전의 풀이도 정확하다고 하기 어렵겠지요. ‘예스러운 말’은 현재도 쓰기는 쓴다는 뜻일 것이므로
그것도 현실과 맞지 않은 기술이겠으나 무엇보다 ‘오얏’이 자두 중 어느 특정 품종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한정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투리에는 ‘고야/꼬야/꽤’ 외에도 고어(古語)의 모습 그대로인 ‘오얏’을 비롯하여 ‘오애/오야/오야지/옹애/왜지’ 등
여러 형태가 있고, <物名考>의 ‘구탈이’로 이어지는 ‘괘타리/괴타리/꾀타리’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토종 자두만을
가리키는 이름인지는 또 따로 조사해 보아야 하겠으나 적어도 전래 품종인 토종 자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는
이런 사투리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쯤 고향에 가면 비록 상품 가치가 떨어지지만 시골 할머니들이 담 주위에 있는 나무에서 따온 ‘오얏’을 팔고
있을 것 같네요. 그러면 저는 “어, 꽤가 나왔네. 이거 한 종지만 주세요.” “야, 밀괘 참 오래만에 보네요. 이거 얼매래요?”
그러며 할머니들 앞에 감격스러운 자세로 쪼그리고 앉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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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백태순   - 2008/07/13 19:30:23    
/“참외밭에 가서는 신발을 바꿔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
‘오얏 이’/
에서의 /오얏/이 무엇인지 한참을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갓을 고쳐 쓰지마라고 했으니 키가 큰 나무일 것 같기는 한데?
나무의 모양새가 李자를 닮았을까? 등등으로...
토종 자두의 이름인 줄 몰랐습니다.

자두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릴적에 자두를 무척이나 좋아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홍무사(나중에 알고 보니 /후무사/라는 품종이름이였더군요)라는
주먹만한 큰 자두가 많았습니다. 한입 베어 물면 달큼한 과즙이 가득한.
그런데 홍무사라고 부르는 분도 있었지만 /홍굴래/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았답니다.
/홍굴래/는 방아개비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해서 이상하다고 여겼답니다.

오늘 같은 날 홍무사 한입 먹어보고 싶은데 요즘은 잘 안 보이더군요 ^ ^
정귀동   - 2008/07/13 22:25:35    

고야,
제 고향 홍천 하고도 서석면을 지나 검산리 골짜기로 들어가면 고야는 있지만 자두는 찾아볼수가 없어요.
고야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오물오물 거리다가 싸앗만 따로 분리 하면 되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고야와 함께 오디도 등하굣길에 먹는 특급 간식이었습니다.

충북 제천지방으로 오니까 고야는 보기 어려웠고 가끔 있어도 고야가 아닌 "꼬야"라고 하네요.^^
대신 고향에선 보기 힘든 감나무나 자두나무가 보였어요. 물론 감은 열렸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긴 했지만요.
시골 이야기만 나오면 지나치지 못하고 꼭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
아이좋아~
雪野   - 2008/07/13 23:37:07    
저도 어릴 적에는 '꽤'라고 부르며 자랐는데 강릉쪽에서만 쓰였던 말인가 봅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기도 하지만 이 말을 아는 사람도 드물더군요.
어릴 적 외가 울타리 옆에 '꽤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먹는 방법이 좀 별 달랐습니다.
굵은 실을 한 바퀴 빙 둘러 양 끝을 잡아당기면 씨앗과 과육이 따로 분리됐던....
몇 년 전 지금은 폐가가 된 옛날 외가를 다녀왔는데 그 '꽤나무'들은 그대로더군요.
지금쯤 커다란 고목으로 자랐을 줄 알았는데....^&^
월류봉/友溪   - 2008/07/13 23:38:12    
오얏에서 자두에 이르는 이야기를 철저하게 다루셨군요.
우리 고향 김천은 오늘날 자두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우리가 어릴 때는 자두를 "옹애"라고 불렀답니다. 그런데
노인봉 님의 사투리 리스트에 옹애가 들어 있는 것을 보니
그 리스트가 이만저만 완벽한 것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요.
nam   - 2008/07/14 05:22:39    
자두를 옹애라고도 했군요.
제가 어릴때는 옹애라고 했던 기억이 이제야 새삼스럽네요.
학교 화단에 딱 한그루 있던 나무에 조롱 조롱 열매가 매달리면
누가 볼세라 익지도 않은 옹애를 살짝 따서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신맛에 뱉아 버렸던 ....
그 열매가 빨갛게 익은것을 본것은 기억에 없어요~^^

그러고 보니 어릴때 먹어 보았던
"고욤"이라는 작은 열매도 생각이 나네요.
할머니께서 항아리 속 가득 고욤을 넣어 두시면
맛나게 꺼내 먹었던 ....
그렇지/백금자   - 2008/07/14 07:10:50    
저희도 꼬야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이 근처에는 꼬야가 있는 집이 많아요
제 친구 이장집에도 지금 꼬야가 익어가고 있는데 다 익으면 한 바구니 따 가라고 약속을 잡아 놓았답니다.
오얏이 그 오얏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자두에 견줄 수 없는 꼬야만의 맛 전하고 싶습니다. 어릴적에 집 뒤안에 꼬야나무와 밀괘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는데
밀괘는 더 달아서 어른들을 드리고 꼬야는 저희가 먹었지요
커다란 꼬야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져 있어서 지금쯤 그 가지에 송판을 하나 얹어 의자를 만들고 손 자라는 곳에 꼬야를 따 먹으며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황소/김형소   - 2008/07/14 08:36:02    
강릉 삼척 울진까지 쓰는 말이 괘 였을겁니다.우리고향 동해시에서도 괘 라고 했으니까요..

괘나무..괘...꾀?ㅎㅎ
배짱이/배찬희   - 2008/07/15 01:16:11    
제 고향 안동에서는 어릴 적 "추리"라는 말을 가끔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큰 자두는 "한글레"?라고도 불렀던 것 같은데....
암튼, 들어 온 돌에 박힌 돌이 빠져버린 격인 오얏을 볼 때면
노인봉님 생각도 함께 날 듯 합니다 .
뜰에봄   - 2008/07/15 07:44:30  
제 고향은 동네가 제법 큰데도 자두나무 있는 집이 제 기억으로 한 집밖에 없었습니다.
어릴 때 자두나무집 유삭골할매가 따 주시던 그 자두맛을 잊지 못합니다.
자두나무가 흔하지 않아서인지 제 고향에선 '자두' 라고 불렀는데 자두의 사투리도 정말 많으네요.
시장에 나오는 큰 자두를 볼 적마다 작아도 씨가 고스란히 발라지면서 달콤한 재래종 자두가 생각납니다.
그렇지님 자두나무 사진이 너무나 정겹습니다.
잘 익은 거 몇 개 따먹고 싶어집니다.
터진풍선   - 2008/07/15 13:26:54    
나의 성이 뭔지 나이 40 넘어 처음 알았네요. 왜사는지 원 ㅜ.ㅜ;
해아래   - 2008/07/15 15:15:39    
이 글을 읽으면서 슬펐습니다. 아무리 모른다 해도 그렇지요.
생전 처음 듣는 단어가 줄줄 나와서요.
오얏이 무얼까 궁금했는데 이참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혹여 지난 일이지만
시골가서 그곳 사람들과 얘기할 때 제가 그들의 얘기를 다 알아 들었겠지...하는
착각을 많이 했을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단어들을 그들을 은연 중에 아니 그냥 일상에서 섞어 사용했겠지요.
더더욱 겸손해야겠다...라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ㅜ.ㅜ
노인봉   - 2008/07/15 18:52:24    
이 글을 내보내던 저녁에 막내 생일 파티를 늦춰 하는라 온 식구가 다 모였었습니다.
'오얏 李'의 '오얏'이 무슨 뜻인지 며느리들에게 물어 보려 했습니다. 李씨 문중으로
왔으니 그 정도의 기초는 알고 있겠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딸이 먼저
왔길래 이놈이야 으레 알겠지 하면서도 물어 보았지요. "복숭아, 살구 뭐
그런 거 아녜요?" 그래서 무슨 답이 그러냐 정확히 말해야지 했더니 끝내 모르더군요.
'자두'가 아니냐고 했더니 그만하면 맞았잖냐고 하면서 맞게 해 달라고 떼를 떴습니다.
옆에서 듣던 집사람도 오얏이 자두라고요 그러고.

그래서 사실 이미 올린 글의 일부를 고쳤답니다. <李를 ‘오얏 이’라고 할 때의 그 ‘오얏’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자두'라고요? 예, 맞습니다, 자두입니다>라고 했던 것을
<李를 ‘오얏 이’라고 할 때의 그 ‘오얏’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모르시겠다고요?>라고
말입니다.

古語가 된 걸 모르는 것 당연하겠지요.. 구세대인 우리가 그 방면으로 조금 더 밝긴
하겠으나 '오얏'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젊다는 자랑 쯤으로 여기시는 게
마땅하올 줄 아옵니다.
우화의강   - 2008/07/15 21:01:38    
오얏이 자두의 고어인지를 이제사 알게 되었습니다.
젊다는 자랑으로 여기라는 위로를 주셨음에도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늘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게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목(宇木)이창길   - 2008/07/15 23:30:42    
어릴적 옹애라는 말이 어슴프레 기억에서 되살아나네요.
50년을 넘게 이씨 성을 쓰면서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만큼 젊다는 자랑으로 여길랍니다. ㅎㅎㅎ
노인봉   - 2008/07/16 18:07:31    
꼬꼬마 님, 기억이 정확하시네요. <韓國方言資料集>에 보니 '홍굴레'가 경주 방언으로 나오네요.
배짱이 님의 '한글레'도 결국 이 '홍굴레'와 맥이 닿을 듯합니다. 그리고 '추리'는 경북 외에도
평안도 황해도 등 몇 곳에서 쓰인다는데 혹시 옛 문헌에 나오는 '조리(趙李)'에서 나온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황소 님, 강릉에서 삼척까지는 '꽤'인데 울진에서는 '꽤기'라 한답니다.

이 이외도 '풍개', '애치', '애추', '왜추' 등 몇 가지거 더 있는데 사투리의 성지라고
할 만한 뜰에봄 님 고향에서 사투리를 들어 볼 수 없었다는 건 신기하네요. 역시
젊으셔서 못 들어 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뜰에봄   - 2008/07/16 19:25:50  
아ㅡ 그러고보니 ' 애추' 라는 말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어른들이 쓰셨던 것 같아요.
자두나무가 귀했던 탓에 자주 듣지 못해서 제가 얼릉 떠올리지 못했네요.
제 고향이 사투리의 성지라고 할만하다는 노인봉님의 말씀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직접 가셔서 들어 보셔야 하는데...
꼬꼬마/백태순   - 2008/07/16 22:51:19    
/애추/라는 말은 지금도 사용합니다.
과수원에서 재배하는 자두가 아니고 야생으로 자라는 맛이 시고
한입 베어 물면 눈이 찔끈 감기는 자두보다 조금 더 작은 것을 /애추/라고 부릅니다.
울동네에도 몇 그루 아직 남아 있습니다. ^ ^
말나리   - 2008/07/16 23:12:32    
처음에 무슨 연유로 자두나무를 성씨로 삼았을까 참 궁굼해집니다 .
자두나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아이디카   - 2008/07/17 00:39:04    
.
제가 어렸을 때 경북 영덕의 두메산골에 살았는데,
그 무렵에 마당 한켠에 오얏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해마다 오얏을 따먹고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오얏이 낯선 말이 아닙니다.
제가 문자를 배우기 전에 친숙하게 된 말이라 그때는 오약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
노인봉님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노인봉   - 2008/07/17 08:15:58    
갑자기 <애추>가 빛을 얻는군요. 사람 팔자만 시간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아이디카 님, <오약>이 경상도와 함경도에서 쓰이는 것으로 나오네요. <고약>도 있고요.
<왜기>도 결국 이들과 영향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어떻게든 조금씩 발음을 바꾸어 가면서
끝없이 새말을 만들어 가는 게 흥미롭지요?

말나리 님, 궁금해하지만 마시고 멋진 상상력을 한 번 발휘해 보세요. 柳씨는 왜,
魚씨는 왜, 馬씨는 왜, 田씨는 왜 그러며 상상의 나래를 펴면 재미있을 것 같지요?

그나저나 올핸 어디 가서 오얏 잘 익은 사진 하나 찍어 와야겠네요. 어느분이 하나
찍어 선물로 주시면 더욱 고맙고요.
뜰에봄   - 2008/07/17 10:42:01  
애추는 사실 동글 동글한 자두보다는 끝이 뽀족한 자두를 일컬었던 듯 합니다.
씨와 과육이 쉽게 분리되는 재래종 자두와는 좀 달랐지요.
배짱이/배찬희   - 2008/07/17 11:45:57    
아, 참.....
그러고보니, 제 반쪽 고향은 "별들의 고향"이라고 늘 자랑하는 경북 성주인데
애추라는 말을 하더군요.
연애시절 발그래한 자두를 두 개 주머니에 넣어와서는
"애추" 가 넘 맛있어보여서.....하며 꺼내주던 생각이 납니다.
노인봉   - 2008/07/17 20:05:42    
<자두나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은 무슨 뜻으로 하였을까?
오늘 동료들과 점심 먹으며 오얏 얘기를 꺼냈더니 독문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중요한 얘기를 하나
해 주더군요. 브레히트 희곡에서 '자두나무 아래'는 아주 상직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곳. 말나리 님이 이미 이것까지 아시고 던진 질문일까요?
가볍게 시작했다가 저도 이러다가 오얏 박사가 되겠어요.

참고로 “참외밭에 가서는 신발을 바꿔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의 원문을 실어 둘까요.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아래아 한글에서 <이하부정관>을 치고 <한자>를 누르니 다섯 자가 한꺼번에 뜨네요.
<과전불납리>도 마찬가지고요. 자주 인용되는 글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중국 古詩에
나온다니 기원도 오래된 것인가 봅니다. 뜻이야 다 알다시피 의심 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갓이 좀 비뚤었더라도 과일 나무 밑에서 고쳐 쓰다가 과일 따 먹는 줄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참으라는 얘기지요. 참외밭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뭘 하다가 의심 받을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 많은 과일 나무 중에 왜 하필 오얏나무일까 하는 것이 또 새 관심사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저는 이제 손을 들겠습니다.
말나리   - 2008/07/17 23:23:02    
브레히트 희곡에서의 자두나무 아래 이야기를 이런때 좍 풀어 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식도 들통 나고 좋은 기회인데 아깝네요 ~~ㅎㅎ
근데 솔직히 브레히트 희곡을 알고 한 얘기가 아니구요 李자가 나무木에 아들子라서 상상해본 거입니다 .
실제로 비자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아래서 잉태한 아이는 머리가 뛰어나다는 설이 있습니다 ^^*
솔바람   - 2008/07/18 23:08:23    
"자두나무 아래서" 라는 말씀에 웹문서 이곳 저곳을 뒤져 보았습니다.
"타인의 삶" 영화에서 감시자 역할을 하는 비즐러가 읽는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 남은 자의 슬픔"에 나오는 시
"마리아의 추억"이라는 시이네요.


마리아의 추억

1.

그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나는 귀여운 꿈처럼 품에 껴앉았다.
우리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은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2.

그 날 이후 수많은 달들, 숱한 세월이
소리없이 흘러 지나가 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겠다.
하지만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나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끝끝내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3.

그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나는 아직도 알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어쩌면 자두 나무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꽃피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제 일곱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동안 피어 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었다.

<브레히트>
노인봉   - 2008/07/21 11:29:29    
<이제 손을 들겠다>고 했는데 대단하신 분들이 또 나오게 하네요.
솔바람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학도답지 않게 어찌 이런 것까지 관심을 두시고
사랑하는지 놀랍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도 읽고 '소문'을 '사실'로 익히기도 하였습니다.

말나리 님 때문에 이번에도 공부를 하나 더 하였습니다. 李의 子는 뜻을 나타내는 부분이
아니고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이라 합니다. 한자의 90% 이상은 소위 形聲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桐/銅/洞의 앞 부분은 뜻을, 뒷 부분은 소리를 나타내 주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李도 木은 의미를 나타내 주지만 子는 [지(至)] 비슷한소리를 나타내 주는 부분인데
그 소리가 워낙 많이 변해 오늘날의 발음에 이르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