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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군지촌정사가 있고, 함허정이 있는 마을 군지촌. 20세대에 주민 39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
ⓒ 심홍섭 | 봄이 오는 길목을 가고 있다. 840번 지방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길을 알았던 것처럼 편안한 길이다. 왼편으로 섬진강(이곳에서는 순자강이라고도 부른다)을 끼고 달리다가 강정등에 있는 함허정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곡성군 입면 제월리 군지촌( 池村), 남쪽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부딪히는 강정등에 있는 함허정(涵虛亭, 전남도 유형문화재 160호)에 오른다. 군지촌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는 하중도(河中島)인 모래섬이 있었다. 《고려사 지리지》에 보면 ‘소내오도(小乃烏島)’와 ‘절음도(折音島)’라는 지명이 나온다. 그런데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이 들어선 뒤 대내오도가 연륙되었으며 골재 채취가 시행되면서 절음도 백사장은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인 1543년에 병조참판을 지낸 심안지의 손자인 심광형이 마을에 세거하면서 터전을 마련하고 군지촌정사( 池村精舍)을 지을 때는 정사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가던 도승이 연못 때문에 마을에 맹인이 나온다고 해서 숯으로 메운 뒤 맹인이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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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돌담에 빈집이 태반인 마을에 노란 산수유는 지난해 봄처럼 또 피어났다.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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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홍섭 | “감나무도 살아야제”…지붕 뚫어 감나무 살린 대우양반 군지촌은 1984년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군지촌정사가 있고, 함허정도 있는 마을이지만 여느 산골마을처럼 20세대에 주민 39명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몇 번 돌았어도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데 함석지붕을 뚫고 나온 감나무가 보인다. 감나무가 자라도록 함석지붕의 한쪽을 뚫어 놓은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대우양반이라고 부른다는 오채식(73) 할아버지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감나무를 자르지 않고 지붕을 뚫은 이유를 물으니 대답이 간단하다. “감나무도 살아야제.”
마을에서 가장 연로하신 분과 가장 젊은 사람의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빨래하던 신효순(72) 할머니가 정확하게 대답을 하신다. “총기가 대단하시네요” 하니 “옛날에는 동네사람들 전화번호를 다 외웠는디 지금은 나이 묵어 갖고 다 잊어 불었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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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지붕을 뚫고 나온 감나무. 감나무 살리려고 지붕을 뚫은 쥔 양반 오채식(73) 할아버지 말씀이 “감나무도 살아야제.”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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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홍섭 | “애랬을(어렸을) 직(적)에 석 달 공부한 것이 다여. 그래서 손주가 배운 단어 카드를 보면서 공부를 흐는디 애로와(어려워). 요 옆 평촌 같은 디는 군 주부대학에서 나와 갖고 글 모르는 사람들 모타(모여) 놓고 공부를 갈쳐 주기는 흔디 추접스러와서 못 가. 공부는 흐고 싶어도….”
그러면서 손주의 단어카드며 국어, 산수 같은 교과서를 봉다리에서 풀어 내 놓는다. “챙피스롸서 배울라 허제. 전에는 전기세나 세금 같은 것은 농협하고 면에 다니는 딸한테 돈만 주믄 즈그들이 알아서 다 했는디, 딸들이 모다(도두) 다른 디로 가는 바람에 인자는 스스로 해야 되는디 나(내)가 글을 알아야제. 말로는 흐것는디 진짜 회계를 흘라믄 못흐겄어. 글만 알믄 세상 못흘 거 없겄는디 말여. 영감 몸이 성성할 때는 영감이 알아서 다 했는디 인자 영감까지 아픈께 나가 알아서 해야 흔디 글씨를 모른께 참말로 챙피시롸."
할아버지는 말없이 웃으며 마당가에 핀 매화만 쳐다보고 있고 할머니는 단어카드를 한 장 한 장 들어 본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더니 컵에 사과즙을 담아 내 온다. “한번 잡사봐. 묵을 만헐 것이요.”
그러고 보니 입면 소재지를 지나 제월리로 오면서 배배 꽈진 사과나무들을 보았다. 섬진강 맑은 바람을 맞으며 빠알간 사과가 영글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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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지촌 정사 안채 제월당 마당의 장 항아리.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니 장맛이 좋았다.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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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홍섭 | “문화재라고 사람들이 많이들 오는디”…군지촌정사 경사진 골목을 따라 마을 당산으로 올라간다. 길목은 온통 들꽃으로 가득하다.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언덕 위 햇빛 가득한 당산에 잠시 앉으니 매화향기 가득하다. 벌렁 누워 하늘을 본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뺨을 간지럽힌다.
청송 심씨 4현을 배향하는 구암사가 있는 똥맷등으로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보인다. 시골에서 아이들 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신기하여 물으니 입면초등학교 2학년인 심우혁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심민수다. 형제인 둘을 빼면 군지촌엔 아이들이 없다. 아침에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그냥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동생인 민수는 내복만 입고 이 집 저 집을 타잔처럼 넘나든다.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좁은 마당에서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차면서 신이 나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 뒤로하고 똥맷등을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무너진 돌담에 빈집이 태반인데 매화와 노란 산수유만 지난해 봄처럼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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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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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맛있겠죠? |
ⓒ 심홍섭 | 똥맷등 줄기인 뒷골을 타고 내려가 반뜸으로 간다. 군지촌의 터를 잡은 심광현이 지은 군지촌정사와 함허정이 있는 곳이다. 섬진강 수려한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군지촌정사엔 김순남(75) 할머니 혼자 살고 있다. 1996년에 이 집을 지키던 심해섭씨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홀로 이 큰 집을 지키고 있다.
“그 양반 돌아가시고 난께 한두 가지가 서운흔 게 아니여. 문화재라고 사람들이 많이들 오는디 집안 내력을 설명을 해 줘야 흐는디 나가 뭘 알아야제. 그 양반이 다 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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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 위로 빼곡하게 붙은 입춘부(立春賦).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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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주 3형제? |
ⓒ 심홍섭 | 제월당 장독대엔 장이 익고 안채인 제월당(霽月堂)은 할머니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뒤뜰의 작은 텃밭은 모두 갈아엎어 곧 씨를 뿌릴 것이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장독대에는 항아리들이 가지런하다. 햇빛을 쏘이고 있는 커다란 장 항아리에는 장이 알맞게 익어가고 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니 장맛이 좋다.
장맛이 좋다 하니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져서 식사하라며 쌀을 씻는다. 극구 사양했지만 같은 집안사람(필자도 청송 심씨다)인데 굶겨서 보낼 순 없단다. 같이 있던 옆집 할머니는 당신 집으로 가잔다. 찬은 없지만 먹을 만할 거란다. 취재 다니면서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싶어 웃음이 절로 난다. 밥솥에서 밥 익는 냄새를 맡으며 대청마루에 앉아 열린 솟을대문 사이로 보이는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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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군지촌정사를 건사해 오고 있는 김순남 할머니.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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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3년 심광형 선생이 지은 군지촌정사 현판. |
ⓒ 심홍섭 | “말도 말어, 바깥양반 살아 지실(계실) 직에는 손님 수발하느라 정신 없었제. 사랑채에다 상을 내 가야 흐는디 문짝이 작아 갖고 상이 들어가덜 못해. 반찬을 일일이 들고 날라야 해. 그 고상 말도 못해. 학생들이 단체로 오믄 커피를 솥단지에다 낄여(끓여) 갖고 주발로 퍼주고 했어.”
옛날 한옥에 사는 것이 좋아 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밥해 묵고 살기가 하도 불편해서 군에다 얘기해 갖고 입식부엌으로 바꿨제. 화장실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옛날 있던 곳에 그대로 있어.” 하루라도 꼼지락거리지 않으면 집꼴이 말이 아니라며 이야기하는 중에도 대청마루를 닦고 또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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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허정. |
ⓒ 심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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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지촌의 어린이들이 ‘모두’ 모였다. 입면초등학교 2학년인 심우 혁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심민수. |
ⓒ 심홍섭 | 비어 있기 때문에 충만한 것의 경지 함허정으로 올라간다. 함허정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은 봄 색깔이 완연하다. 1543년(중종 38년) 광양 곡성 등에서 훈도(訓導)를 지냈던 당대의 문사 심광형이 지었다는 함허정에서 군지촌을 내려다보니 매봉몬당 자락에 앉은 군지촌이 아담하다. 그렇게 마을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호연정(浩然亭)이라고도 부르는 함허정(涵虛亭)의 뜻은 감히 헤아려지지 않는다.
‘물 머금을 함(涵)’, ‘빌 허(虛)’. 충만하면서도 비어 있는 것, 혹은 비어 있기 때문에 충만한 것의 경지를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로 보여주는 것일까, 함허정을 내려오는데 봄바람 따라 매화향기가 뒤따라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