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수채화 | ||||||||||||||||||
간이역, 그리움 따라 | ||||||||||||||||||
경남도민일보 기자 ![]() | ||||||||||||||||||
거기다 덜커덩거리며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통근열차가 역 쪽으로 서서히 다가온다면…. 이만한 가을날의 수채화가 또 있을까. 하면 올까 하면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기차가 없는 철길이나 사람이 없는 역이나 신세는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덕을 부려도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간이역은 생긴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있다. 가을날 자연의 조화는 역이나 철길에 더욱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경남을 가로지르는 경전선의 간이역에서 자연보다 더한 자연이 돼버린 인공물을 보게 된다. 옛 역사가 사라져버린 간이역에는 버스정류소 만한 대기실과 가로등,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의 역명 간판이 그대로 남아있다. 경전선 동쪽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간이역이 밀양 삼랑진역과 한림정역 사이 낙동강역이었다. 낙동강의 엄청난 강폭을 이어주는 철교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면 곧바로 만나게 되는 역이다. 유치원 시절, 비둘기호를 타고 이 역에서 내려 강변 백사장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누군가 갖고 있는 곳이다. 간이역답지 않게 아직 남아있는 역사에는 역무원 한 사람이 근무를 하고 있다. 그는 기차 시간을 체크하거나 표를 팔기도 하고, 밖으로 나와 철로에 기름칠을 하거나 풀을 뽑는다. 요즘도 유치원 아이들이 많이 오는지 물었더니 그는 더 많은 답을 해주었다. “강변에 농토가 늘고 공사가 계속 되면서 백사장이 거의 없어졌어요. 그래서 전보다 많이 안 오지요. 거기다가 한 5년 뒤에는 이 역이 화물만 다루는 역으로 바뀌어요. 주변에 화물 보관할 터를 닦고 있지요.” 5년이나 남았다니 아직 늦지 않은 셈이다. 밀양 방향 상행선이 하루 네 번, 마산·진주 방향 하행선도 하루 네 번 낙동강역에서 선다. 이 역은 가까이 입곡저수지 가는 낚시꾼이나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한다. 차를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역 근처에는 ‘문득 그리움’처럼 간이역에 상호를 맞춘 식당이 몇 곳 있다. 비빔밥의 이름도 ‘그리움밥’이었다.
역 주변의 고택에 그만 눈길을 빼앗긴 것이다. 철길과 도랑, 고택의 후문이 숲 속에 절묘하게 감춰졌다. 정문 주소 판을 보니 ‘조씨 문중’이라는 표시가 있고, 그 옆엔 500년 묵은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안내한 간판이 더욱 컸다. ‘재실’로 짐작된 고택 안에는 본채와 바깥채가 연못으로 구분되고, 벼랑을 깎아 만든 계단으로 정자가 연결됐다. 정자에서는 또 근처의 ‘서산서원’이 훤하게 내려다보였다. 이러다가 간이역 찾을 생각도 나지 않겠다. 원북역은 고택 앞 철길을 따라 200m 정도를 걸으면 나타난다. 이제 곧 황금색으로 바뀔 들녘은 향기마저 푸르고, 철길 옆 느티나무 행렬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간이역 옆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옆으로 마치 꽃잎처럼 승차권이 떨어져 있다. ‘함안-원북 자유권, 1400원’ 이곳 역시 통근열차와 무궁화호 상·하행선이 각각 하루에 다섯 번 씩 선다.
양보역 가는 길은 황토재 고갯마루에 놓여있다. 과연 강원도의 골짝을 닮은 듯 길은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우봉리 하성마을에 접어들었다. 그 마을 안에 거짓말 같이 생긴 역이 하나 있었다.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의 횡천역과 북천역 사이의 양보역이 이곳이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빵빵)’ 글= 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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