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인숙언니와 통화.

뜰에봄 2009. 7. 17. 20:58

참으로 오랫만에, 아니 여태까지 통틀어 두 번째 인숙언니와 통화를 했다.

예전에 내가 한번 인숙언니 소식을 어떻게 물어 물어 한번 전화를 걸었고,

이번에는 인숙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국민학교 한 해 선배였던 인숙언니는 우리 고향동네와는 5 리쯤 떨어진 곳에 살았다.

인숙언니 식구들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인숙언니 오빠는 서울대를 나온만큼

  머리좋고 착실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물방앗간을 했는데 워낙 동네가 작아서 방앗간에서 얻는 수익은 얼마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나마 물방앗간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방앗간을 그만 두신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인숙언니 오빠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언니 부모님들도 미국으로 함께 가셨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언니집에 며칠 묵은 적이 있다.

사실 인숙언니는  워낙 착실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쉽게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워

그리 친하게 지낸 편이 아니었는데, 어떤 연유로 언니집에 머물렀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나도 공부는 잘 했기때문에 우리집에선 아무도 내 공부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고,

설령 실력이 모자란다고 해도 남의 집에 기숙까지 시킬 형편은 안 되었다.

아마도 입시를 앞 둔 시점에서 언니와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혹시 시험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인숙언니가 언니집에 와서 공부를 좀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지 싶다.

아니면 내가 언니집 식구들은 언제나 열공하는 사실을 알고서 얼마간이라고 그 곁에 붙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었나?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언니집에 며칠을 묵었는데 지금까지도 나는 한없이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지던 언니집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언니집은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걸로 기억되는데 가난해도 서로를 끔찍히 위하고 배려하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떡하든 나에게 잘 해 주려고 하시는 어른들의 마음이 절로 읽혀져 어린 마음에도 감동이었다.

인숙언니 아버지께서는 방앗간에서  발전기를 일으켜  전깃불을 켜 주셨는데 그 발전기가 돌아가는 동안엔 잠도 못 주무셨던 듯하다,.

자정이 넘게까지 켜 주셨다가 불과 세 시간쯤 지났을 때 또 켜 주셨다.

' 평소에도 인숙언니 식구들은 그렇게 공부하는 습관이 있구나. . 생각하며   놀랍게 여겼던 기억도 아슴하게 떠오른다.

 

우리집에선 내가 언니집에 기거한 보답도 안 했지 싶다.

당시에 나는 언젠가 돈을 벌게 되면 언니집 부모님들께 그럴듯한 선물이라도 사 드리리라 작정했다.

후에 내가 털신이었나, 내의였나, 하여튼 변변찮은 선물을 사 드리긴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생생하지가 않다.

그런 인숙언니네였는데 그토록 오랫동안 안부도 못 챙긴 게 미안하기 짝이없다.

인숙언니는 착실하기 짝이 없던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데 지난해에는 성경을 10 독이나 했다고 한다.

나는 여태 1독도 못했다는 말이 겨우 나왔다.

언니와 통화하면서  늘 놀기만 좋아하고, 매사 건성 건성 사는  나 자신이 어찌 부끄럽던지...

어쨌거나 너무도 반가운 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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