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당/ 김미옥
"꽃 좋아하면 눈물이 많다더라"
그러면서도
봉숭아 함박꽃 난초 접시꽃
흐드러지게 심으셨던
어머니
볕 좋은 날이면
콩대 꺾어 말리시고
붉은 고추 따다 널어두고
풀기 빳빳한 햇살 아래
가을 대추도 가득 널어 말리시며
잡풀 하나 없이 다듬느라
저문 날을 보내시던
고향집 마당
이제는 와스락 와스락
마른 대잎만 몰려다니며
잊혀진 발자국 더듬어가고
"내 죽으면 이 지섬 다 어쩔꼬"
어머니의 근심이
마당 곳곳에서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김미옥 詩 '어머니의 마당'은 울엄마 마당과 너무나 흡사해서 엄마가 살아 계실 적에도 내 수첩에 적어 놓고
고향집 '어머니의 마당' 이 그리울 적 마다 읽게 되는 詩이다.
이제는 어머니의 마당을 읽을적 마다 저절로 떠 올려지던 내 어머니 모습도 세상에 안 계시고,
따라서 ' 내 죽으면 이 지섬 다 어쩔꼬 , 마당 곳곳에 무더기로 자라던 어머니의 근심도 소용없게 되었다.
꽃사랑이 유별 나셨던 우리 엄마께선 울 엄마는 흔하게 돋아나는 꽃모종이라도 뽑아 내버리지 못해
마당 구석 구석, 변소가는 길, 골목에 이르기까지 심으시고,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 피어 있는 꽃들에게는
저녁마다 비닐이불을 덮어 주셨다.그래서 우리집엔 가장 늦게까지 꽃이 있는 집이었다.
우리 엄마. 도회지 자식들 집에 좀 기거하라고 말씀드리면 도회지 공기가 몸에 맞지않아 기침도 나오고
속이 답답하다는 핑계를 대셨지만 엄마가 고향집을 못 떠나시는 이유는 엄마의 마당 탓이 제일 큰 것 같았다.
겨울 철을 제외하고는 어머니와 전화를 하면 온통 마당에 있는 식구들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야야. 지금은 무슨 꽃이 피었다, 목련꽃 자주색이 희안하다. 라일락 향기가 한 마당이다.
앵두가 바알갛게 익었는데 아까워서 못 딸 지경이다. 고추에는 물을 하루만 안 줘도 다 시들라칸다.....'
등등으로 읊으신 연후에는 언제나 저것들 놔두고는 아무데도 못 가겠다는 결론을 지으시곤 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마당 이야기를 하실때면 얼마나 좋으신지, 목소리마저 들떠 있었다,
엄마 돌아 가시고 마당 구석 구석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니 그것들도 지들을 돌봐주던 할무이가
안 계신 줄을 아는 듯 애잔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 꽃들이야 내년에 저절로 다시 돋아 날 테지만 뻘쭘하게 키가 큰 다알리아는 뿌리가 얼지 않게
캐 들였다가 다시 심어야 하는데....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벌써 다알리아 뿌리를 캐서 들여 놓으셨을 터인데..
어느 해인가엔 엄마가 어디서 구해다 심으신 다알리아가 흔치 않은 보라색으로 꽃송이도 엄청 큰 게 피었는데
엄마가 그 꽃을 바라보시는 눈길엔 자랑스러움과 뿌듯한 기운까지 서려 있는 듯 했다.
엄마께서 저 노란 다알리아를 구해 심으실 적에 흔치 않은 꽃을 피울 기대로 마음이 한껏부풀어 계셨으리라.
저 사진 속의 다알리아는 앞으로 고향마당에서 다시 볼 수 없겠구나.
음, 사진을 찍어 놓길 잘 했어.
아 참, 우리 엄마는 다알리아를 따알리아로 발음하셨지.
별 게 다 떠올라 엄마 그리움에 폭 폭 가속도를 가하곤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날씨가 몹씨 춥다.
11월도 하루를 남겨 놓고 있으니 추울 때도 되었구나.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집 엄마의 마당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라는 말도 있드라만, 우리 엄마
이 세상에 안 계시는데도 세월은 가네.
시방 엄마가 없는 엄마의 마당엔 바람에 몸들 맡긴 마른 나뭇잎들만 바스락 거리겠다.
빠알간 산수유 열매가 혼자 곱겠다.
200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