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마사코”-어느 저널리스트의 탄식
저널리즘은 시사적인 문제나 사실을 등을 취재. 편집하여
공중매체를 통하여 일반에게 배포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사적”이란 말은 그때그때의 세상의 정세나 사회적사건과 관련된 것,
즉 역사성이 배제된 그때 그 시절의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사(時事)는 훗날 역사(歷史)의 소재가 됩니다.
저널리스트의 사명은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 정확하게 상황만 전달하면 됩니다.
역사적 사건을 시사적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저널리스틱(시사적으로)”하게 함부로 다루면 안되는 것입니다.
저널리스트가 역사적인 사실을 시사적으로 함부로 평가했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요.
그 문제의 사례를 전여옥씨의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10장의 제목이 “아깝다 마사코”로 되어 있습니다.
마사코는 현재 일본 나루히토 천황의 황비인 오다와 마사코를 가르킵니다.
전여옥씨가 10장 글 제목을 “아깝다 마사코”로 쓴 이유는 이렇습니다.
마사코씨는 우수한 인재로서 아주 유능한 여성외교관으로 성장할 재목이었는데
황비로 간택되는 바람에 그만 별 볼일 없이 재능을 썩히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일본 황실은 황세자 노총각을 장가보내기 위해 그동안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데 황세자가 마음에 든다고 한 처녀를 보니 그 처녀의 가문이 귀족도 아니고
일개 평민에 불과하여 일본 황가의 시름과 고민은 깊었습니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개 신문기자가 일본 보수주의의 깃발인 황가를 모욕하며
처녀가 아깝다고 황세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을 함부로 써도 유분수지 이웃나라 황실을 모욕해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웃집의 혼사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이웃나라 왕실의 삼엄한 혼사에 대해
처녀 총각 가문을 모욕하는 글을 천하대중 앞에 발표해버린 것입니다.
일본은 우발적 사건을 중국의 조작적 사건으로 왜곡시켜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고 중국 정벌에 나선 나라입니다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만주 선양의 남만철도를 일부러 폭파한 뒤
중국 동북군벌 장쉐량(張學良)의 소행으로 몰아 붙혀 만주사변을 일으킨 나라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라면 이 글 하나로 선전포고의 구실로 삼았을 것입니다.
전여옥씨는 이 글을 통해 일본 황실을 모욕하는데 모욕하는 방법도
통속잡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뺑덕어멈 수다떨기 수준에서
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천황의 역사와 시대별 위상을 파악하는 일는
일본의 역사와 근대를 이해하는 핵심부분에 해당합니다.
일본천황은 정치 권력 상으로는 유명무실 해졌지만
아직은 전여옥씨가 함부로 깔보며 아무 글이 나 써대도 좋을 만큼
허약한 존재는 아닙니다.
일본의 천황은 사실 중세부터 가마꾸라 막부, 도쿠가와 막부 등과 같이
당시의 실세 권력들의 막부(幕府) 통치에 밀려서
상징적으로 군림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유명무실해진 일본 천황은 명치유신을 계기로 극적으로 실세에 복귀합니다.
흑선(黑船)으로 불리는 외국 전함이 일본 근해에 출몰하자
당시의 보수적인 쇼오군(將軍)막부를 무너뜨리고 개국(開國)하여
서구 열강에게 배워야 한다고 막부에 대항하고자
지사(志士)들이 칼을 뽑아 든 것이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와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외세가 압박해오자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펴고
접근하는 세계 열강들에 대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일본은 그 반대였습니다.
즉 우리 조선이 근왕(勤王)을 위해 쇄국(鎖國)을 했다면
일본은 개국을 위해 근왕(勤王)을 기치로 내세운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했던 것입니다.
명치유신은 사카모토 료오마(坂本龍馬)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막부를 수호하는 자객단 신선조(新選租)에게 암살됩니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막부파와 근왕파, 그리고 수많은 지사(志士)들의 피로 얼룩져 있습니다.
명치유신은 지금의 교토(京都)에 있는 이조성(二條城)에서
대정봉환(大正奉還)의 의식을 거행함으로서 완결됩니다.
명치유신이 완료되자 일본은 서구 제국과 마찬가지로 내각을 구성하였고
내각은 헌법을 정하여 “일본은 만세일계(萬歲一係) 천황이 통치한다”라고
헌법 제 일조에 명시합니다.
이로서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청일(淸日), 로일(露日)전쟁을 거쳐 양차 세계대전에 참여합니다.
천황은 탈아입구(脫亞入區),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을 지양하는
제국 일본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군부와 천황신화가 결합하여 무모하게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만
미국의 엄청난 물자전에 밀려 대패합니다.
1945년 무조건 항복선언을 한 후 천황은 미국의 점령지 통치전략에 힘입어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고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존재로 다시 전락하게 된 것.
이것이 명치유신을 전후한 천황사의 개략입니다.
그 뒤로 일본 황실과 천황은 정치권력의 제 일선에는 완전히 물러납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났을까요?
일본인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은퇴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이웃나라 욕 잘하는 여기자에게 마저 함부로 홀대당하는
처량한 처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황실은 여전히
일본 보수 세력의 결집의 한가운데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여전히 천황시대에서의 제국주의 환상과
그 좋은 시절(Old Gooddays)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극우적 성향은 일본 중장년층의 대부분이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합니다.
전여옥씨가 “일본은 없다”라느니 “아깝다 마사코”라고 탄식하며
함부로 일본 황실을 모욕하는 것은 국가 간에서도 큰 결례(缺禮)일 뿐 아니라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의 보수세력의 결집을 도와주는,
사실은 이적행위(利敵行爲)밖에 안 되는 경솔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황실문제야 말로 한일간의 역사적 쌍대성의 중심에 있습니다.
황실의 비밀한 역사속에 한일관계사의 비밀도 같이 묻혀있습니다.
전여옥씨의 황실모독은 한일 관계사에 얽힌 이면사(裏面史), 은폐된 역사,
행간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 들어날 역사에 대해 한 올의 지식도, 배려도 없는
무식하면 용감하다 식의 엉터리 기자의 망발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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