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아들 동후 생일이다.
"엄마가 널 낳아 줬는데 선물없냐?" 했더니 짜아슥이 그런 게 어디있느냐는 듯이 씨익 웃고만다.
군대까지 갔다 왔으니 알아들을만도 한데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다.
24년 전 오늘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해산일을 열흘 남겨놓은 만삭의 임부였다.
하루 전날인 11월1일 종시동생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남편 고향인 담양에서, 그리고 광주사는 친척들도 올라와 결혼식을 보고는
동두천에 있는 시고모님 댁으로 몰려갔다.
스무명도 넘는 인원이 고모님댁으로 갔는데 오랫만에 모였으니만큼 이야기를 하거나
고스톱을 치면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흩어질 시간에 내가 나서서 멀리서 모처럼 오셨는데 하루만 자고 가시는 게
섭섭하지 않냐며 다들 우리집으로 가시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집에 가실 분이 열 한 명이나 되었다.
우리가 인천 동암역 주변에 살 때이다. 남편과 나까지 도합 13명이
인원파악을 해가면서 버스타고, 전철타고 해서 우리집으로 오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 있었다.
부랴부랴 점심으로 떡만두국을 끓여드렸다.
그리고 또 저녁 준비를 하기위해 부식가게로 가서 장을 보는데 배가 살살 아파왔다.
예정일이 열흘이나 남아있어 애를 낳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랬는데 배가 점점 더 아파오고 몸이 이상해서 병원으로 갔더니 해산의 기미가 보인다고 했다.
집에 오신 손님들은 두 분만 남고 다들 황급히 가버리셨단다.
입원하고 두어시간 쯤 지나 동후를 낳았다.
큰언니가 밤 늦게 소고기를 사 가지고 오고, 다음 날 엄마가 산바라지를 하기 위해 고향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담양에서 올라오셨던 당숙모님은 내가 끓여드린 떡만두국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동후가 태어 날 때 오셨던 당숙모님 두 분이 돌아가셨고, 백일이 되도록 해산바라지를 해 주시던
엄마도 돌아가셨다.
나도 어언 흰머리 염색 할 때를 헤아리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당시 우리 둘째 언니는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가 무슨 배짱으로 손님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왔냐며
나보고 미련곰팅이라고 했다. 그땐 참 겁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젠 그때보다 형편도 훨씬 좋아졌고. 살림 경력도 쌓였지만 손님을 그렇게 모셔 올 용기(?)는 못 낼 것 같다.
그만큼 약아빠진 탓이겠지.
남편은 오늘 식구끼리 외식을 하자고 했는데 아들은 친구모임이 더 중요한 모양으로
다른 날로 미루면 안 되냐고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오늘 지나면 땡이지 뭐 맨날 지 생일인감?
생일 선물로 가방하나 사 줄까 말까? 생일이 참 의미깊은 날이긴 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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