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견문록(1)
약 열흘 일정으로 유럽에 놀러갔다가(?) 왔습니다.
다녀 온 뒤로 내내 몸이 시원잖아서 글도 못쓰고 지금까지 빌빌하고 있습니다.
온지 한참되었는데 이제사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여행 중간 중간에 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확인도 않고 뜰에 봄님에게
그냥 무책임하게(?) 부쳤는데..
돌아와 사진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것과 그 속의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찍을 때 마다 김치~~, 치이즈~~ 하고 찍었는데 실제 사진의 모습은
하나같이 미소 짓는데 실패하여 이상한 표정이 되어 있더군요.
외로운 연가시절은 제 체중이 67키로였고 그것을 완정님 사이트에 쓸 당시는
70-72키로, 그러나 지금의 제 체중은 77키로이니 사진 속에 나타난 제 비둔한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정말 언제부터인가.. 거울 속의 제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게 정말 나인가..
변해버린 제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생소하여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듯 망연하여 쳐다볼 때가 있습니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놀라면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스스로의 모습을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지금도 그 모습이겠거니 하며 태연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착각한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길 바라며 스스로 그 모습인 것으로
자기 최면을 걸며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ㅎㅎㅎ
봄님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사진을 내렸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멉미까..
그건 그렇고 이번 유럽 여행은 그럭 저럭 몇 가지 소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싫어했습니다.
제가 싫어 한 것이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여행이고 그 다음은 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여행은 귀찮고 고생만 해서 싫었고
꽃은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떠는 것이 이상해서 싫었고
어린 아이들은 함부로 시끄럽게 떠들고 버릇없이 굴어서 싫어했지요..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삶의 경험이 풍부해지자 생각도 바뀌더군요.
이제는 거꾸로 이 세 가지 다 좋아하는 것이 되었으니 제 선호의 기준도 많이
정상화 된 모양입니다.
전에는
그 힘든 여행을 사람들은 왜 미련하게 짐 싸매고 다니는지 참 이해가 안 되었고
꽃에 대해서도 꽃이 다 저렇게 생겼지 사람들은 참 호들갑스럽기도 하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치고 시끄럽게 굴면 늘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켰길 래 저 모양이지..
한심한 부모들이야. 이러면서 아이들이 제 옆에 오는 것을 늘 경계(?)했지요.
하하하..
우습죠?
그러던 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시간만 되면 여행 갈려고 늘 틈(?)만 노리게 되었고 꽃도 옆에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 감상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제가 제 아이를 낳아보니 그때사 아이들처럼 이쁜 게 없더군요.
저도 이제 여행이 좋아진 건 분명한데 여행의 의미나 기쁨을 느끼는 요소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른 사람과 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베니스에서 사람들이 뱃놀이하면서 어찌나 호들갑을 떨던지 옆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잔잔한 담수호같은 바다에서 뱃놀이하면서 뭐가 즐겁다고 난리들인지..
해운대 유람선 쪽이 박력도 있고 훨 낫구만..“
이렇게 말하자 동료들은 저를 삐딱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스위스의 마테호른에 오르자 사람들이 또 “장관이야!!”하길래
“눈이 와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데 무슨 장관은!!" 했더니
“ 눈 오는게 장관이지!!!!!!!!!”라고 응수하더군요.
“ 눈 오는거 처음 보남..설악산 눈보다 훨 못하구만” 했더니 역시 볼멘 표정들이었습니다.
제가 동료들에게 행하는 여행 초(?)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몽마르뜨에서는 “이게 먹자골목인 모양인데 먹자 골목이면 골목답게
구수한 냄새라도 있어야지.. 이렇게 반듯해서야 어디 올 맛 나겠나“
이 말도 평판이 좋지 않았고..
세느강의 뱃놀이에서도
“강폭이 이리 좁고 다리밑에 머리가 부딪힐 정도로 지나다니 이거야 청계천에서
노 젓는거지..참나..“
이 말 역시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에펠탑에서 제가
“고압선 철탑을 아예 도시 한복판에 갖다 놓았구만..”했더니
이 말에는 아예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조차도 않더군요.
매일의 관광일정이 끝나면 동료들은 와인을 들며 그날의 낭만을 만끽하며
서로 유럽의 고전적 풍물에 대해 칭찬이 늘어졌는데 하루 종일 시큰둥하게
따라 다니던 제가 그들에게 “오늘 본 게 무엇인줄 알기나 해?”하며 시비를 걸며
매일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이끌었습니다.
말이 토론이지 처음에는 돌아가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던 여행 친구들은
금방 침묵하고 저 혼자 떠드는 시간이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혼자 떠들기를 삼십분도 되기 전에 사람들은 금방 하품을 하며
“내일 일정이 빡빡하므로..” 또는 “오늘은 피곤하니..이만..”이러면서
슬금슬금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가 버리더군요.
다음은 제가 그들에게 떠들었던 내용을 요점만 추려 견문록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이 견문록을 읽는 독자들은 틀림없이
“그 재미없는 연가 쪽이 그나마 낫겠구만..견문록은 무슨 견문록..”하면서 여행의 동료들처럼
금방 하품을 하며 지겨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 방은 제가 뜰에 봄님에게 전세낸 방이고
방 주인이 발가벗고 돌아다녀도
봄님의 퇴출권고가 없는 이상 면책특권이 있는 것처럼...
모든 비판적 견해를 무시하고 그냥 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ㅎㅎ..
사실 이 글은 뜰의 봄님에게 이메일로 부쳐 "옛사랑의 모습공개"편에 사진 내린 자리에
끼워 넣기로 했는데 글이 길어서 그냥 몇 편에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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