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구미에 사는 내 친구 동란이가 왔다.
사실 동란이한테는 내가 형님 소리를 들을 법도 한데 맞짱을 뜨고 있다.
예전에 같은 상가에 있으면서 너, 나하고 지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소위 민증을 까고보니) 내가 저 보다
네 살이나 위인 것이 아닌가,
그때 보통사람 같으면 아이구 몰라봤다, 인쟈부터 형님으로 모시겠다던가, 아니면 부르기 쉽게 언니라고 하겠다고
해야 마땅하거늘 동란이는 대뜸 ' 니가 젊게 보여 내 또랜 줄 알았더니 언제 글키 나이를 먹고 있었노,
객지 나이는 원래 10년까지 친구니까 너, 나 돌이 해도 된다 마 " 하고 말았다.
웃기는 것은 동란이와 동갑인 원숙이는 꼬박 꼬박 나보고 형님이라 하는데 내가 동란이하고 친구처럼 지내니까
자연적으로 동란이가 내 또래 되는 줄 알고 동란이를 언니 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원숙이 생일이 동란이보다 빠른지도 모르겠다)
물론 동란이는 쉬쉬하며 지발 원숙이한테 지캉 원숙이캉 동갑이란 말을 하지 말라고 다짐을 주었다.
배짱도 좋지, 하여튼 원숙이는 아직까지도 (내가 입이 무거운 탓에 ) 그 사실을 모른다.
동란이가 안산을 떠난지 벌써 8년이나 되었나, 살던 집을 두고 이사를 갔는데 이번에 집 문제로 올라 온 김에
우리집에 하룻밤 자게 되었다. 그것도 밤중에 구미까지 간다는 걸 간신히 붙잡은 탓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란히 손 잡고 누워서 밤 깊은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동란이는 내 손이 차다며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내 손을 주물러 주었다.
동란이 아침에 눈을 뜨자말자 베란다로 나가더니 '아이구, 이것들...' 하면서 오래 못 본 혈육인양 살가워했다.
내 뜰의 식구들을 이뻐해 주는 동란이가 이뻐 보여 사징끼를 꺼냈는데
여기저기 살피느라 정신없는 동란이는 내가 사징끼를 들이대는 줄도 몰랐다.
( 나는 어디서 구미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구미에는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가 살고 있다는 말을 언급하게 되는데
그 '제일 친한 친구'로 꼽히고 있는 해겨이가 지금부터 동란이로 하여 밀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랑가?)
결혼 전에 나는 꽃사랑이 유별나신 엄마와 둘이 고향에 살면서 마당에 분재 화분을 200여점이나 늘어 놓고,
온갖 꽃을 가꾸었다. 그래서 우리집은 동네에서 '꽃 많은 집'으로 불리웠다.
당시 대구에 살았던 친구 김혜겨이랑 홍해겨이는 수시로 우리집에 와서 머물렀는데 그것들은 (여기서는 그것들 표현이 적절하다고 사료됨)
도대체 내가 가꾸는 꽃들을 살갑게 대하는 법이 없었다. 특히 분재를 보고는 나무를 못 자라게 애 먹이는 심뽀가
고약하다면서 비웃기까지 했다.
내가 무슨 일로 삐져 있으면 그때서야 내 눈치를 실피며 즈그끼리 눈짓을 주고 받은 뒤에
"둘이( 내 애명) 삐졌다, 우리 둘이 보는데서 꽃 이쁘다 그러자 " 하고선 건성으로
"마당에 꽃이 우째 그리 이쁘게 피었노. 분재가 참으로 작품인기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란이가 내밀고 있는 오른 손을 보면 그 다음 동작이 어떻게 이어질지 나는 알지.
드디어 활동개시.~ 바지런하기 짝이 없는 동란여사가 돌에 붙은 넉줄고사리 떡잎을 지나칠 리가 있나.
마치 동란이가 올 줄 알았다는 듯 긴기아니꽃이 활짝 피었다. 이렇듯 때마침 절정을 이뤄 동란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고맙다 긴기아나...꽃꽃꽃 ****
사진 찍기를 쑥스러워하는 동란이라 계속 몰카를 하다가 정식으로 폼을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니 보고 싶을 때 보그로...> 하는데야 지도 뺄 수가 없지.
나는 꽃을 보면 사람과 연관 짓는 버릇이 있는데 때마침 피어 난 으아리가 동란이를 닮은 것 같다.
저 똑 부러진 듯 고운 색감에선 동란이 칼칼한 성격이 보인다.
동란이가 베란다에서 떡잎이며 낙엽을 다 손 보고 난 다음엔 걸레를 들고 거실 구석 구석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었다.
급기야 쇼파까지 밀어내고 청소를 하고 있다. 참말로 못 말릴 잉간이다.
밥 하다가 돌아보며 "나중에 이사 갈 때 쇼파 밑에 먼지라도 놔 두고 갈라꼬 쌓아 놓는긴데 다 치웠삐믄 우야노? " 했더니
"동전이라도 떨어져 있으까봐 보는기다" 라고 대꾸한다.
낮게 엎드린 걸로 보아 저것이 기어이 동전 한 닢 발견한 모양이다.
* 구석에 먼지를 쌓아 놓고 사는 것을 들켜도 민망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미덥고, 고마운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동란이 가슴 저 밑바닥에 묻힌 한과 아픔을 어루만져 줄 줄을 모른다.
감히 엄두를 못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저 세월이 약이라는 사실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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