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유사 이래 사랑에 대하여 논한 인문주의자들, 신학자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사랑을 제대로 들어내지는 못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논한 사람은 많았으되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생에 대해 알아야할 것 보다도
사랑에 대해 알아야할 것이 훨씬 더 많다.
사랑만 알면 인생은 몰라도 된다.
사랑만 알면 인생이 무엇인지는 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제대로 들어내어 설명한 식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설명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설명이 턱없이 모자랐다는 뜻이다.
비행기가 비상하는데는 활주로를 다 달려서야 비로서 이륙한다.
활주로를 반만 달리고 멈춘다고 해서
다음에는 나머지 반만 달리면 뜨는가.
처음부터 다시 달려야한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논의가 그랬다.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다가 멈추었다.
사랑에 대하여 끝까지 완주하며 논한 논객은 역사이래로 없었다.
그래서 시대마다 사랑에 대한 논의는 늘 다시 처음으로 회귀했다.
4. 고통
사랑은 고통과 일란성 쌍둥이이다.
사랑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사랑 없는 고통은 있으되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통(痛)은 사랑니의 고통처럼, 발치(拔齒)될 운명에 있는 유치(幼齒)처럼
모든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은 운명이다.
K의 사랑통은 유난했다.
K는 초혼 때도 약혼한 여자를 빼앗다시피 해서 결혼하였고
초혼때 이미 사랑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랑통의 경력자였다.
그런 그가 다시 사랑앓이를 시작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과 결혼을 조용조용 잘도 하건만
K는 팔자 사납게 한번 사랑했다하면 동네가 시끄럽게 하는 스타일이다.
K는 환타쥐에게 끊임없이 접근했으나
그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는 뮤트라는 전대미문(?)의 연적이
그녀 사이에 태산처럼 가로막고 있음을
그는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적이 매일 만나다시피하는 그로서는 존경하는 선배인 것을
그는 꿈에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또 그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사랑의 진행상황을 매일 보고 받고 있는
그림자 연적(戀敵)이었다.
상대가 보일 때 상대와 싸울 수 있다.
상대가 누군지 알 때 상대와 경쟁할 수 있다.
K는 그의 연적이 누구며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코앞의 연적을 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환타쥐가 K를 경원할수록 K는 더 집착했고
실패가 거듭될수록 K의 고통은 더 커져갔다.
왠만한 사내라면 아마 거기서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K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견디며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사랑의 신과 처음 짝사랑을 경험하는 촌부의 대결처럼
뮤트는 그로서는 넘을 길이 없는 거대한 사랑의 신 이었다.
뮤트는 팔짱을 낀 채로 작은 난쟁이 K를 묵묵히 내려다 보고 있다.
뮤트는 그의 머리 위 높은 곳에서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K를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다.
사랑의 신은 생각한다.
사랑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의 고통은 합일에의 열망으로부터 온다.
합일이 실패할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사랑의 고통이 오는 것이다.
고통은 우선 공간적 이격,즉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에서 발생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해서 오는 고통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서적 이격이다.
사랑하는 대상과 정서적인 교감을 갖지 못하는 데서 고통은 온다.
뮤트와 K는 늘 가는 광안리 수변공원의 어느 빌딩 맨 윗층
바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참 월드컵 예선으로 티브이가 시끄러웠다.
부쩍 말수가 적어진 K였다.
늘 붉으스레 혈색좋던 얼굴이 핼쓱해 져 있었다.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K가 불쑥 물어왔다.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결혼하면예..그게 평생 가겠씀미끄? 행님 우에 생각하능교?”
사랑의 신이 대답했다.
"환타쥐가 자네의 아이를 낳기에 적당한 상대라고 생각하는가?
K가 대답했다.
“아니 사랑이란 감정이 영원하겠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무신 그런 뚱딴지 말씀을..”
사랑의 신은 약간 불쾌한 듯 대답하지 않고 티브이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K가 다시말했다.
“아니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그런 애 낳는 동기에다가 갖다 부치시다니 행님도 참 저속하네예..ㅎㅎㅎ"
그러자 사랑의 신이 미동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환타쥐가 자네 아이를 낳고 않 낳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네의 애를 가지는데 적당하냐 아니냐를 물었네...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K가 말했다.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지만 젊어서 결혼했으면 아이 나아도 되지예 머..”
사랑의 신이 말했다.
“자네는 최소한 환타쥐를 사랑할 자격은 있는 셈이네...”
이번에는 K가 침묵했다.
사랑의 신이 말했다.
"그런 감정이들지 않는 한 사랑이니 무에니 하는 말은 입에 담지도 말게나..
이 말은 사랑을 검증하려는 말이 아닐세..단지 인간의 사랑, 기본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뿐...."
그때 K가 반짝 얼굴을 빛내며 말했다.
“ 환타쥐가 내에 대해 마음에 안 들어한다는 것은
내 아이를 가지기 싫다는 의미일까요?
사랑의 신은 잠깐 k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는 대신
월드컵 중계가 시끄러운 티브이 화면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뮤트가 K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도 티브이를 뚫어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가 너무 번들거렸다.
눈동자가 왜 저렇게 번들거리는가.
왜 저렇게 번들거리지?
그건 눈물이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강한 표면장력을 유지한 채 한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뮤트는 얼른 티브이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다시 그를 본 순간.
K의 코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하고 땅에 떨어졌다.
K가 깜짝놀라며 뮤트를 쳐다보았다.
뮤트는 못본채하고 얼렁 그의 시선을 피해 티브이에 눈을 가져간다.
그러나 몇초 후 뮤트는 벌떡 일어선다.
“그만 집에 가지”
K도 반사적을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라입시더”
빌등 밖으로 걸어나오자 마침 빈 택시 한대가 왔다.
“나 먼저 가네!!
K가 황급히 소리쳤다. “행님 안녕히 가입시데이!!”
그러나 그 목소리는 메여있었다. 울먹이고 있었다.
Gefrorne Tropfen fallen
Von meinen Wangen ab:
Ob es mir denn entgangen,
Dass ich geweinet hab'?
얼어 붙은 눈물
내 빰위로 흐르네.
아니!! 나도 모르게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인가.
슈베르트-겨울나그네 3장 “얼어붙은 눈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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