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1 편 ㅡ 길떠나기 출발 ㅡ 남도지방으로

뜰에봄 2007. 9. 11. 18:24

 

2002  년 10월 25일,금요일 아침,9시 30분경에 기애가 차를 가지고 안산까지 날 태우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느긋하게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앞으로 사흘동안 집을 비우는 동안 남편과 아들의 끼니해결을 돕는 한 방편으로 쇠고깃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고 햇반도 여러개 사다 두었다.

 

 예정된 시간에 기애,영애,효정이가 내 사는 아파트로 왔다.

'해방된 민족!' 이 된 기분으로 차에 올라 길 떠나기ㅡ

 곧장 매송 인터체인지를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길 옆에 펼쳐진 가을 풍경....

~ 벼가 베여져 나간 빈 논바닥,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자락,....

무엇하나 유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니는 바깥으로 기나오기만 하면 마치 감옥에서 십년쯤 지내느라 바깥세상 구경 못한 것처럼 호들갑이다' 라고 전에 내 친구가 핀잔 준 적도 있지만 나는 다시 그 태세로 몰입하고 만다.

~'야,야,야, 야, 저거 좀 봐라,저기 좀봐라, 엄마야 세상에...

어! 어! 어!...저거 저거...'

~ 바깥 풍경에 홀리며 가다 가다가 한참만에 부안 이정표가 나타났을 땐 예정에도 없던 변산 반도,내소사 관광까지 욕심내고 만다.

'아,변산반도는 내가 20년 전에 가 봤는데...그때 내소사는 가려다가 못 갔는데....

격포에서 내소사 이르는 길이 이쁘다며?

지난 봄 남편하고  나서 왔는데 선운사만 들리고 못 와 버렸어야...'

ㅡ구구한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던 기애와 영애가 '그럼 들렀다가 가지뭐~'흔쾌히 변산반도행으러 접어 들어 주었다. (에그~내 기쁨조로 분에 넘치는 이쁘디 이쁜 아우들...)

 

 이제껏 보아 온 고속도로변의 산세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산이며 잔잔한 들녘 풍경을 스치며 격포에 다다랐다.

 채석강이 있는 곳으로 들어 가려고 보니 입장료가 사람과 주차비를 합쳐 거금 일만원 에 이르렀다.

다들 한번은 가 본 곳이고,채석강은 물이 차 있으면 가지도 못 할 곳,아,그리고 바닷가에 들어가는 데도 입장료를 받아 챙기는 게 너무 약오르는 심사여서 채석강이 끝나는 지점 바닷가로나 가보자 하고 되돌아 나왔다.

 하여 조금 더 차를 몰아 나가니 예전에 내가 변산반도에 왔을 때 채석강을 따라 끝까지  돌아나오니 나타나던 곳으로 기억이 아슴프레 피어 올랐다.

아! 변산반도,채석강에 서린 기억이 어찌 이 바닷가 풍광 뿐이랴.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옛생각에 실실 혼자 웃음도 머금으며 방파제를 서성거리는 나를 보며 영애와 기애 효정이는 지들끼리 쑥덕공론을 펼치더니 종내에는 속 시원히 털어내 놓아 보라며 날 추궁하려 든다.

~ 아,뜰에봄 언니야인 내가 시방 누군가를 되게 좋아하고(사랑이 맞남?) 있는데  말은 못하겠고,생각하는 거 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그 마음이 표정으로 막 나타난다나 어쩐대나,

 

 '흐미~ 조것들이 사람 맴을 겁나게 잘 짚어부러야,눈치가 9 단은 되나벼' 하구서리 내심 찔리는  사연이 있더라도 그리 쉽게 털어 놓으면 되남?!

 근데 한참 잘못 짚었어야.

내가 실 실 웃음 지으며 혼자  몰입하고 있었던 생각은 시방 좋아서 맴이 막 끌려서 우짤 줄 모르겠는 그 누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십몇년 전의 변산반도 여행을 했을 당시며, 그 때 만났던 이들을 떠 올렸던 것이었던 겄이다.

 

                         

 * 변산반도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내가 변산반도에 왔던 때가  20년이 넘게 지났네.

그 한 여름날,광복절이 낀 연휴 때던가,

당시 내 고향 동네  보건소에 근무하던 친구(정디라고 불렀음)와 나는 처음엔 홍도를 목표로 여행에 나섰다가  목포까지 갔더랬는데 갑자기 풍랑이 이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 목포에서 순천 남원을 거쳐 전주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나가보니 '부안'이 라고 써진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붕붕거리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시 박동현씨가 쓴  '구름에 달가듯이'란 제목의 여행책자를 거의 달달 외고 있다시피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교통도 좋지 않을 때 인지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웬만큼 버스 시간까지 외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름 난 곳 가까이 있는 지명만 나와도 용수철처럼 '아! 거기' 금방 틔여 나왔으니 '부안'이란 버스표지를 보며 '아! 변산반도! ' 라고 외쳤음은 물론이다.

 긍정의 눈빛을 주고 받은 정디와 나는 곧장 차에 올라 탔다.

 저녁 9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버스에는 우리 또래는 안 되는 청년 3명만이 타고 있었다.

장마철인지라 차창밖으로는 비가 마구 쏟아지고...

 우리가 부안을 간다고는 하지만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고,거기가서 숙소도 정해야 하는데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은근히 걱정이 되는지라 청년들에게 말을 걸어 이것 저것 물었더니 자기네 들은 변산반도 해수욕장가에 있는 휴양소에 숙소가 정해져 있다고 하며 딱히 우리가 정해 둔 데도 없는 터이니 자기네를 따라오면 숙소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을것도 같다고 했다.

 전북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 한 친구가 입대를 하게 되어 함께 여행이라도 하겠다고 나선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숙소로 정한 곳은 체신부에서 지은 직원 휴양소인데 그 학생중 한명이 체신가족에 속하는지라 가서 묵을 수 있게된 것이라 햇다.

 '오잉 ?! ~ 이런 횡재가 있나?' 우리는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대학생들을 따라 변산 해수욕장 체신휴양소로 가게 되었다.

휴가철도 거의 끝나는 때이기도 했지만 며칠째 장마처럼 비가 내리는 중인지라 그 집에는 관리인 한 명외엔 아무도 없었다.

 관리인도 젊은이였던지라 그 저녁 우리는 다 같이 모여 간단히 술도 한 잔하고 고스톱을 치며 놀았다.

그리고 관리인이 우리에게 정해준 방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날엔 역시 그 학생들이랑 변산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맨발로 걸어 보기도 하고 채석강에서 노닐며 한 나절을 보냈다.

채석강 중간지점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진도 찍고,놀고  있다보니 물이 차 올라 나오느라 아주 혼이 난 기억이 난다.

물은 자꾸 차 오르고,어쩔 수 없이 아슬아슬하게 바위 기슭을 타고 나와야 했으니...

그 바위를 타고 간신히 빠져 나와 '휴우~'안도의 숨을 쉬던 곳이 지금 내가 와 있는 이 지점이지 싶었다,

 헌데 그 지점이야 맞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하랴, 그거야  대수로울 건 없고,난 그저 그 지나간 세월이 한없이 맑고 아름답게 떠 올리려질 따름이었다.

 요즘 세상같았으면 어디 꿈이나  꿀 수 잇으랴,

 과년한 처녀들이 펄펄 기운 찬 청년들을 따라 비오는 밤 한적한 해변 휴양소에 아무 겁도 없이,눈꼽만치의 경계도 의심도 없이 묵으러 간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가.

그렇지만 그 땐 그럴 수 있음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에 이르러 소위 성폭행이니 하는 수치스런 말은 들어 보지도 못 했을 뿐더러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던 시절이었지.

그랬는데,그런 순정한 시절이 지난 세월 속에 있었는데, 온갖 지저분한 사건들이 만연한 요즘의 세태를 떠 올려 보면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변모케 하였는지 그저 화가 나고 암담해지는 심경이 되고 만다.

 

아 글쎄,영애,기애,효정 그네들의 추측과는 달리 난 그 20 몇년 전,변산반도 이 그지점에 내 머물렀던 그 맑았던 시간들을 반추해보면서 그 때 대학생이었던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이들도 그날 이후 다시 이 자리를 찾아 오늘의 나처럼 그 시절을 이렇듯 떠 올리기도 했으려나? 생각에 잠겼던 것이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