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10월 25일,금요일 아침,9시 30분경에 기애가 차를 가지고 안산까지 날 태우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느긋하게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앞으로 사흘동안 집을 비우는 동안 남편과 아들의 끼니해결을 돕는 한 방편으로 쇠고깃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고 햇반도 여러개 사다 두었다.
예정된 시간에 기애,영애,효정이가 내 사는 아파트로 왔다.
'해방된 민족!' 이 된 기분으로 차에 올라 길 떠나기ㅡ
곧장 매송 인터체인지를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길 옆에 펼쳐진 가을 풍경....
~ 벼가 베여져 나간 빈 논바닥,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자락,....
무엇하나 유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니는 바깥으로 기나오기만 하면 마치 감옥에서 십년쯤 지내느라 바깥세상 구경 못한 것처럼 호들갑이다' 라고 전에 내 친구가 핀잔 준 적도 있지만 나는 다시 그 태세로 몰입하고 만다.
~'야,야,야, 야, 저거 좀 봐라,저기 좀봐라, 엄마야 세상에...
어! 어! 어!...저거 저거...'
~ 바깥 풍경에 홀리며 가다 가다가 한참만에 부안 이정표가 나타났을 땐 예정에도 없던 변산 반도,내소사 관광까지 욕심내고 만다.
'아,변산반도는 내가 20년 전에 가 봤는데...그때 내소사는 가려다가 못 갔는데....
격포에서 내소사 이르는 길이 이쁘다며?
지난 봄 남편하고 나서 왔는데 선운사만 들리고 못 와 버렸어야...'
ㅡ구구한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던 기애와 영애가 '그럼 들렀다가 가지뭐~'흔쾌히 변산반도행으러 접어 들어 주었다. (에그~내 기쁨조로 분에 넘치는 이쁘디 이쁜 아우들...)
이제껏 보아 온 고속도로변의 산세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산이며 잔잔한 들녘 풍경을 스치며 격포에 다다랐다.
채석강이 있는 곳으로 들어 가려고 보니 입장료가 사람과 주차비를 합쳐 거금 일만원 에 이르렀다.
다들 한번은 가 본 곳이고,채석강은 물이 차 있으면 가지도 못 할 곳,아,그리고 바닷가에 들어가는 데도 입장료를 받아 챙기는 게 너무 약오르는 심사여서 채석강이 끝나는 지점 바닷가로나 가보자 하고 되돌아 나왔다.
하여 조금 더 차를 몰아 나가니 예전에 내가 변산반도에 왔을 때 채석강을 따라 끝까지 돌아나오니 나타나던 곳으로 기억이 아슴프레 피어 올랐다.
아! 변산반도,채석강에 서린 기억이 어찌 이 바닷가 풍광 뿐이랴.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옛생각에 실실 혼자 웃음도 머금으며 방파제를 서성거리는 나를 보며 영애와 기애 효정이는 지들끼리 쑥덕공론을 펼치더니 종내에는 속 시원히 털어내 놓아 보라며 날 추궁하려 든다.
~ 아,뜰에봄 언니야인 내가 시방 누군가를 되게 좋아하고(사랑이 맞남?) 있는데 말은 못하겠고,생각하는 거 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그 마음이 표정으로 막 나타난다나 어쩐대나,
'흐미~ 조것들이 사람 맴을 겁나게 잘 짚어부러야,눈치가 9 단은 되나벼' 하구서리 내심 찔리는 사연이 있더라도 그리 쉽게 털어 놓으면 되남?!
근데 한참 잘못 짚었어야.
내가 실 실 웃음 지으며 혼자 몰입하고 있었던 생각은 시방 좋아서 맴이 막 끌려서 우짤 줄 모르겠는 그 누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십몇년 전의 변산반도 여행을 했을 당시며, 그 때 만났던 이들을 떠 올렸던 것이었던 겄이다.
* 변산반도
| |
'역마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떠났던 이야기 ㅡ (0) | 2007.10.14 |
---|---|
봄바람 쐬고 왔어요. (0) | 2007.10.14 |
2ㅡ 내소사, 그리고 아, 해남 (0) | 2007.09.11 |
3 자고 나서 관두포로.. (0) | 2007.09.11 |
4 번 ㅡ 걷는데 까지 걸어보자 ~ 해남에서 마지막~ 귀로 (0) | 2007.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