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메리크리스마스!!

뜰에봄 2007. 12. 25. 11:23

' 기역 니은 찾아서 누르는 동안에 전화하면 되지...목소리도 들어 먹고....' 하면서 여태까지
한번도 문자를 보내온 적이 없는 친구로부터 성탄추카 메세지와 더불어
" 한번만 그 얼어붙던 고향 한밤의  성탄전야로 가보고 싶다" 는 문자가 날아 왔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정취가 다 사라져 버린 듯한 분위기 속에서 나도 지난 세월 속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 죽겠는데 친구가  그리움을 더욱 부채질한다.

팔공산 밑에 자리한 산골마을 내 고향 '한밤'은  겨울이면 유별나게 춥고, 응달마다엔 눈이 잔뜩 쌓여 있곤 했는데
그래도 그 고향의 겨울이 유난히 따스하게 기억되는 건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탓도 크지않나 싶다.
  내가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교회를 다니건 안 다니건 간에 온 동네 축제였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주일학교 아이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연극을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십리도 더 떨어진 마을에서부터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 교회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어떤 해는 교회 마당에 평상을 놓고 소나무가지 같은 것으로 얽어 에워싼 무대를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한겨울밤에 그 구경을 하겠다고 밖에서 추위를 어찌 견뎠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당시엔 꽤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지라  크리스마스 행사에 적극 참여했는데 어느 해는 출연한 가짓 수가 열 세 가지나
되기도 했다.  하얀 종이를  잘게 잘라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들고 그걸 한 줌씩  ' 눈 내리는 겨울밤 차고도 찬 밤'
노래에 맞춰 흩뿌리며 무용하던 기억도 난다.
" 예수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 보고 싶으나 키가 작도다. 생각다 못한 사케오는 엉금 엉금 기어서 뽕나무위로 ...어쩌고 하는
노래는  경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가사가 끝까지 생각도 안 나네.
뭐니  해도 주일학교 선생님까지 출연하는 연극이 시작 될 때의 분위기가 가장 고조되었던 듯하다.
동화속에서처럼 허연 홑이블을 둘러 쓰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 동방박사들이 성전 뒷 편 까만 휘장에다 만들어 붙여 놓은
금빛 별을 가르킬 때에는 어린 가슴이 마구 설레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각자 집을 향하여 뿔뿔이 흩어졌는데 남자애들은 미리 준비한 관솔에 불을
붙여 빙빙돌리면서 뛰어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맞이한 크리스마스 때는 매년이다시피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보냈다.
고향집 마당엔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에 딱 좋은 향나무가 있어 12월이 접어들면 나는 그 나무에 전구를 달고
반짝이 줄을 두르고, 방울을 달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는데 깜깜한 밤에 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가 꺼졌다 켜졌다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웃집 개들은 그 깜박거리는 게 이상했던지 우리 집을 바라보며 컹컹 짖어 대었다.
  친구들이랑 밤이 으쓱토록 얘기하고 놀다가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결에서 인 듯 고요한 밤 거룩한 밤...기쁘다 구주 오셨네...같은 노래가 들리는가 싶으면 이어서
  큰 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리고 노래가 그칠 때면 엄마께서 문을 여시고서 미리 사 놓은
먹을 것을 건네주시는 기척이 들렸었다.
우리 집을 거쳐 다른 집으로 건네 간 노래 소리는 점점 아련히 들리고....이불을 끌어당겨 꼭꼭 여며 덮으며 다시
달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던 그 평안함이라니....
   어느 해는 눈까지 내려서 너무도 멋진 ' 화이트 크리스마스!! '라  환호를 지르기도 했고.또 어느 해는 하늘이 마알갛기만 한
이른 아침에 먼저 눈을 뜬 내가 대설이 내려 온 천지가 눈으로 뒤덮혀 있다는 거짓말로 친구들을 깨운 적도 있는데
친구들은 일어나기가 싫어서 밍그적거리다가도  설경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참지못해  눈을 부비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지금까지도 친구들은  그 거짓말을 잊지않고 입에 올리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나를 보고 눈을  흘겨댄다.
아, 정말...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깡깡 얼어 붙던 추위도 녹이던 그 따스한 시절...
그토록 아름답고 포근한 기억을 가진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지금은 크리스마스카드 조차 주고 받지 않고 , 대신에 핸드폰 문자통만 번잡해지는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참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오늘은 아기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성탄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성탄의 기쁨을 누릴 일이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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