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연가”는 외로운 연가와는 달리 처음부터 재미있고 로맨틱한 연가로서
구상되지 않았다.
본 연가는 사랑의 완성이나 로맨스 또는 불륜의 최종적 도달점이 어떤 모습인가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흔 하디 흔한 연애사건이 빌미가 되어 일어난 두 사람의 인생의 변화,
또는 사랑의 파급효과를 제시하는 것이 본 연가의 주제였다.
환타쥐라는 한 여성이 뮤트의 인생에 뛰어들어서 뮤트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뮤트는 대충 세 가지 변화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그 첫 번째 변화는 뮤트가 갑자기 사이버 평론가가 되어 사이버 공간의 지식인으로
행세하기 시작한 것.
이 변화가 모두 그녀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며 그러한 의도는
“일본은 없다”, “베르베르의 나무”, “연금술사” 등을 통해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의 변화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스토리를 미리 알고 나서 영화를 보면 영화가 재미없어진다.
그런 이유로 필자가 의도하는 두 가지 변화를 여기서 미리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뮤트가 평론에 이어 추가적으로 전달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고려할 때
이 “머나먼 연가”는 등장 캐럭터의 성격 규정과 그것을 위한 상황설정에서
크게 실패하고 있다.
현재 28편까지 진행된 연가의 내용 중에서 뮤트와 환타쥐라는 두 인물의
성격과 개성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나야 되는데 본 연가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상정하는 뮤트라는 인물의 성격은 “지식인이지만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인물이며 세속적 캐럭터“로서 설정되어야한다.
그리고 환타쥐란 인물은 비록 뮤트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에 이끌려 연애감정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인의 순결함과 선함을 잘 갖추어진”
인물로서 상정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28편이 흐른 지금 이러한 두 인물의 모습이 긴 연재 중에 잘 드러나고 있는가.
독자들도 모두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을까.
19편의 동상이몽 편쯤에서 뮤트의 세속화된 모습이 너무 간단하게 처리된 것이
좀 문제였으며 구성상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
이 부분에서 바로 “연금술사”평론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캐럭터의 인물 설정에
대해 좀 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가령 뮤트가 그녀와의 관계의 최종적 목적을 섹스나 스킨십에 두었다고 선언적
으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다음의 글과 같이 좀 더 극명히 뮤트라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세속적이고 음란하게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의 글은 19편 동상이몽에서 연결되어야 할 내용인데 빼먹은 부분으로19-1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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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섹스나 스킨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하겠다는
뮤트의 황당하고 거만한 태도는 계속 견지 되었다.
그러나 뮤트의 이러한 거만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뮤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뮤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감정이란 것은 여고생이 담임선생에게
가지는 풋사랑과 닮은 데가 있었다.
그리고 뮤트가 평론에서 펼치는 무한 지식의 전시효과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파피러브(풋사랑)”의 약점을 이용해 뮤트는 평론에 대한
토론의 와중에서도 틈틈이 편지와 대화 중에 계속 성추행 모드를 끊임없이
끼워 넣고 있었다.
그녀는 뮤트의 세속적 타락은 그의 건강에 대한 절망 때문에 비롯된 것인 만큼
비난은 가혹한 것이며 오히려 위로받아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음란한 편지나 대화조차도 낙향한 지식인의 자기 파괴적 행위로서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윤리적 인간으로 회복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뮤트의 끊임없는 음란한 수작에 그녀는 곤혹스러워 했으며 혼란에 빠졌다.
뮤트는 그녀가 뮤트의 음란한 수작과 주문에 곤혹스러워 할 때마다
뮤트의 행위가 그녀가 믿고 있는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고 있기 때문에 겪는
갈등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고민은 교리와의 갈등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상 윤리와의 갈등이었으며 단순한 수치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챤이라면 음란한 행위는 교리에 위배되며 이를 요구하는 상대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문제를 기독교의 교리와
연관시키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늘 뮤트를 의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 지옥가요!!”
“저같은 교인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이렇게 대응할 줄 알았는데
"저는 부끄러워서 그런 짓 못해요.“라든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가 있나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즉 그녀는 뮤트의 음란한 주문을 기독교 교리의 정합성 문제로서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사람과 똑 같이 개인적 수치심이나 세상의 이목, 또는 세상 윤리관의 잣대,
로서 이 문제를 판단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도 상식적으로 아는 기독교의 교리를 그녀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인가.
매일 새벽기도 나간다고 하면서..
혹시 그녀는 요즘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사이비 기독교 교인은 아닌지?..
기독교인으로서 그녀의 애매한 태도는 뒷날 뮤트로 하여금 훗날 엄청난 신학적 고민 속에
빠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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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19편의 보충내용이다.
뮤트의 음란한 주문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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