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의 메트릭스(행렬)
서양문명의 비극은 분류에 있다. 분류했지만 통합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최초의 통합체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것이 서양문명이다. 그들은 출발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사랑의 분류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의 분류만 했지 이 사랑이 고정적인가 유동적인가, 가역적인가 불가역적인가, 상호 호환적인가, 불치환적인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즉 어떤 조건일 때 분류가 가능할 만큼의 사랑의 색깔이 나타나는 가를 알지 못했다.
뮤트는 K가 겪는 사랑의 과정을 지켜보며 단계별로 나타나는 사랑의 동기를 주목, 환상, 합일, 고통, 죽음, 분노라는 6가지로 분류했다. 대단히 엉성하고 거친 분류로 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수학시간에는 메트릭스의 개념이 나온다. 소위 행렬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 사물의 구조를 수학적 행과 열로서 파악하고 사각의 박스 안에 행렬을 짜서 숫자를 집어넣어 합리적인 연산법을 창출해 내는 수학적 개념이다.
뮤트는 사랑의 정황에 대해 K의 경험을 근거로 주목, 환상, 합일, 고통, 죽음, 분노라는 6단계로 일응 정리하였다. 이제 우리는 K의 경험과 인본주의자들의 사랑의 종류를 행과 열로 만들어 사랑의 매트릭스를 작성할 수 있다.
표 사랑의 행렬구조(매트릭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에로스 | 필리아 | 스토르게 | 아가페 | 루두스 | 마니아 | 프로그마 | 크러쉬 | 포르노 | 호모 | 플라토닉 | 아가페테 |
주목 | o | △ | × | × | △ | o | △ | o | △ | o | o | × |
환상 | o | △ | × | × | △ | o | △ | o | △ | o | o | × |
합일 | o | × | × | × | △ | o | △ | o | △ | o | × | × |
고통 | o | △ | △ | × | △ | o | △ | o | △ | o | o | × |
죽음 | o | △ | △ | × | × | o | △ | o | △ | o | o | × |
분노 | o | △ | △ | × | × | o | △ | △ | △ | o | o | × |
<!--[if !supportEmptyParas]--> <!--[endif]--> | 12/12 | 5/12 | 3/12 | 0/12 | 4/12 | 12/12 | 6/12 | 11/12 | 6/12 | 12/12 | 10/12 | 0/12 |
<!--[if !supportEmptyParas]--> <!--[endif]-->
1)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사랑의 정황과 여러 사랑과의 관계
이 매트릭스는 뮤트가 자의적으로 가중치를 주어 만들어본 사랑의 매트릭스이다. 가중치는 주관적이므로 사람마다 다르게 매길 수 있다. 어쨌든 뮤트의 기준에 의하면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이 사랑의 양극단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극단의 중앙에는 프라그마(실용적)사랑과 포르노(동물적)사랑이 위치한다. 에로스 사랑에 접근하는 순서는 호모(동성애)와 크러쉬(짝사랑),마니아(맹목적) 사랑, 플라토닉(남성간의 정신적)사랑 순이었다. 아가페 사랑에 접근하는 순위는 아가페테(적, 원수)사랑과 스토르게(가족)사랑, 루두스(우연적)사랑, 필리아(친구)사랑의 순위였다.
약간 의외의 결과이지만 이성간의 에로스 사랑과 동성간의 호모섹슈얼 사랑, 그리고 마니아(맹목적)사랑은 완전히 같은 사랑의 정황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신적인 아가페 사랑과 원수를 사랑하는 아가페테 사랑도 정황 면에서 일치하는 것으로 보였다.
원수에 대한 사랑과 친구와 가족사랑 우연한 사랑은 신적 사랑인 아가페 사랑에 접근한다. 그리고 동성에 대한 사랑과 짝사랑, 맹목적 사랑, 남성간의 사랑은 이성과의 사랑인 에로스 사랑에 접근한다.
재미있는 것은 원수에 대한 사랑(아가페테)과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아가페)은 사랑의 정황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동성애(호모)와 이성애(에로스), 맹목적 사랑(마니아)도 사랑의 정황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결과라면 아가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응 될 뿐 아니라 맹목적 사랑인 마니아에 대응 할 수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함의를 내포하는 것이다.
2)사랑의 유동성, 가역성, 치환성
이 사랑의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사랑의 가역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랑의 유동성과 상호호환성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에로스의 사랑에서 합일에의 열망 즉 결혼의 열망이 충족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합일이 ×표가 된 사랑이 어느 것인가를 찾아보면 필리아, 스토르게, 아가페, 플라토닉, 아가페테 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남녀가 결혼했으므로 신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나 동성애를 전제로 하는 플라토닉이나 적을 사랑하는 아가페테 사랑은 남녀라는 이성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배제된다. 그러면 남는 것은 필리아와 스토르게만 남는다. 즉 남녀가 합일에의 욕망으로 결혼에 성공하면 그때부터는 친구나 가족 사랑과 유사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같이 살면서 주목할 필요가 없고 환상도 다 깨어지게 되면 주목, 환상, 합일에 ×표가 쳐진 가족 사랑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랑을 하게 됨을 알 수가 있다. 즉 에로스의 사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사랑처럼 되었다가 가족 사랑으로 옮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결과는 에로스 사랑은 유동적이며 가역적이며 치환적으로서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사랑으로 옮아갈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른 사랑도 다 이런 방법으로 모두가 유동성, 가역성, 치환성을 가지고 조건과 정황이 바뀌면 얼마던지 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옮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독자들도 시험삼아 사랑의 여러 정황을 변동시킴으로서 사랑 자체가 다른 사랑으로 이동함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에 대해 메트릭스의 지수 매김부터 설명을 하려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뮤트가 이 매트릭스로 보여주려는 것은 지금 뮤트가 행하는 이러한 시도가 바로 오늘날의 모든 사회과학에서 준행하고 있는 일반적 학문의 방법론임을 예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뮤트가 제시하는 이 매트릭스 식 분석법은 오늘날 모든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논문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차용하는 방법이다. 이 메트릭스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이런 식으로 분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3)사랑의 논의에서 매트리스 분석법의 함정
누가 석사논문이네 박사논문이네 하고 들고 다니는 까만 책자가 있거든 잠시 얻어다 펼쳐보라. 지금 제시한 저런 매트릭스가 논문의 절반은 채우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저런 식인 것이다. 뮤트의 박사논문도 당연히 매트릭스로 꽉 차 있다.
매트릭스 분석법의 최대 약점은 무엇인가. 그 약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자면 끝이 없지만 우선 여기서 제시된 사랑의 매트릭스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더라도 이미 그 문제점은 약여해 진다. 사랑의 매트릭스에서 주목, 환상, 합일, 고통, 죽음, 분노에 대응하는 각 파편적 사랑의 지수 매김에서 에로스는 모두 ○으로 아가페는 모두 ×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아가페도 모두 ○으로 처리되어야한다. 아가페 사랑이 에로스 사랑과 정황이 일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은 에로스 사랑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가페 사랑이 모든 사랑의 정황에서 ×으로 처리된 것은 신의 사랑은 포괄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차별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인간의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는 오해로 인하여 ×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고 이의를 달지 않기 때문에 오류의 매트릭스가 작성되는 것이다.
4)아가페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기독교의 해명
아가페 사랑, 즉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설명할 때 왜 기독교를 거론하는 가. 그것은 인본주의자들이 사랑의 한 파생적 조각으로서 아가페 사랑을 설정할 때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이름 지었기 때문이다. 아가페 사랑은 막연하게 신이 인간에게 행하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사랑을 인본주의자들이 아가페 사랑이라 불렀다. 따라서 아가페 사랑은 다른 말로 기독교 사랑이며 이 아가페 사랑에 오해가 있다면 무슨 오해인지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에게서 그 답을 들을 게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에게서 그 답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인본주의자들은 신은 사람과는 달라서 개인 한사람을 주목하여 사랑할 이유가 없으며 피조물인 사람을 연모하여 환상을 가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이 사람과 결혼하는 따위는 어불성설이며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고통 받거나 죽거나 하지 않으며 한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일일이 상처받고 화를 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합리적인 결론에 따라 매트릭스의 모든 정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로 처리한다. 즉 하나님을 모든 정황을 초월하는 위대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하나님은 위대하지만 모든 정황을 초월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사랑과 똑 같이 모든 정황에 연루되고 간섭한다고 성경은 대답한다.
(1)아가페 사랑과 주목의 문제
하나님은 인간 개개인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아니다. 당연히 개개인에게 하나님은 주목한다. 이건 신이 개인에게 관심이 있어서 일일이 주목하기도 하지만 단수의 하나님은 아무리 개인이 복수라도 주목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주목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거나 일손이 바빠 주목에 실패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한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되어야한다. 인간은 “머리털마저도 다 세신 바”(마10:30)되었고 창세전부터 주목당한 것(엡1:4)으로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개개인에 대해 하나님이 일일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표는 ○표로 처리되어야한다.
(2)아가페 사랑과 환상과 편견의 문제
하나님은 인간에게 편견이나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옳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 개인에게 환상을 가지고 기대해서 실패하거나 잘못 판단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환상을 가지고 기대하며 그 환상과 편견이 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항상 하나님의 기대와 환상을 늘 배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으므로 마음대로 행동하는 데 이 행동이 항상 하나님이 기대하는 기대치의 방향과 반대로 하거나 신의 의도(환상)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시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 때문에 늘 깨어진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올바르게 기대하고 있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이러한 기대를 늘 환상과 변견으로 만든다. 늘 실패시킨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환상과 편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에 대한 실패라는 명제로 치환되어 이 문제는 ×이 아니라 ○으로 처리되어야한다.
(3)아가페 사랑과 합일에의 열망의 문제
합일에의 열망은 인간에게는 최종적으로 결혼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므로 사람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옳은 것인가. 이 문제를 알고 싶으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크리스천이 주위에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 신과 인간의 결혼에 대한 묘사가 성경에 있는가고 물었을 때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일 것이다. 성경은 신구약 통 털어 하나님은 신랑, 성도는 신부라는 혼인 관계로 묘사되어있다.
(4)아가페 사랑과 고통의 문제
하나님은 인간과의 사랑을 나누면서 고통은 느끼지 않는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므로 고통은 애시 당초 느끼지 않는 존재인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면서 “인간을 지으심을 한탄(창6:6)하시기도 할 뿐 아니라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근심(삿 10:16)하시는 존재이시다. 그 고통은 사실 인간이 연인과의 사랑에서 느끼는 고통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루 밤 잠 못 드는 정도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은 우주적 고통으로 전 우주에 미치는 광대한 고통이 된다. 이 고통은 인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얻는 고통이 그 정도라는 말이다.
(5)아가페 사랑과 죽음의 개입 문제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는 문제에서 죽음이 개입하는 가. 당연히 개입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에서 그 사랑이 실패할 경우 하나님은 운명적으로 죽음에 이를 수 없지만 인간은 곧장 죽음, 즉 사망에 이른다. 사랑에 성공할 경우 인간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기독교에서는 구원론이라 부르고 있다.
(6)아가페 사랑과 분노의 문제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을 주면서 동시에 분노하는가. 성경에서 구약이란 말의 뜻은 옛 약속이며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란 뜻이다. 약속이 왜 자꾸 반복되는가. 이는 약속이 깨어졌기 때문에 자꾸 반복되는 것이다. 처음 약속이 지켜졌으면 다른 약속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었다. 그리고 그 약속이 깨어졌을 때 신의 반응은 분노였다. 구약은 약속이 깨어진 데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단지 그 분노가 인간과 다른 점은 인간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으로서 분노를 통해 사랑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4) 아가페 개념에 대한 오류에 의해 파생되는 전체 인류의 인식론적 오류
(1)아가페 사랑에 대한 오해에 비추어 본 모든 진리 왜곡의 원천
이렇게 해서 아가페 사랑에서 정황에 대해 처리된 모든 ×표는 ○표로 바꾸어져야한다. 이렇게 되면 매트릭스 전체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혀 다른 결론이 유도되게 된다. 이 하나님의 문제에서 이 세상의 모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모두 ×표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모든 매트릭스적 사고가 도무지 맞질 않고 설명이 안 될 뿐 아니라 설명을 해보아도 모두 억지 설명이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이 꽃이라는 경제학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학, 정치학, 법학, 문학, 심리학.....자연과학의 수학과 물리, 화학, 생물학, 의학, 공학, 천문학....모든 분야에서 모든 학자란 자들, 연구자란 자들, 변호사, 의사, 회계사..모든 전문가란 자들의 견해가 모두 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전부 엉터리인 것이다.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변죽이나 울리다가 마는 것이다.
(2) 행렬(매트릭스)분석사고의 기원
매트릭스 분석의 사고(思考)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니므롯이 행하는 벽돌(brix)의 사고에 연결되어 있다. 둘 다 블록으로서 사각형이며 박스 형태를 지닌다. 떼었다 붙였다하는 스키마(schima)로서 조작성과 확장성을 지니며 수치화시켜서 데이터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건물 한 채에 벽돌 몇 장이라는 게 단번에 계산되게 한다. 그런데 벽돌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다면 어떤 결과가 되는가. 오늘날의 산업사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는 니므롯이 꿈꾼 벽돌의 대량 생산에서 출발했다. 현대 학문의 대표적인 분석법인 메트릭스 분석법도 니므롯의 벽돌 스키마(Brix shima)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에 가장 영웅중의 영웅은 시저도 알렉산더도 징기스칸도 아닌 창세기의 니므롯이다. 그는 하나님을 대항했다.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을 대항했으니 영웅중의 영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자가 그리스 신화를 만들었다. 그 자 때문에 철학이 생기고 과학이 생기고 학문이 생기고 천주교가 생겼다. 그자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기름삼아 문명의 불을 질렀다. 그리고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이 오늘날 하나님에게 대항하고 있다.
니므롯이 무슨 짓을 했는가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는 인터넷을 보던지 다른 책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의 아내가 누구이며 그의 아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누구로 등장하는가를 관심 있게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바람난 가족이 천주교에서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가도 눈여겨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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