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우리말 산책 (72) ― 한글의 개성

뜰에봄 2009. 10. 31. 08:41

(속도위반을 합니다. 우리말 산책을 이렇게 자주 올리면 꼴치아프실 텐데 지난번 얘기와
묶어 읽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렇게 무리를 하였습니다.)

‘한글’은 뭐랄까 워낙 선전이 잘 되어 있어 우리 국민이라면 그 우수성을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꾀꼬리 소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바로 한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신들은 ‘한글날’까지 만들어 지키면서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뽐내는데 어떤 점이 그렇게 우수한 점이지요?”
만일 어떤 외국인한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겠는지요? 대개 처음부터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아니면 설레설레 흔들며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똑같은 질문을 저는 면접시험 때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한글날에 들어간 반에 수능시험 만점을 받고 들어온,
여러모로 뛰어났던 학생이 있어 같은 질문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대개 과학적이니 독창적이니 하는 데까지는
대답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힙니다. 수능 만점 학생은
한글 자모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까지는 말하여 역시 남다른 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가령
‘ㄱ’은 무슨 모양을 본떠 만들었느냐고 물었었을 때는 대답이 막혔습니다.

꽤 오래 전 「‘ㄱ’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만, 한글의 자음 글자는 그 소리를 낼 때 쓰이는 발음기관(發音器官)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ㅅ’은 이빨 모양을,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ㄱ’과 ‘ㄴ’은 둘 다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긴 하였으나 이번에는 혀가 가만히 있을 때의 모양이 아니라 그 혀가
이들 소리를 낼 때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訓民正音』(해례본)의 해설로는 ‘ㄱ’은 “象舌根閉喉之形”,
즉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고, ‘ㄴ’은 “象舌附象顎之形” 즉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습니다.
한글을 자랑하려면 이것을 가장 먼저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발음기관을 바탕으로 글자를 고안해낸 발상은 그야말로
과학적이고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발음기관의 모양과 연관시켜  글자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길이라고
해서 서양에서도 한참 나중에 이런 시도를 한 바 있지만 실용성이 없어 어느 언어의 표기에도 채택된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한글은 이들 다섯 자모의 제자원리(制字原理)만으로도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자랑스러운 문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흔히 한글의 자랑을 겨우 이것에서 그치고 마는 일은 안타깝습니다. 한글의 자음은 앞의 다섯 자모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여기에 한글의 다른 자랑이 숨어 있습니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초성(初聲) 17자’라 하여 자음이 17자였는데 나머지 자모는 앞의 다섯 자모를 기본자(基本字)로 하여
거기에 획을 하나씩 더하여 만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1) ㄱ →  ㅋ
     ㄴ →  ㄷ →  ㅌ  ( ㄷ →  ㄹ )
     ㅁ →  ㅂ →  ㅍ
     ㅅ →  ㅈ →  ㅊ  ( ㅅ →  ᅀ )
     ㅇ →  ᅙ →  ㅎ  ( ㅇ →  ᅌ )  

모음의 경우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즉 모음은 우선 ‘ㆍ’, ‘ㅡ’, ‘ㅣ’를 각각 하늘의 둥근 모양, 땅의 평평한 모양,
사람의 선 모양을 본떠 만들어 그것을 기본자로 삼고 나머지는 이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ㆍ’를 ‘ㅡ’의 위 및 아래,
‘ㅣ’의 오른쪽 및 왼쪽에 붙여서 ‘ㅗ/ㅜ/ㅏ/ㅓ’를 만들고, 다시 그 ‘ㆍ’를 하나씩 더하여 ‘ㅛ/ㅠ/ㅑ/ㅕ’를 만든 것입니다.
‘ㆍ’가 나중에 획으로 바뀌어 그 본래의 모습을 짐작키 어렵게 되었으나 초기의 문헌에는  ‘ㆍ’의 동그란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핸드폰의 문자판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신기해한 일은 없으신지요? 회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ㅌ’자가 따로 없고 ‘ㄴ’만 있는데도 ‘획추가’ 버튼을 누르면 ‘ㄷ’자가 되고 다시 한 번 더 누르면 ‘ㅌ’자가 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ㅏ’나 ‘ㅑ’도 ‘ㅣ’에 ‘ㆍ’를 더하여 만드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한글의 제자원리를
지혜롭게 적용한 것이지요.

한글이 이렇듯 이원적(二元的) 조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발음기관에 바탕을 두었던 제자원리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한글의 빛나는 개성이요 자랑이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외국 학자들은 일찍부터 이 이원적 조직에
더 큰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우리 한글에 남달리 일찍 애정을 보인 Yen Ren Chao가 그의 Language and Symbolic System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8)에서 특별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고, 또 Geoffrey Sampson은 그의
Writing Systems : A Linguistic Introduct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5)에서 이 이원적인 조직의 결과로 그 안에 다시
보다 작은 단위의 음성 정보, 즉 음성자질이 들어 있다 하여 자질문자(資質文字)라는 분류를 새로 세움으로써 오로지
한글 때문에 세계 문자의 분류표를 새로 만든 바도 있습니다.

한글은 앞에서 본 두 가지 외에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른바 모아쓰기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흙을 ‘ㅎㅡㄹㄱ’ 으로 풀어 쓰지 않고 ‘흙’으로 묶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네 글자로 생각하지 않고 한 글자로
생각합니다.
이 모아쓰기는 한때 자랑거리가 아니라 골칫거리로 여겨져 시련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이 그
대표적인 분들인데 이들은 모아쓰기가 불편을 준다고 하여 풀어쓰기를 주창하고 그를 위해 한글 자모의 글자 모양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버려야 할 유산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풀어 놓으면 한글은 이미 한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글은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를 확연히 구별되는 계열로
만든 것이 특별합니다. ‘ㅏ/ㅓ’나 ‘ㅗ/ㅜ’는 처음부터 자음 오른쪽에, 또는 그 아래에 묶어 쓸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어서
이것을 풀어 쓰면 제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풀어쓰기를 주창한 학자들은 ‘ㅏ’를 로마자의 h자 비슷한 글자로
바꾸려는 것과 같은 일을 벌였는데 그건 이미 한글이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모아쓰기를 불편한 방식이라고 평가한 것부터가 사실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문자 생활의 초점을 쓰기 쪽에 두고 인쇄 등에
불편하다는 것을 생각한 것인데 우리는 하루 한두 장 쓴다면 읽기는 수백, 수천 장일 것입니다. 읽기에 초점을 맞추면
모아쓰기는 풀어쓰기보다 훨씬 능률적인 방식입니다. 특히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가 수없이 많이 붙는 첨가어(添加語)여서
아쓰기의 효율적이 극적으로 높게 발휘됩니다. 다음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이것이 이내 드러납니다.

(2) ㄱ. ㅈㅓㄹㅁㄱㅗ,  ㅈㅓㄹㅁㅈㅣㅁㅏㄴ,  ㅈㅓㄹㅁㅡㄴㅣ,  ㅈㅓㄹㅁㅓㅆㄷㅏ
    ㄴ. 젊고, 젊지만, 젊으니, 젊었다  

(2ㄴ)에서처럼 모아쓰기를 하면 ‘젊’만 보아도 그 뒤에 무엇이 붙든 이미 이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니 그만큼 빨리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독서 능률이 높아질 수박에 없습니다.
이 모아쓰기에 대해서도 외국 학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언어심리학자인 Leslie Henderson의 Orthography
and Word Recognition in Reading (New York:  Academic Press, 1982)에서 모아쓰기의 장점을 비중 있게 다루어 준 것도 그렇고,
최근 한글을 가장 깊이 있게 다룬 Florian Coulmas의 Writing System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에서 한 얘기도
그렇습니다. 한글은 쓰기 쪽과 읽기 쪽을 다 고려하여 만들었는데 글자를 이원적 조직으로 만든 것은 쓰기 쉽도록 한 것이고,
모아쓰기를 한 것은 읽기 쉽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종이 스스로의 맞춤법을 채택해 저술한 『월인천강지곡』을 보게 되면 오늘날 우리가 채택해 쓰고 있는 ‘몸이, 몸으로,
몸에서’와 같은 맞춤법까지 다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풀어쓰기를 주창한 학자들은 세종이 다 잘했지만 모아쓰기를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세종은 다 잘했지만 모아쓰기를 채택한 것은 그중에서도 잘한 일입니다.
참으로 세상을 깊이, 그리고 멀리 본 혜안(慧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랑거리가 많아(사실은 줄이고 줄인 것인데도)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제목을 ‘한글의 개성’이라 했는데 저는 ‘한글의 자랑’보다
이 제목을 더 좋아합니다. 한글은 무엇보다 남다른 개성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개성이되 얼마나 빛나는
개성인지 한글은 정말 자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61.77.205.43 

꼬꼬마/백태순   - 2009/10/11 20:11:51  
'한글은 무엇보다 남다른 개성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사회생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라고
그것이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 될때만 좋은 건축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지난 주 다큐프로그램에서 인도네시아의 한 지방에서 한글을 배우는 것을 방영하더군요.
그 지방의 언어는 된발음이 많아서 한글로 완벽하게 표현이 가능하고 배우기도 쉽다는 설명이였습니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면 우리말의 편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구요.

저는 한글보다는 우리말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완벽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말의 개성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
노인봉   - 2009/10/11 22:50:27  
<한글>은 글자(문자) 이름이고, 그러니까 <우리글자>이고, <우리말>은 <한국어>의 다른 이름이니
구별해 써야겠지요. <한글과 세종대왕>의 댓글에도 <언어>와 <문자>를 같은 뜻으로 쓴 게
있었는데 한글은 문자 이름이지 언어 이름은 아니라는 걸, 그 혼동을 조심해야 하낟는 걸
언제 따로 올린 게 있습니다.
키큰나무   - 2009/10/12 09:44:08  
저번에 노인봉 선생님께 배워서 더 확실하지만 한글과 우리말은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인데 대부분 이 두가지를 혼동하는 것 같더군요.

이번 한글날을 맞아서도 각종 언론매체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대부분 '한글'이 아니라 '한국어=우리말'에 대한 것들이더군요.
젊은이들의 인터넷언어 남용이나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의 외국어 남용 등에 관한 것들을 가지고 하나같이 '한글파괴'라고 보도를 하던데,
'우리말 파괴'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글' 자체에 대한 파괴는 아닌 것 같던데....
어째서 하나같이 한글과 우리말을 구분 못하고(안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온통 '우리말'에 관한 걸로 한글날을 도배하다시피 하는지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자는 취지이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어쨋든....저는 한글도 우리말도 둘 다 자랑스럽습니다. ㅎㅎ
정귀동   - 2009/10/12 10:41:12  
다른건 몰라도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기가 쉽다는건 참으로 좋은, 훌륭한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만들때 여러가지로 완벽하게 만든다고 만들었다고 해도 오늘날 사용에 있어 불편했다면 다 필요 없었을텐데요.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컴퓨터와 딱 맞아 떨어지니 신기하고 자랑스럽고 그렇습니다.
한글 만큼이나 멋진 내용의 우리말 산책 고맙습니다.
작은산   - 2009/10/12 11:28:08  
1970년 초부터 컴퓨터 분야에 입문하여 전산실에 근무할 때 한글의 불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세종대왕님께서 참 큰 실수를 저지르셨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고속 인쇄기(Printer)는 주로 드럼(Drum)이었는데, 그 드럼에는 초성, 중성, 종성을 대각선으로 나열하여 돌면서 컴퓨터에서 보내는 명령에 의하여 한글자를 출력할려면 초성, 중성, 종성 세번을 인쇄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영어나 일어는 한번만 찍으면 되는데, 한글이 있는 출력물은 세번을 찍어야 글자나 문장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한글이 있는 자료를 출력하기 위해서는 영어만 있는 자료에 비하여 2~3배의 출력시간이 소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러한 방법에 의한 인쇄기가 아니라 점(Dot) 을 이용한 방법으로 구현된 논리에 의하여 글자나 문장이 그림으로 만들어져 인쇄하기 때문에 전에 있었던 문제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 오랜 동안 한글출력의 문제점으로 컴퓨터 분야에서 근무한 사람들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이렇게 노인봉님께서 애찬하시는 한글이 오늘과 같이 다시 좋은 글로 평가 받게 된 것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발전된 컴퓨터와 프린터의 기술이, 있었던 문제점들을 완벽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동안 한글을 어떻게 하면 컴퓨터에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새 새로운 기술을 연구 발전시킨 컴퓨터 분야 기술자들에도 애정어린 찬사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노인봉님께서 연달아 올려주신 한글의 자랑을 읽으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우화의강   - 2009/10/12 14:49:39  
한글은 탄생 기록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문자.
제자원리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
문자의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소 문자.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소리와 문자의 일치성이 뛰어난 글자.

<한글을 사랑하자>라는 제목의 영상작가 박남수씨의 영상작품 내용입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조명하자는 뜻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한글 문자 체계의 과학성과 경제성에 대한 감탄과 그런 우수한 한글의 진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무지에 대한 비판이 양면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지적해 주신 것처럼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이 현실의 우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다른 개성을 지닌 우리 한글이 어떤 자랑거리들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익혀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글의 뛰어남과 귀중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꼬꼬마/백태순   - 2009/10/12 17:36:40  
꼬꼬마 두 손 들고 반성하면서
'우리말 산책(50) -- '한글'과 '한국어''를 복습하고 있습니다.

키큰나무 님 이야기처럼
저도
한글도 우리말도 둘 다 자랑스럽습니다. ^ ^
말나리   - 2009/10/12 22:15:46  
저는 아직도 어떻게 글자를 사람들이 만들어 쓰게 되었나
이해가 안 됩니다 .한글은 더 더욱 기묘한 것이구요.
우주의 달이나 별들처럼 늘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한글은^^
노인봉   - 2009/10/13 10:40:05  
우리말 산책이 72회에 이르는 동안 단 한번 빠지고는 열심히 댓글을 달아 오신 꼬꼬마 님, 이번에 두 번 달았으니
이제 개근상을 받아도 되겠어요. 어떻든 참 소탈하고 대범한 분이라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작은산 님의 정보 고맙습니다. 컴퓨터가 나오면서 그간의 어려움이 바로 해소된 줄 알았는데 거기서도 그런 단계를
거쳤군요. 역시 이 방면의 전문가시네요.
그런데 아무리 불편해도, 활자를 뽑아 조판을 하는 불편을 겪는 단계에서도 모아쓰기가
더 나은 방식이라는 게 앞의 얘기입니다. 우리 문자생활의 중심이 읽기에 있다는 걸 몰라
중국에는 간체자를 만드는 愚를 범하고 영어권에서, 또 우리도 쓰기 편하게 맞춤법을
고치자는 어리석은 운동을 벌였었지요.

우화의강 님이 소개한 어떤 분의 것은 그야말로 ‘떠도는 소문’들이지요. 겨우 그런 것으로 한글을 자랑하려는 것은 한글의
진정한 자랑을 몰라서일 것입니다. 사실 그건 자랑거리가 아니기도 하고요. 특히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든가
"소리와 문자의 일치성이 뛰어난 글자"는 맞지도 않는 말이지만 그런 게 자랑거리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맞춤법은 역사가 짧아 문자와 음성 사이의 불일치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의'만 해도 제 소리를 잃어가고, 'ㅚ'와 'ㅞ'도 구별이
없어지고 심지어 'ㅐ'와 'ㅔ'도 구별 못하는 세상이 돼 가고 있지 않습니까. 저것도 아마 한 10여년 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소문인데 왜 저런 것이 계속 떠도는지 안타깝고 그래서 우리말 산책도 쓰고 그러는데 아, 떠도는 소문의 위력이여!

말나리 님, 왜 글자를 만들어 쓰게 되었는가라고요? 길고 긴 얘기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좀 요약해 보겠습니다.
키큰나무   - 2009/10/13 23:06:59  
꼬꼬마님~ 이제 손 내리세요~
선생님께서 용서하신 것 같으니까...ㅎㅎ
물푸레   - 2009/10/16 19:37:44  
노인봉님이 계셔 올 10월은 어느 해보다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구름이 아름다웠고 노을이 고왔고 그리고 한글과 세종대왕님이 어느때 보다 빛났던 것 같습니다.
한글로 더욱 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우리말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전 매일 공단 어느 골목을 돌아 출근을 하는데 거기 유리창문을 만들어 공급하는 작은 회사가
있는데 회사 이름이 "노틈" 입니다. "No 틈"이지요. 틈이 없는 창문을 만드는 회사라는 뜻이겠지요.
틈이라는 우리 말이 참 함축적이고 아름답다 생각하고있습니다
뜰에봄   - 2009/10/19 00:24:28  
이윤기씨가 쓰신 책에선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꼽으면서 <이곱다> 라는 말의 경우
영어같은 문자로는 어찌 표현이 가능하겠냐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한글이 없었다면 어떤 글로 소통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새삼 우리글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우리 글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곱씹어 보는 기회를 주신 노인봉 님께 감사드립니다. ^^
노인봉   - 2009/10/19 21:09:42  
뜰에봄 님도 꼬꼬마 님처럼 두 손 들고 복습을 하시게 생겼네요.
'이곱다'는 igopta로 써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줄지 않을 것입니다. 영어로 마땅한 단어가
없을 수는 있겠으나 영어 <영어 같은 문자>로는 얼마든지 적을 수 있겠지요.
한글이 문자로서 우수하다는 것과 우리말이 아름답다든가 우수하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거늘,
어찌 이리도 혼돈의 세계가 깊은 것일까?
다시 한탄하노니 그래서 열심히 우리말 산책을 쓰는데 아, 우리말 산책의 무기력함이여!
뜰에봄   - 2009/10/19 21:24:14  
흑흑..노인봉 님 용서해 주세요.
요즘 제 왼쪽 팔이 아파 두 손을 다 들긴 무리가 있답니다.
제가 다시 읽어보고 댓글을 써야하는데 한참 지나서 쓰다보니 노인봉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의 핵심을
잊어먹고 말았어요. 사실 잘 쓰려고 미뤘는데 계속 어수선한 날의 연속이라 마음을 가다듬지 못했답니다.
'이곱다'는 igopta로 써도 발음이 같으니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줄지 않은 거 맞네요.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 노인봉님께서 한탄하신다니 너무 슬픕니다.
부디 힘내세요
말나리   - 2009/10/19 23:21:26  
오라비의 초상을 치르고 돌아와 아직 비통한 마음인데
두 분 의 댓글을 읽노라니 푸하하 그만 웃음이 납니다 .
아~~~비통함의 속절없음이여 ㅠㅠ
노인봉   - 2009/10/20 10:01:57  
만나는 분들 중 많은 분이 <우리말 산책>엔 겁이 나서 댓글을 못 단다고 하시데요.
제가 자꾸 잔소리를 하니 점점 더 그럴 것 같지요? 그런데 이왕 버린 몸, 그러고 자꾸 나서게 되네요.
바로 지난번의 <한글과 세종대왕>의 댓글에도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표음 능력을 가진 한글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소리 들으면 열이 나서 그럽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가령 <'오렌지'는 우리말이다>에서
열변(?)을 토했는데 왜 이런 건 제쳐 두고 바깥에 떠도는 허황한 얘기에만 귀를 기울이는지 안타까운 거지요.
아, 이제 붓을 꺾자 그런 생각도 자주 하는데 뜰에봄 님이 힘내라니 어느분의 말씀이라고 거역하겠어요.
뜰에봄   - 2009/10/20 10:39:04  
<이곱다> 에 대해선 제가 생각없이 잘못 적었습니다.
어느 책에 <이곱다>를 거론한 분도 우리 한글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곱다> 처럼 절묘한 상황 표현이 가능할까, 하는
요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가 아픈 것도 시린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다시 힘 내실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휴우~
사실 노인봉 님께서 애써서 올려주신 글을 머리속에 다 저장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나름대로 알려고 애 쓰고있고,
귀한 가르침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저를 비롯하여 개인 블로그에 살짝 옮겨다 놓는 회원들도 여럿인 줄 압니다.
모를 때마다 엄히 꾸짖으시면서 깨우쳐 주세요. 달게 여기겠습니다. ^^
노인봉   - 2009/10/29 20:33:26  
어제 어느 조간에 실린 한림대학교 손우현 교수의 글 일부를 옮깁니다. 이처럼
깨어 있는 인사가 있다는 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깊은
혼돈의 세계가 다시금 안타까웠습니다.

***
광화문 광장'이라고 쓴 동판 양옆에는 세종대왕 동상 건립 취지를 설명하는 오세훈 시장이 서명한 한글과 영문 동판이
나란히 있었는데 "한글 창제 등 민족 문화를 꽃피우신 세종대왕"이란 구절을 "King Sejong the Great, who invented
our national language Hangeul…"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우리나라 말인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이란
뜻이다. 한글은 language가 아니고, script, alphabet, 또는 writing system이라고 해야 한다. 어떤 학자들은 한글의 의미를 살려
'Great (Korean) Script'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이 동판을 읽으면 한국민들이 독자적인 언어가 없이 중국말이나 다른 나라 말을 쓰다가 세종대왕 덕에
자기 나라 말을 처음으로 가지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나라의 상징가로'의 동판에
이런 중대한 오역이 아무 여과 없이 등장하다니, 우리 민족의 최대 자부심인 한글의 홍보는커녕 우리 민족을
15세기까지 고유한 언어도 없었던 미개 민족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