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위반을 합니다. 우리말 산책을 이렇게 자주 올리면 꼴치아프실 텐데 지난번 얘기와 묶어 읽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렇게 무리를 하였습니다.) ‘한글’은 뭐랄까 워낙 선전이 잘 되어 있어 우리 국민이라면 그 우수성을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꾀꼬리 소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바로 한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신들은 ‘한글날’까지 만들어 지키면서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뽐내는데 어떤 점이 그렇게 우수한 점이지요?” 만일 어떤 외국인한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겠는지요? 대개 처음부터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아니면 설레설레 흔들며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똑같은 질문을 저는 면접시험 때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한글날에 들어간 반에 수능시험 만점을 받고 들어온, 여러모로 뛰어났던 학생이 있어 같은 질문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대개 과학적이니 독창적이니 하는 데까지는 대답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힙니다. 수능 만점 학생은 한글 자모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까지는 말하여 역시 남다른 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가령 ‘ㄱ’은 무슨 모양을 본떠 만들었느냐고 물었었을 때는 대답이 막혔습니다. 꽤 오래 전 「‘ㄱ’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만, 한글의 자음 글자는 그 소리를 낼 때 쓰이는 발음기관(發音器官)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ㅅ’은 이빨 모양을,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ㄱ’과 ‘ㄴ’은 둘 다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긴 하였으나 이번에는 혀가 가만히 있을 때의 모양이 아니라 그 혀가 이들 소리를 낼 때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訓民正音』(해례본)의 해설로는 ‘ㄱ’은 “象舌根閉喉之形”, 즉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고, ‘ㄴ’은 “象舌附象顎之形” 즉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습니다. 한글을 자랑하려면 이것을 가장 먼저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발음기관을 바탕으로 글자를 고안해낸 발상은 그야말로 과학적이고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발음기관의 모양과 연관시켜 글자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길이라고 해서 서양에서도 한참 나중에 이런 시도를 한 바 있지만 실용성이 없어 어느 언어의 표기에도 채택된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한글은 이들 다섯 자모의 제자원리(制字原理)만으로도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자랑스러운 문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흔히 한글의 자랑을 겨우 이것에서 그치고 마는 일은 안타깝습니다. 한글의 자음은 앞의 다섯 자모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여기에 한글의 다른 자랑이 숨어 있습니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초성(初聲) 17자’라 하여 자음이 17자였는데 나머지 자모는 앞의 다섯 자모를 기본자(基本字)로 하여 거기에 획을 하나씩 더하여 만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1) ㄱ → ㅋ ㄴ → ㄷ → ㅌ ( ㄷ → ㄹ ) ㅁ → ㅂ → ㅍ ㅅ → ㅈ → ㅊ ( ㅅ → ᅀ ) ㅇ → ᅙ → ㅎ ( ㅇ → ᅌ ) 모음의 경우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즉 모음은 우선 ‘ㆍ’, ‘ㅡ’, ‘ㅣ’를 각각 하늘의 둥근 모양, 땅의 평평한 모양, 사람의 선 모양을 본떠 만들어 그것을 기본자로 삼고 나머지는 이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ㆍ’를 ‘ㅡ’의 위 및 아래, ‘ㅣ’의 오른쪽 및 왼쪽에 붙여서 ‘ㅗ/ㅜ/ㅏ/ㅓ’를 만들고, 다시 그 ‘ㆍ’를 하나씩 더하여 ‘ㅛ/ㅠ/ㅑ/ㅕ’를 만든 것입니다. ‘ㆍ’가 나중에 획으로 바뀌어 그 본래의 모습을 짐작키 어렵게 되었으나 초기의 문헌에는 ‘ㆍ’의 동그란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핸드폰의 문자판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신기해한 일은 없으신지요? 회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ㅌ’자가 따로 없고 ‘ㄴ’만 있는데도 ‘획추가’ 버튼을 누르면 ‘ㄷ’자가 되고 다시 한 번 더 누르면 ‘ㅌ’자가 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ㅏ’나 ‘ㅑ’도 ‘ㅣ’에 ‘ㆍ’를 더하여 만드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한글의 제자원리를 지혜롭게 적용한 것이지요. 한글이 이렇듯 이원적(二元的) 조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발음기관에 바탕을 두었던 제자원리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한글의 빛나는 개성이요 자랑이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외국 학자들은 일찍부터 이 이원적 조직에 더 큰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우리 한글에 남달리 일찍 애정을 보인 Yen Ren Chao가 그의 Language and Symbolic System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8)에서 특별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고, 또 Geoffrey Sampson은 그의 Writing Systems : A Linguistic Introduct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5)에서 이 이원적인 조직의 결과로 그 안에 다시 보다 작은 단위의 음성 정보, 즉 음성자질이 들어 있다 하여 자질문자(資質文字)라는 분류를 새로 세움으로써 오로지 한글 때문에 세계 문자의 분류표를 새로 만든 바도 있습니다. 한글은 앞에서 본 두 가지 외에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른바 모아쓰기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흙을 ‘ㅎㅡㄹㄱ’ 으로 풀어 쓰지 않고 ‘흙’으로 묶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네 글자로 생각하지 않고 한 글자로 생각합니다. 이 모아쓰기는 한때 자랑거리가 아니라 골칫거리로 여겨져 시련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이 그 대표적인 분들인데 이들은 모아쓰기가 불편을 준다고 하여 풀어쓰기를 주창하고 그를 위해 한글 자모의 글자 모양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버려야 할 유산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풀어 놓으면 한글은 이미 한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글은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를 확연히 구별되는 계열로 만든 것이 특별합니다. ‘ㅏ/ㅓ’나 ‘ㅗ/ㅜ’는 처음부터 자음 오른쪽에, 또는 그 아래에 묶어 쓸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어서 이것을 풀어 쓰면 제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풀어쓰기를 주창한 학자들은 ‘ㅏ’를 로마자의 h자 비슷한 글자로 바꾸려는 것과 같은 일을 벌였는데 그건 이미 한글이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모아쓰기를 불편한 방식이라고 평가한 것부터가 사실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문자 생활의 초점을 쓰기 쪽에 두고 인쇄 등에 불편하다는 것을 생각한 것인데 우리는 하루 한두 장 쓴다면 읽기는 수백, 수천 장일 것입니다. 읽기에 초점을 맞추면 모아쓰기는 풀어쓰기보다 훨씬 능률적인 방식입니다. 특히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가 수없이 많이 붙는 첨가어(添加語)여서 아쓰기의 효율적이 극적으로 높게 발휘됩니다. 다음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이것이 이내 드러납니다. (2) ㄱ. ㅈㅓㄹㅁㄱㅗ, ㅈㅓㄹㅁㅈㅣㅁㅏㄴ, ㅈㅓㄹㅁㅡㄴㅣ, ㅈㅓㄹㅁㅓㅆㄷㅏ ㄴ. 젊고, 젊지만, 젊으니, 젊었다 (2ㄴ)에서처럼 모아쓰기를 하면 ‘젊’만 보아도 그 뒤에 무엇이 붙든 이미 이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니 그만큼 빨리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독서 능률이 높아질 수박에 없습니다. 이 모아쓰기에 대해서도 외국 학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언어심리학자인 Leslie Henderson의 Orthography and Word Recognition in Reading (New York: Academic Press, 1982)에서 모아쓰기의 장점을 비중 있게 다루어 준 것도 그렇고, 최근 한글을 가장 깊이 있게 다룬 Florian Coulmas의 Writing System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에서 한 얘기도 그렇습니다. 한글은 쓰기 쪽과 읽기 쪽을 다 고려하여 만들었는데 글자를 이원적 조직으로 만든 것은 쓰기 쉽도록 한 것이고, 모아쓰기를 한 것은 읽기 쉽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종이 스스로의 맞춤법을 채택해 저술한 『월인천강지곡』을 보게 되면 오늘날 우리가 채택해 쓰고 있는 ‘몸이, 몸으로, 몸에서’와 같은 맞춤법까지 다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풀어쓰기를 주창한 학자들은 세종이 다 잘했지만 모아쓰기를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세종은 다 잘했지만 모아쓰기를 채택한 것은 그중에서도 잘한 일입니다. 참으로 세상을 깊이, 그리고 멀리 본 혜안(慧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랑거리가 많아(사실은 줄이고 줄인 것인데도)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제목을 ‘한글의 개성’이라 했는데 저는 ‘한글의 자랑’보다 이 제목을 더 좋아합니다. 한글은 무엇보다 남다른 개성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개성이되 얼마나 빛나는 개성인지 한글은 정말 자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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