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우리말 산책 (71) ― 한글과 세종대왕

뜰에봄 2009. 10. 31. 08:40


초등학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한글을 누가 만드셨지요?”라고 물으면 다들 서슴없이 “세종대왕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기초적인 상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세종대왕을 드는 것도 무엇보다 한글 창제 때문이겠지요.

세종의 한글 창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지으셨다 …
이를 훈민정음이라 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는 세종실록(25년 12월)의 기록이나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라고 한 훈민정음의 머리말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訓民正音』(해례본)의 끝에 붙은 정인지의 서문 “계해(癸亥)년 겨울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셨다”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위의 기록들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금이 친히 지으셨다”는 것은
모든 영광을 임금에게 돌리려는 수사(修辭)가 아니겠느냐, 임금이 바쁜 정무(政務)에 어찌 그 어려운 일을
혼자 하였겠느냐, 손수 집현전까지 만들었는데 당연히 그 젊은 학사들을 활용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 어디에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이 없어 막연히 추측으로 만들어진 생각들인데
어찌된 일인지 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의외로 넓게, 그나마 부정확하게 이 생각들이 퍼져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 교포 2세들이 하기로 되어 있는 연극의 대본을 미리 본 일이 있습니다.  마침 한글 창제를 다룬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자, 이제 돌아가서 한글을 지어 올려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저는 당장 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 방면의 논문을
하나 보내니 읽어 보세요 그랬습니다.
그보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언어』의 영어판인 The Korean Languag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0)의 서평에서 어떤 분이 그 책에서 한글이 거의 세종 혼자 창제했다고 기술한 것에 대해
엉뚱한 비판을 한 것이 그것입니다. 한글을 창제하는 일에 도움을 얻고자 우리나라 학자가 중국 요동으로
황찬(黃瓚)을 열세 번이나 찾아갔는데 어떻게 세종이 혼자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느냐고 한 것입니다. 서평을
쓴 분은 우리나라에서 영문학과를 나와 미국에 가 언어학박사가 되어 거기서 교수를 하는 분이었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쯤 잘못 배운 지식을 가지고 이런 무책임한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중국학자
황찬을 만나러 요동을 찾아간 것은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난 뒤에 다른 목적으로 갔다는 것은 이제
국어학계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떠도는 소문을 대단한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한 번 잘못 박힌 생각은 좀체 털어내지 못하는
습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이렇듯 헤매게 한 책임은 이 방면으로 충분한 연구를
해 놓지 못한 학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미국 교포에게 보내 주겠다고 한 논문은
「훈민정음 친제론(親制論)」이라는 이 방면의 최초의 본격적인 논문입니다. ‘친제’가 다른 데에서는 쓰이지 않은
용어로 그것이 수사적인 표현일 수 없고, 또 훈민정음이 완성된 세종 25년 음력 12월까지 집현전 학사들이
그 일을 알고 있었던 흔적이 없었다는 것 등 여러가지 논거를 치밀히 제시하면서 한글을 세종이 ‘친히’,
혼자의 힘으로 창제한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이 발표된 해가 1992년입니다. 그 이전 1946년에 발간된 『훈민정음 발달사』에서도 같은 방향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회의론만 무성하다가 이 방향으로 확실한 논문이 나온 것이 이렇듯 최근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헤매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글이 세종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좀 편안하게 믿어도 좋을 듯합니다. ‘친제’에 대한 회의론은
훈민정음의 체계가 고도의 전문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을 들어 세종이 그런 깊이 있는 학식이
있었겠느냐는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세종은 임금이기 전에 뛰어난 학자였음을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최만리 등이 올린 반대상소문에 대한 답변에서 너희들이 이런 이론을 아느냐 내가 아니고 누가 이 일을 하겠느냐라고
한 대목도 있습니다만 세종의 학문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맞춤법은 어떻게 보면 매우 첨단적입니다. “산이 높지도 않고 사람도 없네요”를
“사니 놉지도 안코 사람도 엄네요”와 비교하면 비록 소리와 멀어지더라도 기본형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정신을
살리고 있는데 이런 맞춤법이 독서능률을 높이는 것이어서 더 이상적(理想的)이라는 인식은 서양에서도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종은 그 옛날에 이런 맞춤법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월인천강지곡』같은 데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대단한 학자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인지는 서문에서 “하늘이 성인(聖人)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그 손을 빌려 한글을 짓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뛰어나고 편리한 한글로 누리는 크고도 큰 혜택을 생각하면 정말 하늘이 도와 한 성군(聖君)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글 창제 이전에 시도되었던 몇 가지 일들이 어떤 결실을 보았다면 우리는 좀더 일찍
우리의 문자를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랬더라면
세종이 한글을 만들 생각을 안 했을 것이고 어쩌면 오늘날까지 꽤도 불편한 문자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종을 생각하면, 아니 한글을 생각하면 저는 늘 우리 민족이 좋은 운을 타고 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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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큰나무   - 2009/10/07 11:07:29  
그러고보니 내일 모레가 한글날이군요.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다보니 한글날이 언제인지도 별 신경 안쓰고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시의적절하게 좋은 말씀 해 주셨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국민학교..!!!) 시절부터 집현전 학사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한글을 만들었다고
엉터리로 배운 바람에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나서야 오로지 세종대왕님 혼자만의 힘으로 한글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즘은 저도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세종대왕 친제설을 열심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대 중국관계를 봐서도 한문을 놔 두고 조선만의 독립된 문자를 만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기는 불가능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한글 창제를 공개적으로 추진했다면 최만리 등이 즉각 반대상소를 올리고 난리를 피웠겠지요, 굳이 한글이 완성되어 공포되길 기다릴 이유도 없고...
규장각의 도서대출 기록에도 중국의 음운론 서적은 세종대왕 혼자서 수십번을 빌려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한글 뿐만이 아니라 많은 업적이 있지만 한글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세종대왕님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쉽게 자판을 두들기고 인터넷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수백년 앞을 내다보신 것 같기도 하네요..ㅎㅎ
한글 만세~~!!
그리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복원하라~!! 복원하라~!! 복원하라~~!!
뜰에봄   - 2009/10/07 11:16:59  
한글날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군요.
한글날을 앞두고 이 글을 읽으니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글로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신 세종대왕님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 저도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셨다고는 하나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연구해서 만들었거니 싶었는데
노인봉 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고서 이제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하다보니 제가 알면서도 한글을 제대로 쓰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앞으로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해소리/이창길   - 2009/10/07 11:30:12  
오늘도 노인봉 님 덕분에 많은 것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향/김복진   - 2009/10/07 12:51:16  
몇 년전 방영된 KBS역사스페셜에서도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된 것이라고 다룬 적이 있습니다.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그 DVD를 꼭 보여줍니다.

덧붙이면 지구상의 수 많은 언어들이 있지만,
그 언어들은 그림에서 그림문자로 그리고 다시 변형되어 현재의 언어가 된 데 비하여,
필요에 의해 새롭게 만든 언어가 세계적으로 한글이 유일한 문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 언어학자들은 10월 둘째주에 꼭 기념식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푸레   - 2009/10/07 12:55:40  
인터넷 휴대폰 시대에 다시 한번 시대를 앞서간 세종대왕님이 멋져보입니다
디지탈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셨었나봐요. 찌아찌아 사람들도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나봐요
가끔 외국분들이 오셔 휴대폰 자판을 보이며 설명해주면 감탄합니다
별꽃/민경화   - 2009/10/07 13:05:35  
귀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가 어찌 이것뿐이겠어요.
추석 성묘 길에 개혁에 실패한 광해군의 초라한 묘역을 지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올리신 귀한 글...복사해 제 동기들 싸이트로 옮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문철   - 2009/10/07 17:20:44  
세종로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고,
어느 나라 작은 섬에서는 '한글'을 공용문자로 사용한다고 하니,
그분의 노고가 새삼 느껴집니다.....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면서 간접적이나마 세종임금께서 '한글'을 창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루발   - 2009/10/07 23:16:25  
한글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힘이지요.
노인봉님의 마음...많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 시절 한글을 펼치기 위해서 만든 곳이 언문청이었지요.
국어 사전에도 언문이라면 상스러운 말 이라고 나옵니다.
정말 세종대왕은 본인이 또는 조정에서 쓸 생각이 전혀없으면서도 상스러운 백성들을 위해 글을 만드셨습니다.
아니 처음 만들고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옹호하는 용비어천가니 월인천강지곡 같은 것은 한글로 만들었지요.
하지만 창제 당시부터도 언문이라고 불리웠고
후대 연산군에 와서는 선대왕의 "위대한" 업적인 한글을 탄압하고 한글로 된책(언문으로 된 책)들을 모두 불싸지르는 일을 저지르지요.
분명 세종대왕이 만드셨으나 상스런 사람들의 글을 만드셨을 뿐이었습니다.

진정 한글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사회의 상스런 계층의 아녀자들이, 백성들이 그 글을 끊임없이 써왔다는 것이지요.
박해를 받으면서도. 일제를 거치면서도 그 글은 우리 민족과 같이 생명을 같이 했지요.
만들긴 세종대왕께서 만드셨으나
그 생명력을 불어 넣고 지켜온 것은 상스런 일반 백성이었지요.
그래서 더욱 우리 한글이 소중한것이 아닐런지요.

한글 소중합니다.
아직도 영어한자 모르는 상스런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그 글...
정말로 소중합니다.
불태산   - 2009/10/08 04:48:17  
내일이 바로 한글날이군요.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노인봉님 글에 댓글을 처음 올리게됩니다.
지난번 사극 대왕 세종에서 그 한글창제 과정이 자세히 기술된바 있었습니다.
아이들...놀이하면서 입을 관찰하고 시신을....파격적으로 해부하고...했던 일들
동안의 이야기들과는 달리 임금 스스로의 노력이 많이 보였던 드라마였던것 같습니다.
노인봉님... 말씀을 듣고보니 참 대단하신분이고 우리의 한글이 자랑스럽습니다.
집에 전화라도 해서 내일 반드시 태극기 게양하고 한글날을 기억하라 하겠습니다.
이제 제가 백수가 되었으니 호남에 오실땐...언제나 편하게 모셔 드립니다.
꼬꼬마/백태순   - 2009/10/08 11:07:03  
내나라에서
내나라 말로 이야기하고 내나라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시간에 등 떠밀려 오늘이 한글날이였구나 하고 지나치는 날도 많지만...
내일은 하늘 맑고 구름 둥실하여
잊고 있었던 고운 詩心이 살아나
세종대왕께 고마움을 전하는 시 한수 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
말나리   - 2009/10/08 13:19:58  
이 글을 본 이후로 "친제"라고 저도 확실히 믿고 말하겠습니다.
세종대왕과 같은 천재 임금이 이 나라에 죽~~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푸른마음   - 2009/10/08 14:54:21  
키큰나무님이 저렇게 외쳐대니 곧 공휴일로 재 복원될 것 같은 기대를 해 봅니다.ㅎㅎ
노인봉님의 글 백번 공감하며 우리 한글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제나 보약이 글, 감사합니다.
노인봉   - 2009/10/11 19:22:41  
키큰나무 님이 이 방면으로까지 그렇게 깊은 지식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 줄 몰랐습니다.
이제 더욱 크게 쳐다보이게 됐네요. 저는 음력설 하루 줄이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하자 그러는데
엉뚱한데 인심 쓰고 이런 데는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했던 외국 학자는 시카고대학의 맥콜리라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작고했습니다.

물푸레 님이 휴대폰 말씀도 하시고 해서 내친 김에 한글에 대해 써 둔 글 하나를 마저 올리겠습니다.
우화의강   - 2009/10/12 12:38:11  
인도네시아 슬라웨이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시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표음 능력을 가진 한글이 보편적인 음성기호로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
한없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기사였습니다.

단 24개의 음소들의 조합으로 무한의 표현이 가능한 우수한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
노루발님의 말씀처럼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힘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언제나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를 주시는 좋은 글 감사함으로 담습니다.
노인봉   - 2009/10/13 10:28:44  
노루발 님의 말씀은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언문’을 “상스러운 말”이라고 정의할 국어사전이 있을까 의문스럽고,
또 한글을 상스러운 계층에서나 이어왔다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 약, 우리 노래를 중국 것에 대해 낮추어 ‘향약(鄕藥)’
‘향가(鄕歌)’라고 했듯이 ‘언문’도 시골 글 정도의 뜻으로 썼다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한글이 비록 천대를 받긴
하였으나 나라가 앞장서 수많은 번역서를 내기도 하였거니와 한글로 시를 짓고 소설을 쓰고 편지를 쓴 계층은 역시
행세를 하던 계층이었지, 가령 언간(諺簡)이라고 불리는 한글 편지도 양반 계층에서 오가던 것이지 않습니까? 한글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에 그런 전제를 달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문청에 대해선 기록이 워낙 없어
무엇을 하기 위해 만들고 무슨 일을 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